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2권. 암곰이 된 아르카스(Arcas)의 어머니 칼리스토(Callisto).
401행—422행.
한편 전능한 아버지(제우스)는 하늘의 강력한
성채를 둘러보며 불의 힘에 느슨해져 무너져
내리려는 데는 없나 살폈다. 그는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 튼튼하고 견고한 것을 보고 나서 대지와
인간의 일들을 살펴보았다. 그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아르카디아(일설에 따르면 제우스는 아르카디아
지방의 리카이온 산에서 태어나 크레테의 동굴로
옮겨졌다고 한다)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그곳에서
샘과, 아직도 흐를 엄두를 내지 못하던 강을
복원시켰고, 대지에는 풀을,
나무에는 잎을 돌려 주었으며, 손상된 숲에게는
푸르름을 되찾을 것을 명령했다. 그는 그렇게
분주히 오가다가 노나크리스(그리스 아르카디아
지방의 산이자 도시)의 한 처녀(칼리스토, ‘가장
아름다운‘이라는 뜻)에게 시선이 머물렀고, 그러자
골수까지 화염에 휩싸였다. 그녀는 부드러운 양털실을
감거나 머리 매무세를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는
여느 소녀가 아니었다. 브로치로 옷을 여미고
흘러내리는 머리털을 흰 머리띠로 묶고는 때로는
활을 손에 들고 다녔으니, 그녀는 포이베(달과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별칭)의 군사(시녀)였다.
마이날로(아르카디아 지방의 산) 산을 거니는 요정
가운데 그녀만큼 트리비아(아르테미스의 별칭)에게
귀여움을 받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총애는
오래 가지 못하는 법이다. 태양이 중천(中天 하늘의
한 가운데)에 올라 천정(天頂 하늘의 정수리)을
막 지났을 때 소녀는 한 번도 벌목된 적이 없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어깨에서 화살통을
내리고 활시위(활줄)를 푼 다음 색칠한 화살통을
머리 밑에 베고는 풀이 무성한 바닥 위에 누웠다.
유피테르(제우스)는 그녀가 지쳐 있고 무방비
상태임을 보자 혼잣말을 했다.
[참고. 리카이온 산]
423행—444행.
“여기서 바람을 좀 피운다 해도 내 아내(유노, 헤라)가
눈치채지 못하겠지. 설령 알더라도 이만하면
그 대가로 잔소리를 들을 만하지 않은가!“ 그는 당장
디아나(아르테미스)의 옷에 디아나의 얼굴을 하고는
말했다. ”오오! 나를 따르는 무리 가운데 한 명인
소녀여, 어느 산등성이에서 사냥했는가? 소녀가
풀숲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여신이시여, 저에게는
유피테르(제우스)보다 더 위대하신 여신이시여.
그분께서 들으신다 해도 상관없어요.“
유피테르는 미소 지으며 디아나의 모습인 자신이
자신보다 더 높이 평가받는 것을 기뻐하며 소녀에게
입맞추었다. 하지만 그것은 처녀(처녀신인
디아나)가 할 법한, 조심스레 건네는 그런 입맞춤이
아니었다. 그녀가 어느 숲에서 사냥했는지
이야기하려는데 그분(제우스)은 포옹으로 이를
방해했고, 점잖지 못한 짓으로 본색을 드러냈다.
소녀는 여자가 할 수 있는 한 그분에게 반항했다.
[사투르누스(크로노스)의 따님(유노, 헤라)이여,
그대가 그곳에 있었더라면 소녀에게 더 관대했을
것이오.] 반항했지만 소녀가 누구를 이길 수 있으며,
누가 유피테르를 이길 수 있겠는가? 유피테르는
승리자로서 높은 하눌로 돌아갔고, 소녀는 수풀과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숲이 싫어졌다. 그곳을
떠나던 그녀는 하마터면 화살이 든 화살통과 그곳에
걸어둔 활을 집어 드는 것조차 잊어버릴 뻔했다.
보라, 딕튄나(‘사냥용 그물의 여신‘이라는 뜻으로
사냥의 여신인 아르테미스의 별칭)가 자기를 따르는
무리를 거느리고 사냥해서 잡은 짐승을 뽐내며 높은
마이날로스 산을 올라오고 있었다. 여신은 소녀를 보자
가까이 오라고 불렀다. 이에 그녀는 뒷걸음쳤으니,
처음에는 여신이 유피테르가 아닐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445행—464행.
하지만 그녀는 여신의 뒤에 다른 요정들이 오는
것을 보고는 속임수가 아님을 알아차리고 이들에게
다가갔다. 아아, 죄를 짓고도 그것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소녀는
눈을 내리깔고 걷기만 할 뿐, 여느 때처럼 여신의
곁으로 다가서지 못했고 무리 전체의 선두에
서지도 못했다. 그녀의 침묵과 홍조는 그녀가
정조를 잃었음을 보여주었다.
디아나가 처녀가 아니었더라면 수천 가지 징표로
그녀의 죄과를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요정들은 알아챘다고 한다. 초승달의 뿔들이
아홉 번째로 원(圓)을 채우기 시작했을 때, 여신은
사냥과 오라비(태양과 사냥의 신 아폴로, 아폴론)의
따가운 햇볕에 지쳐 서늘한 숲을 찾았는데,
그곳에서는 시냇물이 졸졸거리며 미끄러지듯
흘러나와 가는 모래 위로 잔물결을 일으키고
있었다. 여신은 그 장소를 칭찬하고는 발을 물속에
담갔다. 여신은 물도 칭찬하고 나서 말했다.
“이곳에는 아무도 보는 이가 없으니, 우리 옷을
벗고 시냇물에서 멱을 감자꾸나!”
파르라시아(아르카디아 지방의 도시. 여기서
‘파르라시아‘는 ‘아르카디아‘라는 뜻이다)의
요정은 얼굴을 붉혔고, 다른 요정들이 모두 옷을
벗는 동안 그녀만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미적거렸다. 머뭇거리던 그녀에게서 옷을 벗기자
알몸과 더불어 그녀의 죄과가 드러났다. 그녀가
질겁하며 두 손으로 아랫배를 가리려고 했을 때,
킨티아(‘킨투스 산에서 태어난 여신‘이라는 뜻으로
다이나의 별칭 중 하나)가 말했다. “당장 이곳에서
꺼져버려라! 신성한 샘도 더럽히지 마라!”
465행—490행.
여신은 그녀에게 요정의 무리를 떠나라고 명령했다.
이 모든 것을 위대한 천둥 신(제우스)의 부인(헤라)은
이미 오래전에 알아채고 적당한 때가 올 때까지
미루고 있었다. 한데 이제 더이상 미룰 이유가
없어졌으니, 시앗(남편의 첩인 칼리스토)에게서
벌써 아르카스라는 사내아이가 태어났던 것이다.
(이것이 그녀를 특히 가슴 아프게 했다.)
유노(헤라)는 마음속으로 화가 나
그 사내아이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 간통한 계집아,
모자라는 것이라고는 네가 자식을 낳는 것이었는데,
네가 자식을 낳아 내가 당한 모욕을 널리 알리고
내 남편 유피테르(제우스)의 수치를 증언하는구나.
이제 너(칼리스토)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
이 발칙한 계집, 너 자신과 내 남편을 즐겁게
해주었던 네 미색을 내가 네게서 빼앗겠단 말이다.”
이렇게 말하고 유노는 그녀의 앞머리를
움켜쥐더니 땅바닥으로 얼굴이 고꾸라지도록
내동댕이쳤다. 그녀가 탄원하려고 두 팔을 내밀자
두 팔에 검은 센털이 곤두서기 시작했고, 두 손은
구부러지며 안으로 굽은 발톱으로 자라나더니
발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전에 유피테르가
창찬하던 두 입술이 쭉 째지며 보기 흉하게
일그려졌다. 그리고 기도와 간청하는 말이 동정을
사지 못하도록 그녀는 말하는 능력도 빼앗겼다.
그리하여 화난 듯한 위협적이고 무시무시한
목소리가 그녀의 거친 목구멍에서 터져 나왔다.
그녀는 곰이 되었지만, 그래도 예전의 마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녀는 끊임없는 탄식으로 자신의
슬픔을 드러냈고, 두 손을 생긴 그대로 하늘의
별들을 향해 뻗었으며, 비록 말은 못 해도
유피테르(제우스)의 배은망덕을 원망했다.
아아, 그녀는 혼자 숲속에서 쉴 용기가 나지 않아
얼마나 자주 자기 집 앞으로, 전에는 자기 것이었던
들판에서 헤맸던가!
491행—495행.
아아, 얼마나 자주 그녀는 개떼가 짖는 소리에
바위 위로 쫓겼으며, 스스로 사냥꾼이었으면서도
사냥꾼들 앞에서 놀라 도망쳤던가! 가끔 그녀는
자신의 겉모습을 생각하지 못한 채 야수를 보면
얼른 숨었다. 그녀는 암곰이 되어서도 산에서 수곰을
보면 전율했고, 자기 아버지(뤼카온, 그리스
아르카디아 지방의 왕)도 그(야수)중 한 마리인데도
늑대떼를 무서워했다. (제우스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리카온을 늑대로 변신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