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8행—304행.

파포스(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의 딸)의 아들이
키니라스인데, 자식이 없었더라면 키니라스는 행복한
사람 축에 끼었을 것이오. 내가 노래하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니 딸들은 이곳을 떠나시고, 아버지들도 이곳을
떠나시오! 혹시 내 노래가 그대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면, 이 이야기는 믿지 말고 그런 일은
없었다고 생각하시고, 혹시 믿는다면 그 행위가 받은
벌도 믿어주시구려! 자연이 그런 범죄가 일어나는 것을 허용한다면,
305행—307행.

이스마루스(트라키아 지방의 도시이자
산으로 헤브루스 강 하구의 서쪽에 있다. 여기서
이스마루스는 트라키아라는 뜻이다)의 백성과
이 땅과 이 나라(시프로스 섬)가 그런 무도한 짓을
낳은 지역(트라키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307행—310행.

팡카이아(아라비아 동쪽 홍해에 있는 전설적인 섬)
땅은 육두구가 많이 나고, 육계와 봉아술과 나무에서
배어나오는 유향과 온갖 꽃이 나는 곳이라 해도,
거기서 몰약(몰약의 라틴어는 미르라Myrrha이다)
나무도 자라는 한 부러움을 사지는 못하리라.
이 새 나무(몰약 나무)는 그럴 만한 가치는 없었소.
311행—356행.

미르라여, 쿠피도(사랑의 신 에로스)도 자신의
화살이 그대를 맞히지 않았다고 부인하며 자신의
횃불이 그대의 범죄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소.
세 자매들(복수의 여신들) 가운데 한 명이
스틱스(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이루는 강)의 화염과
독으로 부어오른 독사로 그대를 덮쳤던 것이오.
(일설에 따르면 미르라가 아버지에게 연정을
품게 된 것은 그녀가 아프로디테 여신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버지를 증오하는 것도 죄가 되지만 이런 종류의
사랑은 증오보다도 더 큰 죄가 되기 때문이오.
사방으로부터 내로라하는 귀족들이 그대를 원했고,
온 동방의 젊은이들이 나타나 다투어 그대에게
장가들려고 했소. 미르라여, 그 모든 이 중에서
한 명을 남편으로 고르되, 한 명(그녀의 아버지)만은
그들 중에 포함시키지 마시라! 사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이 사악한 것임을 알고 그것과 싸우며
혼잣말을 했소.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 거지?
내 의도가 뭐야? 제발 신들과 자식 된 도리와
부모님의 신성한 권리는 이 무도한 짓을 막아주고,
이 범죄를 제지해주세요, 이것이 정말로 범죄라면!
하지만 자식 된 도리가 반드시 이런 사랑을 저주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 않는가! 다른 동물은 마음대로
교합하지 않는가! 암송아지는 제 아비를 등에 태우는
것을 수치스러운 짓으로 여기지 않으며,
수말에게는 제 딸이 아내가 되며, 숫양은 제가 낳은
암양과 짝짓기를 하며, 새는 그 씨에서 제가
잉태되었던 수컷한테서 저도 잉태하지 않는가!
그런 사랑이 허용되는 것들은 행복하도다!
인간의 세심함이 악의적인 법을 제정하여,
자연이 허용하는 것을 시기심 많은 법이 금하는구나.
그런데도 어머니가 아들과 결혼하고 딸이 아버지와
결혼하는, 그리하여 이런 이중의 사랑으로 가족간의
유대가 더욱 공고해지는 그런 부족도 있다지 않는가!
나야말로 불행하구나! 그런 곳에서 태어나는 행운도
잡지 못했고 단순히 출생지로 인해 방해를 받고 있으니
말이야. 한데 내가 왜 자꾸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
금지된 희망들이여, 너희는 사라져버려라! 그분은
사랑받을 만하지. 하지만 아버지로서 그렇지.
내가 위대한 키니라스의 딸이 아니라면 키니라스와
잠자리를 같이할 수 있었겠지. 그분은 내 것이기
때문에 내 것이 될 수 없어. 가깝다는 것이 나에게는
오히려 방해만 돼. 오히려 낯선 여자라면 더 힘을
쓸 수 있으련만. 범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나는
조국의 국경을 뒤로하고 이곳에서 멀리 떠나고 싶어.
하지만 사악한 정염이 가지 못하게 막는구나.
다른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키니라스를 가까이서
보고 만지고 대화하고 입이라도 맞추라고 말이야.
그 이상의 것은 바랄 수 없겠지? 이 불효한 소녀여,
네가 얼마나 많은 권리와 이름을 혼동하고 있는
줄 알아? 너는 어머니의 시앗(남편의 첩)이 되고
아버지의 첩이 되겠다는 거니? 너는 네 아들의
누이라고, 네 오라비의 어머니라고 불리겠다는 거니?
너는 머리털이 올올이 시커먼 뱀인 자매들(복수의
여신들)이 무섭지도 않니? 죄지은 자들의 마음 앞에
나타나 무자비한 횃불로 그들의 눈과 얼굴을
공격한다지 않니? 그러니 너는 아직 몸으로 죄를
짓지 않았을 때, 마음속으로 죄를 꾀하지 말고
금지된 동침으로 위대한 자연의 계약을 어기지 마!
네가 간절히 원해도 현실이 이를 금하고 있어.
그분(아버지)은 경건하고 도의를 아시는 분이야.
아아, 그분에게도 나와 같은 광기가 깃들어 있었으면
좋으련만!' 이렇게 그녀는 말했소.
356행—386행.

하지만 키니라스는 수많은 구혼자가 몰려온 까닭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이들의 이름을 열거하며
누구를 남편으로 삼기를 원하느냐고 딸에게 물었소.
그녀는 말없이 아버지의 얼굴을 응시했고,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가 눈물을 떨구었소.
키니라스는 그것이 소녀의 수줍음 탓이라 믿고
그녀에게 울지 말라며 볼을 닦아주고
입맞춰주었소. 그가 입맞춰주자 미르라는 너무나
좋아하며, 어떤 남편을 원하느냐는 물음에
'아버지 같은 남편을요.' 하고 말했소.
그는 그녀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칭찬해주며
'그래, 언제나 그렇게 효성이 깊기를!' 하고 말했소.
효성이란 말에 소녀는 자신의 죄를 의식하고는
고개를 숙였소. 때는 한밤중이어서, 잠이 인간의
근심 걱정과 육신을 늦춰주었소. 하지만 키니라스의
딸은 밤새도록 잠 못 이루고 제어할수없는 정염에
사로잡혀 광적인 욕망을 되살리며 때로는 절망하는가
하면 때로는 시험해보기로 작정했고,
부끄러워하면서도 원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소. 마치 도끼에 부상당한 거목이 마지막
일격을 기다리며 어느 쪽으로 넘어질까 망설이며
사방을 위협하듯이, 꼭 그처럼 그녀의 마음은 수많은
고통에 허약해져 불안정하게 흔들리며 이쪽으로
기울어졌다 저쪽으로 기울어졌다 했소.
죽지 않고서는 자신의 사랑에 절제도, 안식도
찾을 수 없었소. 그녀는 죽기로 결심했소.
그녀는 목매어 죽기로 결심하고 일어나 대들보에
자신의 허리띠를 매며 안녕히 계세요, 사랑하는
키니라스여! 그리고 내가 죽은 까닭을 알고 계세요!'
라고 말하고는 이미 핏기라고는 없는 목에다,
고를 낸 매듭을 매고 있었소.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녀가 중얼거리던 말소리가 문밖에서 방을
지키던 충직한 유모의 귀에 들어갔다고 하오.
노파가 일어서서 방문을 열자 미르라가 죽을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 보였소. 노파는 비명을 지르고
가슴을 치고 옷을 찢으며 동시에 고를 낸 매듭을
잡아 소녀의 목에서 벗겼소.
387행—436행.

그러고 나서 마침내 노파는 짬을 내어 눈물을 흘리며
그녀를 껴안고는 죽으려고 한 까닭을 물었소.
소녀는 입을 다문 채 말없이 꼼짝 않고
방바닥만 응시하며, 꾸물대다가 자살하려던
시도가 들키고 말았다고 괴로워했소. 노파는 자신의
백발과 시들어버린 젖가슴을 보여주며 요람에서부터
소녀를 양육해준 공을 봐서라도 괴로워하는 까닭을
자기에게 털어놓으라고 집요하게 간청했소. 소녀는
간청하는 노파에게서 얼굴을 돌리며 한숨을 쉬었소.
유모는 기어코 알아내야겠다고 결심하고 비밀을
지키는 것 이상을 약속했소. '말해주세요.' 하고
그녀는 말했소. '그리고 내가 아씨를 돕게 해주세요.
늙었어도 나태하지는 않아요. 광기에 휩싸인 것이라면, 주문과 약초로 그것을 치료해줄 여인이 있어요. 누가
마법을 걸었다면, 마법 의식으로 정화될 수 있어요.
신들께서 노여워하시는 것이라면, 노여움은 제물로
달래면 돼요. 그밖에 또 무엇을 생각할 수 있겠어요?
확실히 아씨의 운과 집안은 안전하고 번창하며,
어머님도 아버님도 다 살아 계시잖아요.' 미르라는
아버지란 말을 듣고는 가슴 맨 밑바닥으로부터
한숨을 쉬었소. 유모는 소녀가 마음속으로 무도한
짓을 생각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그래도
사랑 때문이라는 예감은 들었소. 그래서 유모는
그것이 무엇이든 자기에게도 말해달라고 고집스레
간청했소. 유모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소녀를
자신의 늙은 품에 안고는 허약한 두 팔로 소녀를
껴안으며 말했소.
‘알아요. 아씨께서는 사랑하고 계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 일에도 나는 성심껏 아씨에게
봉사할 거예요. 아버지께서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말이에요.' 그러자 미르라가 미친 듯이 노파의 품에서
일어서더니 침상에 얼굴을 묻으며 '제발 나가든지,
아니면 나를 비참하고 부끄럽게 만들지 말아요!'
라고 말했고, 그런데도 유모가 졸라대자 '나가든지,
아니면 왜 내가 괴로워하는지 묻지 말아요.
그대가 알려 하는 것은 범죄예요.'라고 말했소.
노파는 겁이 나서 나이와 두려움 때문에 떨리는
두 손을 내밀고는 자기가 기른 소녀의 발 앞에
탄원자로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 때로는 감언이설로
꼬이는가 하면 때로는 겁을 주며, 자기에게 알려주지
않으면 올가미 사건과 죽으려고 했던 일을 알리겠다고
위협했고, 사랑에 관해 털어놓으면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소. 소녀는 고개를 들어 솟아오르는 눈물을
유모의 젖가슴에다 쏟았소. 소녀는 몇 번이나
고백하려고 했으나 매번 말문이 막혔소. 마침내
소녀는 부끄럼 타는 얼굴을 옷으로 가리며 말했소.
’아, 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참 남편 복도 많으시지!'
거기까지만 말하고 소녀는 한숨을 내쉬었소.
유모는 등골이 오싹했소. (그녀는 알아챘던 것이오.)
그녀의 온 머리 위에는 눈처럼 흰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섰소. 유모는 그 끔찍한 사랑을 몰아내기
위하여 많은 말을 더 했소, 혹시 그것이 가능할까 해서.
소녀는 그 충고가 옳다는 것을 인정했소.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것을 갖지 못할 바엔 죽겠다는 결심을
비쳤소. '그렇다면 살아서' 하고 유모가 말했소.
'가지세요, 아씨의 •••' 유모는 차마 아버지를 이란
말이 나오지 않아 입을 다물고는 신들의 이름으로
자신의 약속을 다짐했소. 해마다 열리는
케레스(곡식과 수확의 여신 데메테르)의
축제가 돌아왔소. 이때에는 경건한 어머니들이
몸에 눈처럼 흰옷을 두르고 그 해에 거둔 수확의
맏물로 곡식 이삭으로 만든 화환을 갖다 바쳤소.
그들은 아흐레 밤 동안 사랑과 남자와의 접촉을
금기 사항에 포함시켰소. 그 무리들 사이에는 왕비
켕크레이스도 있었는데, 그녀는 열심히 신성한
비밀 의식에 참가했소.
437행—464행.

그리하여 왕의 침상에
합법적인 아내의 자리가 비었을 때, 키니라스가
거나하게 취한 것을 보고는 지나치게 열성적인
유모가 가짜 이름을 대며 왕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소녀가 있는데 인물이 일색이라고 전했소. 소녀의
나이를 묻자 유모는 '미르라와 동갑이에요.'라고
말했소. 왕이 그녀를 데려오라고 명령하자
유모는 돌아와 '기뻐하세요, 아씨! 우리가 이겼어요!'
라고 말했소. 불행한 소녀는 온 마음으로 기뻐하지
못했소. 그녀의 가슴은 슬픈 예감으로 가득찼소.
그래도 그녀는 기뻤소. 그만큼 그녀는 마음이
갈팡질팡했소. 때는 만물이 침묵하고,
보오테스(목동자리. 소몰이꾼)가
트리오네스들(‘탈곡하는 황소들'이라는 뜻.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를 말한다) 사이에서
수레 채를 기울여 자기 짐수레(큰곰자리를
그리스인들은 그 생긴 모양에 따라
짐수레라고도 부른다)를 아래로 향하는 시간이었소.
그녀는 자신의 범행을 향해 나아갔소.
금빛 달은 하늘에서 도망치고, 별들은 검은 구름
뒤에 숨어 있었소. 그리하여 밤에는 불빛이라고는
없었소. 맨 먼저 얼굴을 가린 것은,
이카리오스(에리고네의 아버지로 죽어서
보오테스자리가 되었다고 한다)여,
그대와, 아버지를 향한 효성으로 하늘로 올려진
에리고네(이카리오스의 딸로 그녀는 아버지의
억울한 주검을 보고서 자살하여 처녀자리♍가
되었다고 한다)였소. 미르라는 세 번이나 발에
걸려 비틀거리자 이 전조에 멈춰 섰고, 세 번이나
무덤의 새인 올빼미가 죽음의 노래로 불길한 전조를
보냈소. 그런데도 나아갔으니, 어둠과 캄캄한 밤이
그녀의 부끄럼을 덜어주었던 것이오. 그녀는
왼손으로는 유모의 손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어둠을
더듬으며 나아갔소. 이미 그녀는 문턱에 이르렀고,
이미 문은 열렸으며, 이미 안으로 인도되었소.
하지만 무릎이 떨리며 오금이 내려앉았고,
얼굴에서는 핏기가 가시어 그녀는 제 안색이
아니었으며, 걸음을 떼면서도 정신이 오락가락했소.
자신의 범죄를 향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그만큼
더 떨렸고, 자신의 대담한 짓이 후회되어 정체가
드러나기 전에 돌아설 수 있기를 원했소.
그녀가 머뭇거리자 노파가 그녀의 손을 잡고
높다란 침상으로 데려가더니 그녀를 넘겨주며
‘키니라스 전하, 받으소서!이 여인은 전하의
것이옵니다.'라고 말하고 저주받을 두 육신을
결합시켜주었소.
[참고. 보오테스자리]

465행—476행.

아버지는 제 혈육을 근친상간의
침상으로 받아들이며 그녀의 소녀다운 두려움을
진정시키려 했고 겁에 질린 그녀를 격려했소.
그는 그녀를 나이에 걸맞게 딸'이라고 불렀으며,
그녀는 그를 '아버지'라고 불렀으니, 그들이
지은 죄에 어찌 이름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녀는 아버지로 가득차 방을 나왔고, 저주받을
자궁에 근친상간의 씨앗을 범죄로 잉태한 채 품고
있었소. 다음날 밤에도 범행은 되풀이되었고,
그것이 끝이 아니었소. 마침내 키니라스는 그토록
여러 번 동침한 뒤에 자신의 애인이 누군지
알고 싶어 등불을 가지고 왔다가 자신의 범행과 딸을
보게 되었소. 그는 너무나 괴로워 말문이 막힌 채
벽에 걸려 있던 칼집에서 번쩍이는 칼을 뺐소.
미르라는 도망쳤고, 캄캄한 밤의 어둠덕분에
죽음을 면했소.
477행—489행.

그녀는 넓은 들판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가
아라비아의 종려나무와 팡카이아 나라를 떠났소.
초승달의 뿔들이 아홉 번 돌아오는 동안 그녀는
여전히 헤매는 신세였고 지칠 대로 지쳐
사바이이족(서남 아라비아의 사바이이 지역에
살던 부족)의 땅에 주저앉았소. 이제 그녀는
자궁 안의 짐을 간신히 넣고 다닐 정도였소.
그때 그녀는 무엇을 기원해야 할지 알지 못한 채
죽음의 공포와 삶의 혐오 사이에서 이런 말로
기도했소. '신들이시여, 혹시 이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 계신다면, 아뢰옵건대, 나는 벌받을 짓을 했으니
벌받기를 거절하지 않겠나이다. 하오나 내가
살아남아 산 자들을 모욕하고, 죽어서 죽은 자들을
모욕하지 않도록 두 영역에서 나를 내쫓으시고,
나를 변하게 하시되 살지도, 죽지도 않게 해주소서!'
어떤 신이 그녀의 기도를 들었소. 아무튼 그녀의
마지막 간청을 들어주는 신들이 있었소.
489행—518행.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다리를 대지가 덮으며
그녀의 발톱에서 뿌리가 옆으로 뻗어 나와 높다란
나무줄기의 튼튼한 받침대가 되어주었기 때문이오.
그녀의 뼈는 단단한 나무가 되고, 가운데의 골수는
그대로 남고, 피는 수액이 되고,
팔은 큰가지가 되고, 손가락은 잔가지가 되고,
살갖은 딱딱한 나무껍질이 되었던 것이오.
자라나는 나무는 어느새 그녀의 무거운 자궁을
감고 그녀의 가슴을 덮고 나서 그녀의 목을 덮을
채비를 하고 있었소. 그녀는 기다리고 싶지 않아
커 올라오는 나무를 마중 나가 아래로 내려앉으며
그 나무껍질에다 얼굴을 묻었소. 그녀는 몸을
잃으면서 옛날의 감정도 잃어버렸으나,
그래도 여전히 눈물이 흘러 나무에서
뜨거운 방울이 뚝뚝 떨어졌소. 그녀의 눈물에도
명예가 주어졌으니, 나무껍질에서 방울져 떨어지는
몰약(몰약의 라틴어 미르라Myrrha는
미르나에게서 유래했다는 것이다)은 안주인의
이름을 간직한 채 영원토록 기억될 것이오.
하지만 범죄에 의해 잉태된 아이는 나무 안에서
자라나서 어머니를 떠나 바깥으로 나올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었소. 잉태한 나무는 몸이 무거워져
배가 불룩했고, 어머니에게는 뱃속의 짐이 힘에
부쳤소. 산모는 진통이 와도 말로 이를 표현할 수
없었고, 목소리로 루키나(출산의 여신으로서의 헤라
또는 아르테미스의 별칭)를 부를 수 없었소.
그래도 나무는 해산하는 여인처럼 몸을 구부린 채
연방 신음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눈물에 젖었소.
자애로운 루키나가 괴로워하는 나뭇가지에
다가서서 그 위에 손을 얹으며 출산을 돕는 주문을
외었소. 그러자 나무가 벌어지며 갈라진 나무껍질
사이로 살아 있는 짐을 내려놓으니 남자아이가
울음을 터뜨렸소. 그러자 물의 요정들이 그 아이를
부드러운 풀밭에 뉘고 어머니의 눈물을 발라주었소.
시기심조차도 그 아이의 잘생긴 얼굴을 칭찬했을
것이오. 그 아이는 화폭에 그려진 발가벗은
아모르(사랑의 신 에로스) 중 한 명 같았기 때문이오.
하지만 차림새에서도 차이가 나지 않으려면,
가벼운 화살통을 그에게 주거나
그들(이모르)에게서 빼앗아야 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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