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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15권. 뮈스켈로스(Myscel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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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제2대 왕 누마 폼필리우스〉, 장기욤 무아트(Jean-Guillaume Moitte, 1746–1810),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 소장. 누마 폼필리우스(Numa Pompilius, 기원전 715–673년 재위)는 로마 제2대 왕으로, 사비니(Sabini) 출신이며 고향은 쿠레스(Cures, 사비니의 도시)이고, 전승에 따르면 사비니 귀족 가문 출신으로 로물루스(Romulus) 사후 로마와 사비니 세력의 화합을 상징하는 인물로 추대되었다.




01행—11행.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 정착민들이 건설한 식민지 지역인 마그나 그라이키아>. 브루티움(Brutium) 지방의 도시 크로토나(Crotona), 이오니아 해(lonian Sea)의 라틴어 이름 이오니움 해(Mare lonium).


그사이 사람들은 그토록
큰 업무의 짐을 감당할 만하고,
그토록 위대한
왕(로물루스, 로마의 건국자이자
초대 왕)의 뒤를 이을 만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러자 미래의 진실한 예언녀인
소문의 여신(파마, 소문과 명성을
의인화한 여신)이
왕위를 위하여 유명한
누마(Numa Pompilius, 사비니족
출신의 로마 제2대 왕)를 뽑았다.
그는 사비니인들(Sabini, 로마
북동부 사비니 지역에 거주하던
고대 부족)의 관습을
아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넓은 마음속에 더 큰 뜻을 품고
사물들의 본성이
무엇인지 규명하려 했다.
그런 일을 좋아한 나머지
누마는 고향인
쿠레스(Cures, 사비니의
도시)를 떠나 전에
헤르쿨레스(Hercules,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를
환대한 적이 있는 도시(크로토나
또는 크로톤, 남이탈리아 브루티움
지방의 그리스 식민 도시)를
찾아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가 이탈리아의 해안에다
이 그라이키아(Graecia, 그리스의
라틴어 명칭)의 성벽을 쌓은 자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고사(故事)에 밝은,
그곳의 나이 많은 토착민 한 명이
그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12행—13행.

〈헤라클레스와 게뤼온의 소떼〉, 1537년 이후, 109.3 × 98.5 cm, 루카스 크라나흐 엘더(Lucas Cranach the Elder, 1472–1553).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유피테르(Jupite,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의
아들(헤르쿨레스,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이
히베리아(Hispania, 리베리아의
라틴어 이름)의
소떼(게뤼온의 소떼 또는
히베리아의 소떼)로 부자가 되어”



13행—30행.

〈아낙시만드로스(기원전 6세기)의 세계 지도〉, 재현도, 밀레토스(Miletos)의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기원전 610–546)의 우주론과 지리관에 기초한 고대 세계 지도.


오케아누스(Oceanus, 대지를
감돌아 흐르는 바다)에서
돌아오다가 운 좋게
라키니움(Lacinium, 크로토나 도시
남동쪽에 있는 곶)의 해안에 닿은 다음,
가축 떼가 부드러운 풀을 뜯는 동안
그 자신은 위대한 크로톤(Croton)의
집과 환대하는 지붕 밑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쉬며 긴 노고로부터
원기를 회복하고 떠나며
‘그대의 손자(뮈스켈로스) 대에는
이곳에 도시가 설 것이오.’라고 말했는데,
그 약속이 실현되었다고 전한다.
뮈스켈로스(Myskellos)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아르고스(Argos, 그리스의 도시)
사람 알레몬(Alemon)의 아들로
그 당시
신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지요.
그(뮈스켈로스)가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을 때
몽둥이를 들고 다니는
이(헤르쿨레스)가
그의 위에 몸을 구부리고는
’가서 머나먼 아이사르(Aisaros,
크로토나 북쪽의 강)의
돌이 많은 강바닥을 찾도록 하시오!
자, 선조들의
거처(아르고스)를 떠나시오!’라고
말하며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무서운
일을 당하게 하겠다고 위협했소.
그러고는 잠과
신(헤르쿨레스)이 함께 사라졌소.
알레몬의 아들은 일어나 방금 본
환영을 혼자 말없이 되새기며
어떻게 할까 망설이며
오랫동안 자신과 싸웠소.
신(헤르쿨레스)은
떠나라고 명령 했으나
국법은 떠나는 것을 금했소.
조국을 바꾸려 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게 되어 있었지요.
찬란한 태양신(헬리오스 Helios)이
빛나는 머리를
오케아누스(Oceanus)에 감추고,



31행—38행.

〈밤의 여신 닉스〉, 1900년경, 레옹 프레데리크(Léon Frédéric, 1856–1940).


가장 짙은 밤의 여신(닉스 Nyx)이
별이 총총한 머리를 들었을 때,
같은 신(헤르쿨레스)이
그(미스켈로스)에게 나타나
같은 지시를 내리며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더
나쁜 일을 더 많이 당하게 하겠다고
위협하는 것 같았소.
그는 깜짝 놀라
아버지(알레몬)에게서 물려 받은
화로와 가정을 낯선
곳(아이사르)으로 옮길 채비를 했소.
그리하여 시내에 소문이 퍼지자,
뮈스켈로스(Myskellos)는
범법자로 재판을 받게 되었소.
심리가 끝나고 증인 없이도
유죄가 명백히 입증되자,
형색이 남루한
피고인(미스켈로스)이
하늘의 신들을 향하여
얼굴과 손을 들고 말했소.



39행—48행.

<헤르쿨레스의 화장용 장작더미에 불을 놓아주는 필록테테스>, 루이 비네(1744–1800).



열두 고역으로
하늘에 오를 권리를 부여 받으신
분(헤르쿨레스)이시여,
부디 나를 도와 주소서!
내 죄는 그대가 시키신 것이니까요.’
옛날에는 흰 돌과
검은 돌을 쓰는 관습이 있었는데,
검은 돌은 피고인에게 유죄 선고를,
흰 돌은 무죄 선고를 하는 데
쓰였지요. 이때에도 그런 식으로
가혹한 판결이 내려졌으니,
무자비한 항아리 속으로 던져진 돌은
모두 검은 것이었소.
그러나 항아리를 뒤집어
세어보기 위해 돌들을 쏟았을 때,
돌의 색깔은
모두 검은색에서 흰색으로 변했소.
그리하여 헤르쿨레스(Hercules)의
뜻에 따라 유리한 판결이 내려져
알레몬(Alemon)의
아들(미스켈로스)은 석방되었소.



48행—49행.

<암피트리온의 인물관계도>.


그(미스켈로스)는
수호신(헤르쿨레스)인,
암피트리온(Amphitryon,
헤르쿨레스의 양아버지)의
아들(헤르쿨레스,
유피테르의 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서
순풍에 돛을 달고
이오니움 해(Mare Ionium, 이오니아
해의 라틴어 이름)를 항해했소.



50행—59행.

<기원전 8~5세기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에 형성된 그리스 식민 도시들의 분포를 보여주는 지도>, 아풀리아(Apulia) 지방의 타렌툼(Tarentum), 루카니아(Lucania) 지방의 쉬바리스/투리이(Sybaris/Thurii), 브루티움(Bruttium) 지방의 크로톤(Croton)과 아이사르(Aisaros) 등이 있다.


그는 라케다이몬(Lacedaemon,
그리스의 도시 스파르테의 별칭)의
타렌툼(Tarentum, 아풀리아
지방의 도시)과,
쉬바리스(Sybaris, 루카니아
지방의 도시)와,
살렌티니족(Salentini, 타렌툼
근처에 살던 부족)이
세운 네레툼(Neretum, 아풀리아
지방의 도시)과,
투리이(Thurii, 파괴된 쉬바리스가
있던 자리에 아테나이인들이
다시 세운 도시) 만과,
네메세(Nemese, 브루티움 지방의
도시)와,
이아퓌기아(Iapygia, 아풀리아
남부의 고대 지명)의
들판을 지나 항해하였다.
그는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여러 해안 지역을 간신히 지난 뒤
운명이 정해준
아이사르 강(Aisaros, 브루티움
지방의 강) 하구를 발견했고,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서
크로톤(Croton)의
신성한 뼈가 묻혀 있는
무덤을 발견하였다.
거기 신(헤르쿨레스)이
명령한 땅에다 그는 성벽을 세우고,
그곳에 묻힌 사람의
이름(크로톤)을 따서
도시의
이름(크로톤, 아이사르 강
남쪽의 도시)을 지었지요.“
확실한 전승에 따르면,
그곳의 내력과 이탈리아 땅에
도시가 세워진 경위는 그러했다.



<참고, 마그나 그라이키아>

마그나 그라이키아(Magna Graecia)는 라틴어로 ‘대(大)그리스’를 뜻하는 명칭으로, 본래 로마인들이 남부 이탈리아 일대에 밀집해 번영하던 그리스계 도시들을 가리켜 사용한 표현이다. 기원전 8세기 중엽 이후 에우보이아·아카이아·스파르타·코린토스 등 그리스 본토와 에게해 지역의 폴리스들은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연안에 새로운 정착 공동체를 건설하였는데, 이는 근대적 의미의 식민지(colony)라기보다 아포이키아(apoikia, 모도시의 시민 집단이 이주하여 건설한 독립적 폴리스)의 성격을 지녔다. 이 과정에서 타렌툼(스파르타계), 쉬바리스와 크로톤(아카이아계), 시라쿠사(코린토스계) 등 수많은 폴리스가 형성되었으며, 특히 시칠리아에서는 아크라가스, 셀리눈테 등의 도시가 성장하여 카르타고 세력과 경쟁하는 서지중해의 전략적·경제적 거점으로 발전하였다. 이 지역은 단순한 이주 정착지를 넘어 활발한 교역망과 도시 제도, 그리고 피타고라스 학파를 비롯한 철학적·종교적 전통이 전개된 공간이었으며, 훗날 로마가 남부 이탈리아를 병합하는 과정에서 직접 접촉한 고도화된 그리스 문명의 장이 되었다. 따라서 ‘마그나 그라이키아’라는 명칭은 지리적 범주를 넘어, 로마가 그리스 문화를 수용하고 변용해 가는 역사적 계기를 내포하는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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