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2행—417행.

인근의 왕자들이 모여들었고, 이웃에 있는 도시의
시민들은 가서 조의를 표하라고 자신들의 왕에게
간청했으니, 아르고스(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도시),
스파르테(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도시),
펠롭스(탄탈로스의 아들이자 니오베의 오빠)가의
거처인 미케네(펠로폰네소스 반도 아르골리스 지방의
도시), 아직은 노려보는 디아나(아르테미스)의
미움을 사지 않은 칼리돈(아이톨리아 지방의
옛 도읍), 비옥한 오르코메노스(보이오티아 지방의
도시), 청동 제품으로 이름난 코린토스(펠로폰네소스
반도 서남부에 있는 도시), 사나운 멧세네(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도시), 파트라(아카이아 지방의
도시), 클레오나이(아르골리스 지방의 도시),
[참고]

아이톨리아(AETOLIA) 지방의 칼리돈Calydon).
보이오티아(BEOTIA) 지방의 테바이(Thebes).
아티카(ATTICA) 지방의 아테나이(Athens).
트라키아(THRACE).
417행—429행.
넬레우스(필로스의 왕)의 도시 필로스(펠로폰네소스
반도 서남부에 있는 만灣), 아직은 피테우스(트로이젠의 왕으로 펠롭스의 아들)가 다스리지 않던
트로이젠(아르골리스 지방의 도시), 양쪽에 바다를 끼고 있는 이스트무스(지협) 안에 갇혀 있는 그 밖의 다른
도시와 양쪽에 바다를 끼고 있는 이스트무스
밖에 있지만 거기서 보이는 도시들이 모두 그랬다.
누가믿을 수 있겠는가? 아테나이(아테네)여,
그대만이 빠졌던 것이오. 전쟁이 그러한 예의를
지키지 못하게 했으니, 야만족의 무리가 바다를 건너와 몹소푸스(아테나이의 옛 왕으로 여기서는
아테나이의 뜻)의 성벽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것이다.
한데 트라키아의 테레우스(트라키아의 왕)가
원군을 이끌고 와서 이들(야만족)을 패배시키고 승리함으로써 큰 명성을 얻었다. 판디온(아테나이의 왕)은
그(테레우스)가 재산이 많고 군사도 많은 데다 마침 위대한 그라디부스(전쟁의 신 마르스의 별칭)의 자손인지라
그를 프로크네(판디온의 첫째 딸)와 결혼시켜 자신의
편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 결혼식에는 결혼의 여신
유노(제우스의 아내, 헤라)도,
히메나이우스(결혼의 남신)도, 그라티아(카리스)
여신들도 참석하지 않았다.
[참고]

<신들의 계보> 907행—911행.
오케아노스의 딸로 외모가 사랑스러운 에우리노메는
그분(제우스)께 볼이 예쁜 세 명의 카리스 여신인, 아글라에아, 에우프로시네(Euphrosyne),
아리따운 탈리아(Thalia)를 낳아주었다. 이들이
볼 때는 사지를 풀어버리는 사랑이 눈에서 흘러내린다. 이들의 눈썹 밑 눈길은 그만큼 아름답다.
[참고]

<신들의 계보> 945행—946행.
명성이 자자한 절름발이 헤파이스토스(대장장이의 신)는 카리스 여신들(뛰어나게 아름다운 여신들) 중에 막내둥이인 아글라에아(Aglaea 우아함을 관장)를
꽃다운 아내로 맞았다.
[참고]

히메나이오스는 보통 예술 작품에서는 날개가 달려 있고
횃불을 들고 있는 청소년 혹은 청년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형제인 쿠피도(에로스)나 아버지 바쿠스(디오니소스)와 같이 등장하기도 한다. 어머니는
베누스(아프로디테)이다.
430행—435행.

대신 자비로운 여신들(복수의 여신들의 별명으로
이들을 달래기 위해 부르는 이름)이 장례식에서
훔쳐온 햇불을 들었고, 자비로운 여신들이 결혼 침상을 꾸몄다. 그리고 신방의 지붕 위로 불길한 올빼미 한 마리가 내려앉더니 그대로 머물렀다. 이런 전조는 프로크네와 테레우스(트라키아의 왕)가 결혼할 때도 나타나더니,
그들이 부모가 될 때도 나타났다. 물론 트라키아인들은
프로크네와 테레우스의 결혼을 기뻐했고,
신들에게 감사했다.
[참고]

<신들의 계보> 180행—185행.
친아버지(크로노스의 아버지인 우라노스)의 급소를
재빨리 자르더니 아무 데나 날아가라고 등 뒤로
던져버렸다. 그러나 그것(우라노스의 급소)이
무익하게 그(크로노스)의 손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거기(우라노스의 급소)서 떨어지는
핏방울들을 가이아(대지의 여신이자 대지 그 자체)가
모두 받아 해가 다 차자 강력한 ‘복수의
여신들(티시포네, 알렉토, 메가이라)’과,
[참고]
복수의 여신(에리니스 Erinys 죄악)은
티시포네(Tisiphone ‘살인를 응징하는 여자),
알렉토(Alecto ’멈추지 않는 여자‘), 메가이라(Megaera ’시기심 많은 여자‘) 세 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특히 가족 내에서의 범죄를 응징하는 여신들로, 올림포스의 신들보다 더 오래되었으며
제우스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흔히 손에 횃불 또는
회초리를 들고 머리털은 뱀들로 이루어져 있는
날개달린 모습으로 그려지곤 했다. ’자비로운 여신들‘
또는 ‘존엄한 여신들‘이라고도 불리는데, 그들을
달래기 위함이다. 피해자가 부르지 않으면 지하의
가장 깊은 곳에 머무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436행—441행.

트라키아인들은 판디온의 딸(프로크네)이 자신들의
이름난 왕(테레우스)과 결혼한 날과, 그들 사이에서
이티스가 태어난 날을 축제일로 선포하게 했다.
그만큼 무엇이 우리(트라키아인)의 이익인지 알기
어려운 것이다. 티탄(태양신)이 세월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또 굴려 다섯 번 가을이 지났을 때 프로크네가
아양을 떨며 남편(테레우스)에게 말했다. “그대가
나를 조금이라도 사랑한다면 내가 아우(프로크네의
여동생 필로멜라)를 방문하는 것을 허락하든지
아니면 아우가 이리 오게 해주세요.
[참고]

442행—476행.
장인(프로크네의 아버지 판디온)에게는
아우(필로멜라)가 잠시 머물다가 돌아간다고 약속하세요. 아우를 볼 수 있게 해주신다면 그것은 내게 큰 선물이 될 거예요.” 그래서 테레우스는 함선들을
바닷물에 띄우라고 명령하더니 돛과 노의 도움을
받아 케크릅스(아테나이의 전설적인 건설자로
여기서는 아테나이를 뜻한다)의 항구에 들어가
피라이우스(아테나이의 외항)의 해변가에 정박했다. 테레우스가 장인(판디온)을 알현했을 때 두 사람은 서로 악수했고, 두 사람의 만남은 순조롭게 시작되는 것 같았다. 그(테레우스)는 찾아온 용건과 아내(프로크네)의
부탁을 말하며 처제(필로멜라)를 자기와 함께 가게
해주면 빠른 시일 안에 돌려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때, 보라. 필로멜라가
한껏 화려하게 차려입고 들어왔다. 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움 자체는 더 화려했다. 물의 요정들과 나무의
요정들이 숲속을 거닐 때의 모습이라고 우리가 듣던
그런 모습이었다. 그들(요정들)도 필로멜라처럼
세련되고 우아할 수 있다면 말이다. 소녀(필로멜라)를
보자 테레우스는 순식간에 활활 타올랐으니,
그것은 마치 익은 곡식이나 마른풀이나 축사에
쌓아놓은 건초 더미에 불이 닿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소녀의 미모는 실제로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그(테레우스)의 경우 타고난 욕정에 더욱
자극받은 데다, 원래 그 지방사람들이 애욕에
약했다. 그렇듯 그는 자신의 부족함과 자신의 악덕 탓에 타올랐던 것이다. 테레우스는 자신의 왕국을
거는 일이 있더라도 필로멜라를 호위하는 시녀들과
충성스러운 유모를 매수하고 엄청난 선물로 그녀를
유혹하거나, 아니면 그녀를 납치하여 납치된 그녀를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지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미친 사랑의 포로가 된 만큼 감행하지 못할 짓이
없었고, 그의 가슴은 그 안에서 타고 있는 불길을
억제할 수 없었다. 이제 그(테레우스)는 지체되는
것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프로크네의 부탁을 열심히
되풀이하며 그녀의 이름을 빌려 제 소원을 이루려
했다. 사랑은 그(테레우스)를 달변으로 만들었고,
자신의 요구가 지나치다 싶으면 그때마다 그것은
프로크네의 뜻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그녀가 시킨 양
그는 간청에 눈물을 덧붙였다. 하늘의 신들이시여,
얼마나 많은 눈먼 밤이 인간의 가슴속을 지배하는
것입니까? 테레우스는 자신의 범행 계획 자체에
의해 경건하다는 평을 들었고 자신의 범행으로 칭찬까지 들었다. 어디 그뿐인가 필로멜라도 같은 것을 바라며
두 팔로 아버지의 목을 끌어안고는 응석을 부리며
476행—500행.

언니를 방문하는 것이 자신에게 행복이 될 테니
그렇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에게는
불행이 되리라. 테레우스는 그녀를 보며 마음으로 이미 그녀를 껴안았다. 그녀가 아버지에게 입맞추고 팔로
아버지의 목을 껴안는 것을 보자 그 모든 것이 그를
앞으로 모는 막대기가 되고 광기의 먹이이자
불쏘시개가 되었다. 필로멜라가 아버지를 껴안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그녀의 아버지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랬더라도 그 의도가 덜 불경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두 사람의 기도에 불복했다.
그녀는 기쁜 나머지 아버지에게 감사했다.
필로멜라는 가련하게도 그것이 언니와 자신에게
파멸을 가져올 텐테도 두 자매에게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어느새 포이부스(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노고가
거의 끝나고, 그의 말들(태양 마차의 말들)은
서쪽 하늘의 비탈길(저녁길)을 힘찬 발걸음으로
달려 내려갔다. 그때 왕궁에서는 잔치가 벌어졌고
황금 잔들은 포도주로 채워졌다. 그리고 나서 그곳에
있던 이들은 배부른 몸을 평화로운 잠에 맡겼다.
오드리사이족(트라키아의 헤브루스 강가에 살던
부족으로 여기서는 트라키아족이라는 뜻)의 왕(테레우스)도 잠자리에 들었지만 그의 마음은 필로멜라
생각으로 부풀어올라 자꾸만 그녀의 얼굴과 동작과
손을 떠올렸고, 자기가 아직 보지 못한 모든 것을
제멋대로 상상하여 스스로 자신의 불길과 상념을
키우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날이 밝자 판디온(필로멜라의 아버지)은 길을 떠나려는 사위(테레우스)의
오른손을 잡고는 눈물을 흘리며, 동행하는 딸을 잘
보살펴달라고 부탁했다. “여보게, 사위. 자네의 간절한 부탁을 이기지 못해 나는 이 애(필로멜라)를 자네에게
맡기네. 그것이 내 두 딸아이의 소망이자,
테레우스여, 자네의 소망이었으니까. 자네의 신의와
우리 사이의 인척 관계와 하늘의 신들의 이름으로
간곡히 부탁하니 이 애를 아버지처럼 보살펴주고,
500행—508행.

내 만년의 달콤한 낙인 이 애를 되도록 빨리 돌려
보내주게나.(어떤 지체도 내게는 길게 느껴질 테니.)
그리고 필로멜라야, 너도 효심이 있다면 되도록 빨리
내게로 돌아오너라! (네 언니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렇게 지시하고 나서 그는 딸에게
입맞추었고, 그러는 동안 그의 눈에서는 애틋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두 사람에게 약속의 담보로 오른손을 달라고 하더니 주어진 두 손을 한데 잡고는 멀리 떨어져 있는 딸(프로크네)과 외손자(이티스)에게 부디 잊지 말고 안부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509행—516행.

그(판디온)는 흐느끼느라 목이 메어 간신히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다. 그의 마음은 불길한 예감 때문에
두려움으로 가득찼던 것이다. 일단 필로멜라가
색칠한 배에 오르고 노를 저어 육지가 멀어지자
테레우스는 “내가 이겼다! 내가 바라고 바라던
것(필로멜라)이 나와 함께 실려가고 있다!” 라고
외쳤다. 야만인(테레우스)은 기뻐 날뛰며 마음속으로도 자신의 욕망을 간신히 뒤로 미루었고, 그녀에게서
결코 눈을 떼지 않았으니, 그 모습은 마치
유피테르(제우스)의 맹금류인 독수리가 구부정한
발톱으로 산토끼를 낚아채어
517행—523행.

높다란 곳에 있는 제 둥지에 내려놓으면 포로는
도망갈 데 없고 포획자는 제 먹이를 노려볼 때와
다르지 않았다. 어느새 여행이 끝나자, 그들은
여행에 지친 함선들에서 내려 자신들의 해안(트라키아의 해안)에 상륙했다. 그러자 왕(테레우스)은 판디온의 딸(필로멜라)을 데리고 숲으로 가려져 있는,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외양간으오 끌고 가서
그곳에 가두어버렸다. 그녀는 파랗게 질린 채 떨었고,
가능한 모든 사태를 두려워하며 언니(프로크네)는
어디 있느냐고 눈물로 물었다.
523행—540행.
하지만 그(테레우스)는 자신의 흑심을 드러내고는
외톨이에다 한낱 소녀에 불과한 그녀를 힘으로 제압했다. 그녀는 아버지를 부르고, 때로는 언니를 부르고,
무엇보다도 위대한 신들을 불러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녀가 떨고 있는 모습은 부상 당한 채 잿빛 늑대의 입에서 벗어났지만 아직 자신의 안전을 믿지 못하는
겁먹은 새끼 양이나, 제 피에 깃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아직도 겁에 질려 자기를 꼭 붙잡았던 그 탐욕스러운 발톱을 무서워하는 비둘기와
같았다. 곧 정신이 돌아오자 그녀는 자신의 헝클어진
머리를 쥐어뜯고 애도하는 사람처럼 두 팔에 타박상을
입히다가 두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아아, 야만인이여,
이 무슨 끔찍한 짓이오! “아아, 잔혹한 자여! 내
아버지의 지시도, 내 아버지의 경건한 눈물도,
내 언니(프로크네)의 사랑도, 내 처녀성도, 그대의
혼인 서약도 그대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던가요?
그대는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았어요.
나는 언니의 시앗(남편의 첩)이 되고, 그대는 이중의
남편이 되었어요! 나는 그런 벌을 받을 만한 짓을
하지 않았어요. 배신자여, 더 저지르지 않은 범죄가
없도록 왜 내 목숨은 빼앗지 않는 거죠? 그대가 나에게
난잡한 짓을 하기 전에 그랬더라면 좋았을 것을!
540행—548행.

그랬더라면 내 혼백은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려만!
하지만 만약 하늘의 신들께서 이 일을 보고 계신다면,
신성이란 것이 있다면, 만약 내가 없어진다고
해서 모든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그대는 이 죗값을 치러야 할 거예요. 나 자신이
부끄러움을 벗어던지고 그대가 행한 것을 폭로할
거예요. 그럴 기회가 주어지면 백성에게 다가가
알릴 거예요. 만약 이 숲속에 갇혀 지낸다면 나는
숲을 내 비탄으로 가득 채우고 내 치욕의 증인인
바위들을 감동시킬 거예요.
548행—574행.

그러면 그것을 하늘이 듣고, 하늘에 신이 계신다면
신도 들으시겠지요.“ 사나운 폭군(테레우스)은
이말에 화가 났고, 또 그에 못지않게 두렵기도 했다.
그는 이 두 가지 이유로 자극받아 허리에 찬 칼집에서
칼을 빼어 든 다음 그녀의 머리채를 잡더니 그녀의
두 팔을 등 뒤로 비틀고는 머리채에다 그 팔을꽁꽁
묶었다. 칼을 보자 필로멜라는 이제는 죽을 수 있겠구나 싶어서 기꺼이 목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녀가 항의하며 계속해서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말을 하려고
용을 쓰자 그는 집게로 혀를
잡고는 무자비한 칼로 잘라버렸다. 남은 혀뿌리는
떨고 있었고, 잘린 혀는 꿈틀거리며 검은 대지에게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마치 토막난 뱀의 꼬리가 뛰어오르는듯 팔딱팔딱 뛰는 혀는 죽어가면서 안주인의 발(혀뿌리)을 찾고 있었다. 이런 악행을 저지른 뒤에도 (나로서는 믿어지지 않지만) 테레우스는 욕정을 채우기 위해 성치 않은 소녀의 몸을 몇 번씩이나 더렵혔다고 한다.
그런 짓을 저지르고 나서 뻔뻔스럽게도 프로크네에게
돌아갔다. 그는 괴로운 듯 신음하더니 그녀의 죽음을
두고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주며믿게 하려고
눈물까지 흘렸다. 그러자 프로크네는
넓은 황금 단을 댄 번쩍이는 옷을 자신의 어깨에서
찢어버리고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는 빈 무덤을
만들게 한 다음 망령 아닌 망령에 제물을 바치며
아우(필로멜라)의 운명을 슬퍼했다. 하지만 필로멜라의 운명은 그렇게 슬퍼할 일이 아니었다. 태양신(헬리오스)이 이륙 십이, 12궁(황도 12궁)을 모두 통과하자
일 년이 지나갔다. 필로멜라는 무엇을
할수있었을까? 감시자가 그녀의 도주를 막았고,
단단한 돌로 쌓은 외양간의 담은 튼튼했으며, 말 못하는 입은 자신이 당한 일을 알릴 수 조차 없었다.
574행—599행.

하지만 고통은 사람을 매우 창조적이게 하고, 역경은
약삭빠르게 하는 법이다. 그녀는 야만족(트라키아인)의 조잡한 베틀에다 날실(세로실)을 걸고는 흰
바탕에 자줏빛 글자를 짜 넣어 자신이 당한 범행을
새겼다. 천이 완성되자 그녀(필로멜라)는 그것을
한 시녀에게 건네주며 왕비(프로크네)에게 갖다주라고 손짓으로 부탁했다. 부탁받은 여인은 자기가 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것을 프로크네에게
갖다주었다. 야만적인 폭군(테레우스)의 아내(프로크네)는 그 천을 펼친 뒤 아우(필로멜라)의 비참한 운명을
읽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었다.)
고통이 프로크네의 말문을 닫았고, 혀는 분한 마음을
충분히 표현할 말을 찾지 못했다. 눈물을 흘릴 겨를도
없었다. 그녀(프로크네)는 정의와 불의를 가리지않고
앞으로 내달았고, 마음속은 온통 복수의
일념뿐이었다. 그때는 시토니아족(트라키아 지역에
살던 부족)의 여인들이 삼 년에 한 번씩
바쿠스(디오니소스, 포도의 신)) 축제를 개최하던
때였다. 그들의 축제는 밤에 열렸고, 밤에
로도페 산(트라키아지역의 산)에서 청동 바라의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그래서 왕비(프로크네)는
신(바쿠스)의 의식을 위해 필요한 채비를 하고 광란의
무구(무사의 무기)들을 갖춘 채 밤에 궁전 밖으로
빠져 나갔다. 프로크네는 머리에 포도 덩굴 관을 썼고,
왼쪽 옆구리에는 사슴 가죽이 매달려 있었으며, 어깨에는 가벼운 창을 메고 있었다. 프로크네가 한 무리의 하녀들을 데리고 급히 숲속을 지나가니 그녀는 보기에 무시무시했고, 고통의 광기에 들뜬 그녀의 모습은, 바쿠스여,
영락없는 그대의 여신도였소. 프로크네는 마침내
외딴 외양간에 이르러 고함을 지르고
“에우호이!”(바쿠스 여신도들이 지르는 환호성)라고
소리치며 문을 부수었다. 그리고는 아우(필로멜라)를
붙들어 바쿠스 여신도처럼 입히고 담쟁이덩굴로
얼굴을 가린 다음,
599행—622행.

얼떨떨하는 아우(필로멜라)를 끌다시피 하며
자신(프로크네)의 성벽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불행한 필로멜라는 자신이 그 저주받은 집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 두려움에 떨었고 온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프로크네는 적당한 장소를 찾아내고는
불행한 아우에게서 바쿠스 축제의 상징들을
벗기고 부끄러워하는 얼굴을 드러낸 다음,
아우(필로멜라)를 껴안으려했다. 하지만 필로멜라는
언니를 향해 감히 얼굴을 들지 못했으니, 자신이
언니의 시앗(남편의 첩)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시선을 땅바닥으로 향한 채 목소리 대신 손을
써서 그러한 치욕은 폭력에 의해 자기에게 가해진
것이라고 맹세하며 신들을 증인으로 부르려고 했다.
그러자 프로크네는 열이 나서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아우더러 눈물을 흘리지 말라며 말했다. “지금은
눈물을 흘릴 때가 아니다. 칼을 쓰거나, 칼보다 더
강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쓸 때란다. 아우야, 나는
어떤 범행이든 저지를 각오가 되어 있어. 나는 햇불로
이 왕궁을 불지르고 간악한 테레우스를 불속에
던져 넣거나, 칼로 그자의 혀를 자르고 눈을 뽑고
너에게 치욕을 안긴 사지를 절단하거나, 수천의 상처로 그자의 죄 많은 영혼을 몸에서 내쫓을 것이다!
어떤 큰일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어. 하지만 그게
무엇이 될지 아직 확실히 모르겠구나.“ 프로크네가 말하는 동안 이티스가 다가왔다. 아들을 보자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난 그녀는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며 “아아, 너(이티스)는 아버지(테레우스)를
얼마나 닮았는가!” 라고 말했다.
622행—646행.

그녀(프로크네)는 여러 말 않고 속으로 조용히 분을
끓이며 끔찍한 범행을 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들이 다가와 어머니에게 인사하며 작은 팔로 목을 껴안고 소년답게 응석을 부리며 입맞추자 엄마는 마음이 흔들렸다. 그녀는 분노가 한풀 꺾였고, 그녀의 두 눈은 그녀의 의사와는 달리 본의 아니게 흘러내린 눈물로 젖어 있었다.
하지만 지나친 모정으로 자신의
결심이 흔들린다고 느끼자 그녀는 다시 아들에게서
아우의 얼굴쪽으로 돌아섰다. 그러고는 둘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왜 한 명은 사랑스러운 말을 건넬 수 있는데,
다른 한 명은 혀를 잘리고 아무 말도 못하는 거지?
왜 이티스는 어머니라고 부르는데, 필로멜라는
언니라고 부르지 못하지? 판디온의 딸(프로크네)이여, 대체 어떤 남편과 결혼했는가? 너는 못난 자식이야! 테레우스 같은 남편에게 성실하다는 것은
범죄야!“ 지체없이 그녀는 이티스를 끌고 갔다.
그 모습은 마치 강게스 강변의 암호랑이가 젖먹이
새끼 사슴을 우거진 숲속으로 끌고 가는 것 같았다.
그들이 높다란 궁전의 외딴곳에 이르렀을 때
소년(이티스)은 이미 자신의 운명을 예견한듯 두 손을
내밀고 “어머니! 어머니!” 라고 비명을 지르며
어머니의 목을 껴안으려 했다. 프로크네는 이런
아들의 가슴과 옆구리 사이를 칼로 쳤다. 그러고도
그녀는 얼굴조차 돌리지 않았다. 소년에게는
이 한 번의 가격으로 충분했을 터인데 필로멜라는
칼로 그의 목을 잘랐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는 그의 사지를 절단했다. 이제 그중 일부는
청동 솥에서 부글부글 끓었고, 일부는 꼬쟁이에
꿰여 지글지글 소리를 냈다. 방안에는 피가 냇물처럼
흘렀다.
647행—655행.

이어서 아내(프로크네)가 아무 영문도 모르는
테레우스를 잔치에 초대하며, 자기 고국(아테나이)의
풍속에 따른 신성한 잔치로 남편만이 참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럼으로써 그녀(프로크네)는 시종과 하인을
따돌렸던 것이다. 테레우스는 선조에게서
물려받은 높다란 왕좌에 앉아 혼자 식사를 하며
제(이티스) 살로 제 뱃속을 채웠다. 그는 완전히
마음이 눈멀어 “이티스를 이리 불러주시오!“ 라고
말했다. 그러자 프로크네는 자신의 잔인한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안겨준 파국을
맨 먼저 알려주고 싶어서 “그대가 찾는 사람은 안에
있잖아요!“ 라고 말했다.
655행—660행.

그(테레우스)는 주위를 둘러보며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그가 재차 묻고 부르자 필로멜라가 자신이
미쳐서 살해한 소년(이티스)의 피를 머리에 뒤집어쓴
그대로 튀어나오더니 핏방울이 뚝뚝 듣는 이티스의
머리를 그의 아버지(테레우스) 얼굴에다 내던졌다.
이때처럼 필로멜라가 자신의 혀가 말할 수 있기를,
알맞은 말로 자신의 희열을 표현할 수 있기를
더 바란 적은 없었을 것이다.
661행—666행.

트라키아의 왕(테레우스)은 크게 고함을 지르며
식탁을 밀쳐냈고, 스틱스(저승의 강)의 못으로부터
머리털이 올올이 뱀인 자매들(복수의 여신들)을
불렀다. 할 수만 있다면 그는 가슴을 열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끔찍한 제 자식의 고기를 토해내고 싶었다.
그는 울면서 자신을 제 아들의 비참한 무덤이라고
불렀다. 이제 그는 칼을 빼어 들고 판디온의
두 딸(프로크네와 필로멜라)을 뒤쫓았다.
666행—674행.

그대(테레우스)는 케크롭스(최초의 아테나이의
건설자)의 자손들(프로크네와 필로멜라)이 날개에
매달려 있다고 생각했으리라. 아니, 실제로 그들은
날개에 매달려 있었다. 한 명(프로크네)은 숲으로
향했고, 다른 한 명(필로멜라)은 지붕 밑으로 날아들었다. 오늘날까지도 그들의 가슴에서는 살인 행위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았고, 그들의 깃털은 피로 얼룩져 있다.
슬픔과 복수심 때문에 걸음이 빨라진 테레우스도
새로 변했다. 그의 정수리에는 볏이 나 있고,
그의 긴 칼 대신 지나치게 긴 부리가 튀어나와 있다.
그 새는 후투티라고 불리며, 그 새의 모습은 싸우려고
무장한 것처럼 보인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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