미술 작품과 함께 읽는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7권. 아이기나(Aigina)에서의 역병.

eduun83 2025. 3. 1.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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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로 변신한 제우스에게 납치되는 아이기나. 1710.




517행—564행.

아이아코스와 케팔로스(Kephalos). 1539.

그러자 아이아코스(아이기나 섬의 왕)가 한숨을
쉬며 슬픈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시작은 눈물겨웠으나 나중에는 행운이 따랐소. 처음 일은 빼고 나중 일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지금 나는 순서대로 이야기하되 장황한 이야기로 그대(케팔로스)를 지체시키지
않겠소. 지금 그대가 기억했다가 묻는
자들은 뼈와 재가 되어 누워 있소. 그들과 더불어
내 왕국.   (아이기나 섬)의 얼마나 큰 부분이 사라졌던가! 끔찍한 역병이 불공평한 유노(제우스의 정실 부인
헤라)의 노여움 탓에 내 백성을 엄습했는데, 그것은
이 나라(아이기나)가 그녀(유노)의 시앗(남편 제우스의
첩인 아이기나)의 이름으로 불리자 유노가
우리를 미워했기 때문이오.
그 재앙(역병)이 인간에게 비롯된 것처럼 보이고
피해의 해로운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동안에는 우리는
의술로 싸웠소. 하지만 파멸이 구조(救助)를 제압하자
구조는 패하여 쓰러져버렸소. 처음에는 하늘이 암흑에
싸인 채 대지를 짓누르며 모든 것을 나른하게 만드는
찌는 듯한 더위를 구름으로 가두고 있었소.
달(초승달)이 네 번이나 그 뿔들을 이어 붙여 원을
꽉 채웠다가 네 번이나 꽉 찬 원에서 이지러지는
동안, 뜨거운 남풍이 죽음을 가져다주는 열기를 몰고
불어왔소. 다 아는 일이지만 샘과 호수에도 독이
스며들었고, 수천 마리의 뱀이 경작하지 않은 밭을
이리저리 기어다니며 그 독으로 강을 오염시켰소.
이 갑작스러운 역병의 맹렬한 기세는 처음에는 개와 새와 양떼와 소떼의 죽음과 들짐승들 사이에 국한되어
있었소. 불운한 농부는 자신의 힘센 황소들이
일을 하다 말고 밭고랑 한가운데에 쓰러져 눕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소. 털북숭이 양떼는 애처롭게
울어대는데 저절로 털이 빠지며 몸이 쇠약해져갔소.
전에 경마장에서 큰 명성을 누리며 씩씩했던
말은 승리의 기상은 어디로 갔는지 지난날의 영광도
잊어버린 채 구유 옆에서 신음하며 무기력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소. 멧돼지는 광란하기를 잊었고,
암사슴은 빠른 자기 발을 믿지 않았으며,
곰은 저보다 더 강한 가축 떼를 공격하기를 잊었소.
무기력함이 모든 것을 사로잡았소. 숲속에도 들판에도
길에도 시신이 누워 썩어가고 있었고, 대기는 그 악취로 오염되었소.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개도 탐욕스러운
새도 잿빛 늑대도 그 시신들을 건드리지 않았소.
시신들은 땅바닥에 누워 썩어가며 제 악취로
대기를 오염시켰고 사방으로 역병을 퍼뜨렸소.
역병은 불쌍한 농부들에게 다가가 큰 피해를 주더니
마침내 도시의 성벽 안에서도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었소. 처음에는 내장이 고열로 마르더니, 열이 잠복해 있다는 증거로 살갗이 붉어지고 숨이 가빠졌소. 혀는 열기에 까칠까칠해지며 부어올랐고, 두 입술은 뜨거운 바람에
바짝 마른 채 숨막히는 대기를 들이마시려고 헐떡거리는 것이었소. 그들은 침상도, 어떤 종류의 이불도
견디지 못하고 벌거벗은 채 얼굴을
아래로 하고 땅에 누웠소. 하지만 땅바닥으로 인해
몸이 식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인해 땅바닥이 데워졌소.
역병을 제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소. 그리하여
사나운 재앙이 의사들 자신에게 덤벼드니, 의술이
그 임자들에게 해가 되었던 것이오. 누구든지 더
가까이서 더 성실하게 환자를 돌볼수록 그만큼 더
빨리 죽음의 길로 들어섰소. 그리고 살아날 가망이 없고,



[참고. 아이기나 섬]

그리스 에게 해, 사로니코스 만(Saronin lahti)의 아이기나(AEGIINA) 섬.




565행—574행.

아이기나 섬에서의 역병(1564).

이 역병의 끝은 죽음뿐이라는 걸 알게 되자 그들은
제 하고 싶은 대로 하며 무엇이 유익한지 관심도
없었소. 유익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그들은
염치 불구하고 도처에서 샘가나 강가나 널찍한 우물가에 매달렸으니, 그들의 갈증은 아무리 마셔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가시지 않았던 것이오. 그들 중 많은 자가 일어설 기력이 없어 바로 그 물속에서 죽어갔소. 그런데도
어떤 자들은 그 물을 마셨소. 가증스러운 침상에
넌더리가 날 대로 난 가련한 환자들은
밖으로 뛰어나가거나 일어설 기운이 없을 경우에는
땅바닥에다 몸을 굴려 제 집에서 도망쳤으니,
각자에게는 제 집이 죽음을 가져다주는 곳으로
보였던 것이오. 역병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던 터라
그 탓을 협소한 공간에 돌렸던 것이지요. 그대는
그들 중 더러는 반죽음 상태로 아직 서 있을 수 있는 동안 길거리를 헤매고, 더러는 땅바닥에 누워 눈물 속에
마지막 몸부림을 치며 흐릿해진 눈을 하늘을
향하여 굴리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오. 그리고
그들은 죽음에게 붙잡힌 바로 그 자리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며 낮게 드리운 하늘의 별들을 향해 두 팔을
벌리는 것이었소. 그때 내 심정이 어떠했겠소?
내가 삶을 증오하고 내 백성과 함께하기를 원했다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요? 어느 곳으로
시선을 돌리든 그곳에는 백성이 뻗어 누워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흔들린 가지에서 썩은 사과가 떨어질 때나, 바람이 쳐올린 떡갈나무에서 도토리가 떨어질 때와도 같았소. 저기 저 건너편에 계단이 많은 신전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보이지요? 유피테르(아이아코스의
아버지 제우스)의 신전이오. 그 제단에 분향하지
않은 사람은 없지만 다 소용없는 짓이었소. 남편이
아내를 위하여, 아버지가 아들을 위하여 기도하던 도중에 그 달랠 수 없는 제단들 앞에서 아직도 쓰다 남은
향을 손에 든 채 마지막 숨을 거둔 것이 몇 번이었으며,
제물로 바치려고 신전에 끌고 온 황소들이 아직도
사제가 기도하며 뿔 사이에 물 타지 않은 포도주를
붓는 동안 칼로 치는 것도 기다리지 않고 쓰러진 것이
몇 번이었던가! 나도 나 자신과 내 나라와 내
세 아들을 위하여 유피테르(제우스)께 제물을 바치려는데, 그때 제물이 무시무시하게 울부짖더니 칼로 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쓰러지며 밑에 들이댄 칼에 적은 양의
피만 묻히는 것이었소. 병든 내장도 진실을 말해주고
신들의 경고를 전해줄 표지를(예언자들은 제물의
내장 특히 간의 생김새를 보고 점치곤 했다)
잃어버렸으니, 잔혹한 역병은 내장까지 침범했던
것이오. 나는 시신들이 신전의 문설주 앞에,
아니 죽음으로써 신들을 원망하기 위하여 제단 바로
앞에 던져진 것을 보았소. 더러는 스스로 목매어
죽었으니, 죽음으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부르지
않아도 다가오는 자신의 운명을 자진하여 부르는
것이었지요. 시신들은 관습에 따라 적절히 매장되지
못했으니, 도시의 성문이 그토록 많은 장례 행렬을
다 받을 수 없었던 탓이지요. 시신들은 매장되지
못한 채 대지를 짓누르고 있거나 아무 명예도 없이
화장용 장작더미 위에 무더기로 쌓여 있었소.
이때에는 이미 죽은 이에 대한 예의 같은 것은 없어진
터라 장작더미를 두고 다투는가 하면


610행—616행.

제우스에게 기도하는 아이아코스(제우스와 아소포스의 딸 아이기나의 아들). 비르길 졸리스(1514–1562).

남의 불에 태워지기도 했소. 죽음을 애도해줄 사람
조차 남지 않았소. 그리하여 아들들과 아버지들의,
젊은이들과 노인들의 혼백이 곡소리를 듣지 못해
정처 없이 헤매고 있소. 무덤으로 쓸 땅도, 불을 피울 나무도 모자랐지요. 나는 그토록 엄청난 고통의 회오리바람에 망연자실하여 말했소. '오오, 유피테르(제우스)시여!
당신께서 아소포스의 따님이신 아이기나를
껴안으셨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라면, 위대한 아버지시여,
당신(제우스)께서 제 아버지라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신다면, 제게 제 백성을 돌려주시거나
저도 무덤에 묻히게 해주소서!' 그분께서 번개와
천둥소리로 내 기도를 들으셨다는 신호를 보내셨습니다. '받아들이겠나이다. 원컨대 당신의 이러한
마음의 표시가 좋은 징표가 되기를! 당신께서 주신
전조를 저는 언질로 받아들이겠나이다.'라고 나는
말했소. 마침 근처에 사방으로 가지를 뻗은 아주
귀한 참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유피테르(제우스)께
봉헌된 이 나무는 도도나(그리스 에피로스 지방에
있는 도시)에서 가져온 씨앗을 틔운 것이었소.
그곳에서 우리는 곡식알을 모으는 개미떼가 긴 행렬을
지어 작은 입으로 큰 짐을 나르며 주름진 나무껍질에
나 있는 자신들의 길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보았소. 나는 그들의 수에 놀라며 '최선의 아버지시여,
제게 저만큼 많은 시민을 주시어 내빈 성벽을
채워주소서!'라고 말했소. 그러자 높다란 참나무가
떨더니 가지를 흔들어 바람도 없는데 살랑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이었소. 나는 두려움에 사지가 떨리고
머리털이 곤두섰소. 하지만 나는 대지와 참나무에
입맞추었소. 비록 소망이 있다고 고백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소망이 있었고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속에 꼭 품고 있었소.


634행—642행.

아이아코스와 그의 아들 텔라몬과 새 백성들(1676).

밤이 다가오자 근심에 찌든 우리의 육신을 잠이
차지했소. 그러자 내 눈앞에 똑같은 참나무가
서 있는 것 같았소. 똑같은 수의 가지가 나서 그 가지
위에 똑같은 수의 개미떼가 붙어 있는 그 참나무는
똑같은 동작으로 흔들리더니 곡식알을 나르는
그 대열을 아래에 있는 들판에 뿌리는 것 같았소.
그 개미떼는 갑자기 무럭무럭 자라 스스로 땅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꼿꼿이 서는 것 같았고, 여원 몸과
수많은 발과 검은 색깔을 벗고 인간의 모습과
인간의 사지를 입는 것 같았소.
그때 잠이 물러갔소. 잠이 깬 나는 내 환영을 우습게 알고 하늘의 신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투덜댔소. 그때 궁전 안에서 크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기에 나는 벌써
오랫동안 들어보지 못한 사람 소리를 듣는 줄 알았지요. 내가 이것도 꿈이려니 의심하고 있는데 텔라몬(아이아코스의 첫째 아들)이 급히 달려와 문을 열어젖히며 외쳤소.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바라시거나 믿으셨던 것 이상을 보실 거예요. 밖으로 나오세요!' 나는 밖으로 나갔고,
그곳에서 나는 꿈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자들이 대열을 짓고 서 있는 것을 보고는 곧 알아보았소. 그들은 다가오더니 나를 왕으로 맞이했소. 나는 유피테르(제우스)께서약한 것을 이행했으니, 새 백성에게 도시와
이전의경작자를 잃은 농토를 나누어주었던 것이오.
나는 그들을 뮈르미도네스족(개미족)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그들의 근본을 밝혀주는 이름이지요. 그들의 몸은 그대가 이미 보았소. 전에 가졌던 습관을 지금도 그대로 갖고 있으니, 그들은 검소하고 노고를 잘 견디고 일단
얻은 것은 잘지키고 얻은 것을 저축하는 부족이지요.
나이도 용기도 어슷비슷한 이들이 그대를 따라
싸움터로 갈 것이오. 그대를 무사히 이곳으로 데려다준
동풍이 (그대를 데려다준 것은 분명히 동풍이었소.)
남풍으로 바뀌면 말이오."



[참고. 미뤼미도네스족]

아이아코스(Aiakos)와 그의 아들 텔라몬(Telamon)과 새 백성들인 뮈르미도네스족(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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