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0행—588행.

‘어떤 소녀가 달리기 경주에서 발 빠른 남자들을
이겼다는 말을 그대도 아마 들었겠지. 그 소문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그녀가 그들을 이겼으니까.) 그녀의 빠른
발과 미모 중 어느 것이 더 칭찬받아 마땅한지
그대는 단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가 남편에 관해 물었을 때 신이 대답했어.
<아탈란타야, 너는 남편이 필요 없다. 너는 남편과의
결혼을 피하도록 하라. 하지만 네가 피하지 못하고
살게 된다면 너 자신을 잃게 되리라.> 그녀는
신탁(신의 말씀)에 놀라 결혼도 하지 않고 우거진
숲속에 살면서 치근대는 구혼자들의 무리를
가혹한 조건을 걸어 물리치곤 했어.
<먼저 경주에서 나를 이기기 전에는 나를 차지할 수
없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지. <그대들은 나랑 달리기
경주를 해요! 발 빠른 이에게는 상으로 아내와 신방이
주어지지만 그렇지 못한 이의 상은 죽음이에요.
그것이 경주의 조건이 되게 하세요!> 그녀는 사실
무자비했지만 워낙 아름답고 매력적인지라 성급한
구혼자들은 그런 조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몰려왔어.
히포메네스는 이 잔인한 경주의 구경꾼으로서
앉아 있다가 〈아니, 그토록 큰 위험을 무릅쓰고
아내를 구한단 말인가?> 하고 젊은이들의 지나친
사랑을 비난했지. 하지만 그는 그녀의 얼굴과
옷 벗은 몸을 보자마자— 그녀의 몸은 내 몸 또는
그대가 여자가 되었더라면 그대의 몸과 같았으니까—
아연실색하여 두 손을 내밀며 말했어.
<조금 전 그대들을 비난한 나를 용서하시오.
그대들이 다투는 상의 가치를 여태 몰랐지 뭐요.〉
그는 이제 정념의 포로가 되어, 젊은이 가운데
그녀보다 더 빨리 달리는 이가 없기를 바랐고,
혹시 그런 이가 있을까 시기심에서 두려워했지.
그러다 《한데 왜 나는 이 경기에서 행운을
시험해보면 안 되지?> 하고 말했어.
<신도 용감한 자들은 돕는 법이지!> 히포메네스가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소녀는
날개 달린 발걸음으로 나는 듯이 지나갔어.
아오니아(보이오티아 지방의 일부로 그곳에
헬리콘 산이 있다)의 젊은이에게는
588행—599행.

소녀가 스키티아(흑해 북쪽에 살던 기마 민족인
스키타이족의 나라)의 화살 못지않게 빨리 달리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는 소녀의 우아함에 점점
더 빠져들었어. 달리기 자체가 그녀를 우아하게
만들었지. 그녀가 신은 샌들의 빠른 발바닥으로부터
끈이 미풍에 나부꼈고, 상아 같은 어깨 위로
출렁거리는 머리 하며, 가장자리에 수를 놓은 무릎
끈도 나부꼈어. 그리고 그녀의 소녀다운 하얀 살갗이
발그레한 색을 띠기 시작하니, 그 모습은 하얀
대리석 현관 위에 쳐놓은 자줏빛 차일이 거기에
본래의 것과 다른 색조의 그늘을 드리울 때와 다르지
않았어. 나그네가 이런 것들을 눈여겨보고 있는
사이에 마지막 한 바퀴를 돈 아탈란타가 승리자로서
축제의 화관을 썼어. 패배자들은 한숨을 쉬며
약속대로 벌을 받았지.
600행—637행.

젊은이(히포메네스)는 이들의 운명에도 겁먹지
않고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서서 처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어. <왜 그대는 게으른 자들을
이김으로써 쉽게 명성을 얻으려 하시오?
자, 나와 겨루시오! 행운이 내게 승리를 준다면,
그토록 위대한 적에게 지는 것은 그대에게 치욕이
되지 않을 것이오. 내 아버지는
옹케스토스(보이오티아 지방의 도시)의
메가레우스이고, 그분의 할아버지는 넵투누스
(포세이돈)라오. 그러니까 나는 바다의 왕의
증손이오. 내 용기도 내 가문 못지않소.
행여 내가 진다면, 그대는 히포메네스를 이겼으니
기억에 남을 큰 명성을 얻을 것이오.>
스코이네우스의 딸(아탈란타)은 부드러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다가, 질까 아니면 이길까 망설이며
이렇게 혼잣말을 했어.
<잘생긴 젊은이를 시기하는 신이 누구시길래
저 사람을 죽게 하려고 소중한 목숨을 걸고 내게
구혼하라고 명령하는 것일까? 내가 판단하기에,
내게 그런 가치는 없어.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그의 미모가 아니라 (물론 그것도 나를 감동시킬 수
있겠지만) 그가 아직 소년이라는 점이야.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그 자신이 아니라 그의 나이야.
그에게는 용기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백이
있어. 혈통을 따지자면 해신의 4대손이 아닌가?
또 가혹한 운명이 그에게 나를 허락하지 않을 경우
죽을 각오를 할 만큼 나와의 결혼을 가치 있는 일로
여기고 있지 않은가? 나그네여, 할수있을 때
피투성이가 된 결혼을 뒤로하고 이곳을 떠나세요!
나와의 결혼은 잔혹한 파멸이 될 거예요. 그대와의
결혼을 거절할 소녀는 아무도 없을 것이며, 현명한
소녀라면 오히려 그대 같은 신랑을 바랄 거예요.
아니, 이미 여럿이 죽었는데 내가 왜 그런 걱정을
하고 있지? 그런 걱정은 그가 해야지. 그는 수많은
구혼자의 죽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사는 것에
싫증을 내고 있으니 죽으라고 해! 그렇다면 그는
나와 살기를 원했기 때문에 죽게 되고, 사랑한
죄로 부당한 죽음을 감수하게 될 것인가? 내가
승리한다면 감당할 수 없는 미움을 사게 될 거야.
하지만 그게 어디 내 잘못인가! 그대가 포기하거나,
아니면 그대가 제정신이 아니니 나보다 더 빠르다면
좋으련만! 아아, 그의 소년 같은 얼굴은 꼭 소녀의
얼굴 같구나. 아아, 가련한 히포메네스여, 그대가
나를 보지 않았더라면! 그대는 살 가치가 있었는데!
내가 더 복을 타고나고 무뚝뚝한 운명이 내게 결혼을
거절하지 않았다면, 그대야말로 내가 잠자리를
같이하고 싶었을 유일한 남자일 텐데!> 그녀는
순박한 데다 처음으로 사랑의 포로가 되어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했어.
637행—643행.

벌써 백성과 그녀의 아버지가 통상적인 경주를
요구하자 넵투누스(해신 포세이돈)의 자손인
히포메네스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나(아프로디테 여신)를 부르며 말했지.
<키테레이아(아프로디테 여신의 별칭)여,
바라옵건대, 내가 감하는 일을 도와주시고, 그녀가
지른 사랑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게 해주소서!>
부드러운 미풍이 그의 듣기 좋은 기도를 내게
실어다주었을 때, 솔직히 나는 감동했어. 하지만
그를 돕자면 지체할 시간이 없었지.
644행—651행.

토착민들이
타마소스(키프로스 섬의 중앙에 있는 도시)
들판이라고 부르는 들판이 있는데,
키프로스 땅에서 가장 풍요로운 지역인 이곳을
옛 원로들이 내게 봉헌하며 내 신전에 선물로
덧붙여주라고 명령했지. 그 들판 한가운데에는
황금 잎이 반짝이는 나무 한 그루가서 있는데,
그 황금가지는 바람에 딸랑딸랑 울리고 있지.
그곳에서 오는 길에 나는 마침 거기서 딴
황금 사과 세 개를 손에 들고 있었지.
히포메네스 외에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게
나는 그에게 다가가 사과들을 어디다 쓰는 것인지
가르쳐주었어.
652행—667행.

나팔이 출발하라는 신호를 울리자,
두 사람은 웅크린 자세로 출발점에서 내달았고,
모래의 표면을 빠른 발로 가볍게 스쳤지. 그대는
그들이 마른 발로 바다의 수면 위를 스쳐지나가고,
서 있는 곡식의 누런 이삭 위로 내달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큰 소리로 젊은이를
응원하며 이런 말로 격려했어.
〈이제야말로, 이제야말로 힘을 낼 때야. 히포메네스,
앞으로 내 달아! 이제야말로 있는 힘을 다해!
꾸물대지 마! 넌 꼭 이길 거야!> 이런 말을 듣고
더 좋아하는 것이 메가레우스의 영웅다운 아들인지
아니면 스코이네우스의 딸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어.
오오, 그녀는 그를 앞지를 수 있는데도 얼마나 자주
머뭇거리며 그의 얼굴을 보다가 주춤하며 마지 못해
그를 뒤에 남겨두었던가! 그의 지친 목구멍에서는
메마르고 거친 숨소리가 나는데 결승점은 아직도
멀었어. 마침내 넵투누스의 자손은 세 개의 나무 열매
가운데 하나를 던졌어. 그것을 보자 놀란 소녀는
반짝이는 사과가 탐이 나 주로에서 벗어나더니
굴러가는 황금을 집었어.
668행—672행.

히포메네스가 앞지르자
관중들이 박수갈채를 보냈지. 하지만 그녀는 재빨리
달려, 지체하느라 놓친 시간을 만회하고는 다시
젊은이를 등뒤에 남겨두었지. 두 번째 사과를 던지자
그녀는 다시 지체하다가 뒤따라와 남자를 앞질렀어.
672행—685행.

이제는 주로의 마지막 부분만이 남아 있었지.
<이제 선물을 주신 여신이시여, 오셔서 나를
도와주소서!>라고 말하고 젊은이는 반짝이는 황금을,
그녀가 돌아오면 시간이 걸리도록, 있는 힘을 다해
들판의 한쪽으로 비스듬히 던졌다.
소녀는 그것을 주우러 갈까 말까 망설이는 것 같았어.
나는 그것을 줍도록 강요하고 그녀가 주운 사과를
무겁게 함으로써 짐의 무게와 시간 손실로 똑같이
그녀를 방해했지. 하지만 내 이야기가 경주 자체보다
더 길어지는 일이 없도록, 소녀는 추월당했고
승리자는 자기 몫의 상을 데리고 갔지.
그만하면, 아도니스여,
나는 그에게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고, 분향의
명예를 받을 만하지 않은가? 한데 그는 배은망덕하게도 감사하다는 인사도, 분향도 하지 않았지. 나는 갑자기
화가 났어. 무시당한 것이 괴롭고, 또 앞으로 무시당하는 일이 없도록 나는 그 둘을 응징했으니, 사람들이
그들을 교훈으로 삼게 하려는 것이지.
686행—698행.

그들이 우거진 숲속의 신전 옆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신전은 유명한 에키온(테바이의 귀족)이 전에
서약을 이행하느라 신들의 어머니(키벨레. 소아시아
프리기아 지방의 지모신)에게 지어주었지.
먼길을 온 그들은 쉬어가고 싶었어.
히포메네스는 때 아니게 그곳에서 동침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는데, 그것은 내 신성이
불러일으킨 것이었지. 신전 가까운 곳에 햇빛이
거의 들지 않고 지붕이 자연석으로 된, 흡사 동굴
같은 구석진 곳이 있었어. 예로부터 성소로
여겨지던 이곳에 사제들이 옛 신들의 목상을
모셔놓았지. 그는 이곳으로 들어가 금지된 욕망을
채움으로써 성소를 더럽혔어. 그러자 신성한 상들은
시선을 돌렸고, 탑 모양의 관을 쓴
어머니(지모신Earth Mother 키벨레)는 그들을
스틱스(지상과 저승의 경계를 이루는 강)의
물결에 담글까 하고 망설였어. 하지만 그 벌은
가벼워 보였어.
698행—707행.

그래서 잠시 전만 해도
부드럽던 그들의 목덜미는 황갈색 갈기로 덮이고,
손톱은 구부러져 짐승의 발톱이 되고, 팔은
다리가 되고, 체중이 대부분 가슴에 실리면서
그들은 꼬리로 모래 바닥을 쓸게 되었어. 그들은
얼굴에 성난 빛을 띠고 말하는 대신 울부짖고,
신방 대신 수풀을 자주 찾곤 하지. 그들은 이제 다른
자들이 다 두려워하는 사자가 되어 길들여진 입으로
키벨레의 재갈을 문단다. 사랑하는
소년(아도니스)이여, 그대는 이들뿐 아니라,
도망치려고 등을 돌리지 않고 싸우려고 가슴을
들이미는 야수는 모두 피하라! 그대의 용기가
우리 둘(아도니스와 아프로디테)에게 파멸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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