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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품과 함께 읽는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8권. 스킬라(Scylla)와 니소스(Nis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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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니소스의 자줏빛 머리카락을 빼앗는 스킬라. 니콜라 앙드레 몽시오(1754–1837).




1행—20행.

적 미노스 왕에게 사랑에 빠져 성채의 탑에서 미노스를 바라보는 스킬라. 17세기.


어느새 루키페르(루시퍼 Lucifer 빛을 가져다
주는 자. ‘샛별‘ 또는 ’새벽별‘)가 밤을 쫓아버리고
찬란한 낮을 드러냈을 때 동풍이 잦아들면서
눅눅한 구름이 일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남풍이
케팔로스(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의 손자)와
아이아코스(아이기나 섬의 왕)의 전우들을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게 하자, 그들은 남풍에 실려 무사히
항해를 마치고 예상보다 빨리 바라던
항구(아테네 항구)에 도착했다. 그사이
미노스(크레테 섬의 왕)는
렐레게스족의(메가라 도시의) 해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니소스(아티카 지방 메가라 도시의 왕)가
다스리던 알카토우스(메가라 도시의 건설자)의
도시(메가라)에
자신의 군사력을 시험하고 있었다. 니소스의 정수리
한복판에는 존경스러운 백발들 사이에 자줏빛으로
빛나는 머리카락이 하나 나 있었는데, 그의 위대한
왕국의 안전은 바로 이 머리카락에 달려 있었다.
어느새 초승달의 뿔들이 여섯 번이나 하늘에
올랐건만 아직도 전세는 백중지세였고,
빅토리아(승리의 여신 니케)는 오랫동안 미심쩍은
날개로 양군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그곳에는 왕가의 성탑이 하나있었는데,
그것은 레토의 아들(아폴론)이 황금 리라(길이가 같은
5개의 현으로 이루어진 발현악기)를 걸어두었다는,
노래하는 성벽 위에 세운 것이었다. 그래서 그 성벽의
돌들에는 아직도 리라의 음악이 들어 있었다.
니소스의 딸(스킬라)은 가끔 그 탑에 올라가
조약돌로 그 돌들을 두드려 소리나게 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것은 평화시에 있었던 일이다. 전시에도
그녀는 가끔 그곳에서 가차없는 마르스(전쟁의 신
아레스)의 전투를 내려다보곤 했다.



[참고. 메가라 도시]

아티카(ATTIKA) 지방의 코린토스(Corinth) 도시 북동쪽의 메가라(Megara). 아티카 지방의 아테네(Athens) 도시. 사로니코스 만(Saronin lahti)의 아이기나(AEGIINA) 섬. 크레테(Crete) 섬.




21행—38행.

그리하여 이제 전쟁이 오래 가자 그녀(스킬라)는
장수들의 이름과 무구(장수의 무기)들과 말들과
갑옷과 퀴도니아(크레테 섬의 도시)의 화살통들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그들의 지휘자인,
에우로페(제우스의 아내)의 아들의 얼굴(크레테 섬의
왕 미노스)을, 그것도 필요 이상으로 잘 알고 있었다.
미노스가 깃털 장식이 달린 투구로 머리를 가리면,
그녀의 눈에는 투구를 쓴 그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그가 번쩍이는 청동 방패를 들면, 방패를 든
모습이 그에게 잘 어울려 보였다. 그가 팔을 뒤로
젖혔다가 나긋나긋한 창을 힘껏 던지면, 소녀는 그의
힘과 재주에 감탄했다. 미노스가 시위에 화살을 얹고
큼직한 원이 되도록 활을 당기면, 그녀는 포이부스
(태양과 사냥의 신 아폴론)도 저런 모습으로 화살을
들고 서 있을 것이라고 마음에 새겼다. 그가 투구를
벗고 얼굴을 드러내면, 그가 자포를 입고 알록달록한
말 장식을 걸친 백마의 등에 올라앉아 거품 묻은
재갈을 제어하곤 할 때면, 니소스의 딸(스킬라)은
거의 넋을 잃다시피 했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가
만지는 창은 행복하겠지, 그가 손에 쥐고 있는 고삐는
행복하겠지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녀는 적군의 대열을 지나



39행—80행.

성채의 탑에서 미노스를 바라보는 스킬라. 1606.


처녀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높은
탑에서 그노소스(크레테의 도시로 미노스의 궁전이
있던 곳. 여기서는 ‘크레테’의 뜻)의 진영으로 몸을
던지거나, 청동을 입힌 성문을 적군에게 열어주거나,
미노스가 원하는 그 밖의 다른 일을 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앉아서 딕테(크레테에
있는 산. 여기서는 ’크레테‘의 뚯) 왕의 하얀 막사를
바라다보며 말했다. "이 비참한 전쟁이 일어난 것을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내가
사랑하는 미노스가 내 적이란 것이 슬프구나.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나(스킬라)는
그(미노스)를 알지 못했겠지. 나를 볼모로 잡는다면
그는 전쟁을 그만둘 수도 있을 거야. 그러면 그는
나를 동반자로, 평화의 담보로 갖겠지. 왕들 중에
가장 잘생긴 이여, 그대를 낳은 여인(에우로페)이
그대와 같다면, 신(제우스)이 그 여인(에우로페)에게
사랑으로 불타오른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아아,
날개로 대기 사이로 날아가 그노소스(크레테) 왕의
진영 안에 자리잡고 서서 내 불타는 사랑을 고백하고는
어떤 지참금을 내면 그를 살 수 있겠는지 물을 수 있다면, 나는 세 배나 더 행복하련만! 다만 내 조국의
성채만은 그가 요구하지 말았으면! 배신을 해야만
가능한 것이라면, 차라리 결혼에 대한 내 희망이
모두 사라져버리기를! 하긴 승리자가 온유하여
관용을 베푼다면, 때로는 지는 것이 유리하다고 많은
사람에게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그는 분명
살해된 아들(안드로게오스)을 위하여 정당한
전쟁을 하고 있어. 그에게는 명분도 있고 명분을
뒷받침해줄 무력도 있어. 아마도 우리는 질 거야.
만약 그런 종말이 이 도시를 기다리고 있다면, 왜 그의
공격이 우리의 성벽을 열어야 하고 내 사랑이 그것을
열면 안되는 거지? 살육을 저지르지 않고도,
자신의 피로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지체 없이 이기는 편이 그에게는 더 나을 거야.
그럴 경우, 미노스여, 나(스킬라)는 누가 멍청하게
그대의 가슴에 부상을 입히지나 않을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지요. 멍청하지 않고서야 그대에게 감히
무자비한 창을 던질 만큼 잔혹한 자가 어디 있겠어요?
나는 그 계획이 마음에 들어. 그래서 나는 나와 함께 내
조국을 지참금으로서 넘겨주고, 그렇게 전쟁을
끝내기로 결심했어. 하지만 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수비대가 입구들을 지키고 있고, 성문들의
열쇠들은 아버지가 갖고 계셔. 내게 두려운 것은
아버지뿐이고, 내 소원을 지연시키는 것도 아버지뿐이니, 나야말로 불행하구나! 신들께서 내게 아버지가
없도록 만들어주신다면 좋으련만! 확실히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는 신이야. 운명의 여신은
비겁자의 기도는 들어주지 않아. 다른 소녀가
이토록 큰 정염에 불타고 있다면 사랑에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 기꺼이 파괴해버렸겠지. 그런데 왜
나보다 남이 더 용감해야 하지? 나는 불 사이로도,
칼 사이로도 겁없이 지나갈 수 있어. 하지만 여기서는
불이나 칼 같은 것은 필요 없어. 내게 필요한 것은
아버지의 머리카락이야. 그것이 나에게는 황금보다
귀중해. 그 자줏빛 머리카락은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며, 내 소원을 이루게 해줄 테니까."



81행—101행.

아버지의 자줏빛 머리카락을 빼앗는 스킬라. 니콜라 앙드레 몽시오(1754–1837).


그녀가 이런 말을 하는 동안 근심의 가장 위대한
치유자인 밤이 다가왔다. 날이 어두워질수록 그녀는
점점 담대해졌다. 낮 동안의 근심에 지칠 대로
지친 인간의 마음을 첫잠이 감싸주는 고요한 시간이었다. 딸이 소리 없이 아버지의 방에 들어가 아버지
(니소스)의 정수리에서 그의 운명이 달려 있는
머리카락을 빼앗았다.(아아, 이 무슨 범행인가!)
스킬라는 그 불의한 전리품(자줏빛 머리카락)을
손에 넣은 다음 범죄로 얻은 전리품을 들고 성문 밖으로 나가더니 적군 한가운데를 지나(그만큼 그녀는 자신의
공적을 믿었던 것이다.) 곧장 왕(미노스)에게 다가갔다. 왕이 놀라자 그녀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랑이 이런 짓을 하도록 나를 설득했어요.
나는 니소스 왕의 딸 스킬라로 여기 내 조국과 나의
페나테스(로마의 가정을 지키는 수호신) 신들을
그대에게 바쳐요. 나는 그대 외에 다른 대가는 원치
않아요. 자, 내 사랑의 담보로 자줏빛 머리카락을
받으세요. 내가 지금 그대에게 바치는 것이 머리카락이 아니라, 아버지의 머리라고 믿어주세요!" 그러고는
죄지은 오른손으로 그에게 선물을 내밀었다. 그러자 미노스는 스킬라가 내민 것을 피했고, 전대미문의 범행에
질겁하며 대답했다. "오오, 우리 시대의 치욕이여, 신들께서는 자신들의 세계로부터 그대를 추방하시기를!
육지도 바다도 그대를 받아주지 말기를!
잘 알아두어라. 나는 내 세계에, 유피테르(미노스의
아버지인 제우스)의 요람이었던 크레테에 그대 같은
괴물이 발을 들여놓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그는 말했다. 그리고 가장 정의로운
입법자(미노스. 사후에 그는 그리스의 지하세계인의
판관이 되었다)는



102행—123행.

전리품을 미노스에게 거절 당하는 스킬라. 1606.


사로잡힌 적군(스킬라)에게 법규를 부과하고 나서
함대의 밧줄을 풀고는 청동을 댄 함선들에 올라
노를 저으라고 명령했다.
스킬라는 함선들이 정박해 바닷물 위에
떠 있고, 왕이 자기에게 범죄의 대가를 주지않은
것을 보자, 빌 수 있을 때까지 빌다가 분통을
터트렸다. 그녀는 머리를 풀고 두 손을 내민 채 미쳐
날뛰며 소리쳤다. "그대는 공을 세울 수 있게 해준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가는 거예요? 나는 그대를 내
조국보다도 선호했고, 내 아버지보다 선호했는데도.
어디로 가는 거예요, 이 잔인한 자여! 그대(미노스의
승리는 내(스킬라) 내 공이었는데도. 내가
그대에게 준 선물도, 그대를 향한 내 사랑도,
오직 그대에게
걸었던 내 희망도 그대를 움직이지 못한 건가요?
버림 받은 나는 대체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요?
내 조국으로? 내 조국은 정복되어 쓰러져 있어요.
내 조국은 아직 남아 있다 하더라도 내 배신으로
나에게는 닫혀 있어요. 아버지의 면전으로? 그분을
내가 그대에게 바쳤는데도? 내 동포들은 나를
증오하고 있어요. 당연한 일이지요. 이웃 백성은
내가 본보기가 될까 겁내고 있어요. 나는 온 세상에서
추방되고, 오직 크레테(미노스 왕의 섬)만이 내게
열려 있어요. 만약 그대가 그곳도 나에게 금지하고,
배은망덕한 자여, 나를 이곳에 버린다면, 그대의
어머니는 에우로페가 아니라, 불친절한 쉬르티스
(북아프리카 해안에 있는 악명 높은 모래톱으로
그곳에서 많은 배가 좌초했다고 한다) 거나,
아르메니아의 암호랑이거나, 남풍이 매질하는
카리브디스(이탈리아와 시칠리아 사이의,
스킬라 바위 맞은 편에 있는 위험한 바다
소용돌이)예요. 그대는
유피테르(제우스)의 아들이 아니며, 그대의
어머니(에우로페)는 황소의 모습(황소로 변신해
에우로페를 납치한 제우스)에 속은 것이 아녜요.



[참고]

황소로 변한 제우스가 에우로페를 납치해 바다를 건너 크레테 섬으로 가고 있다. 1726. 128 x 194 cm. 노엘 니콜라 쿠아펠(1690–1734).


제우스와 에우로페는  크레테 섬에서
미노타우로스의 아버지인 미노스를 낳는다.



[참고. 카리브디스]

빨간색 밑줄 스킬라(Scylla) 바위 맞은편의 카리브디스(Charybdis). 1900.




123행—140행.

그대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는 다 거짓말이에요.
그대를 낳은 것은 어떤 암소도 사랑한 적이 없는
사나운 진짜 황소였어요. 나의 아버지 니소스시여,
나를 벌하소서! 내가 방금 배신한 성벽들이여,
너희는 내 고통을 기뻐하라! 내 고백하건대 나는
그래도 싸고 죽어 마땅하니까요.
하지만 불경한 내가 해코지한 이들 가운데
누군가가 나를 죽이게 하라! 어찌하여 내 범죄로
승리를 거둔 그대가 내 범죄를 추궁하는 거죠?
아버지와 조국에게 저지른 내 범죄는
그대에게는 봉사가 아니었나요! 나무로 만든
암소 안에 들어가 황소를 속이고는 뱃속에
괴물(미노타우로스)을 차고 다니던 그
간부(간사한 부인. 미노스의 아내 파시파에)야말로
진정 그대에게 어울리는 배필이에요.
내 말이 그대의 귀에 들리나요? 아니면
배은망덕한 자여, 그대의 함선들을 날라주는
그 바람이 내 말을 쓸어가 없애버리나요?
이제야말로 파시파에가 그대보다 황소를 더 선호했던 것이 이상하지가 않아요. 그대는 황소보다 더
야만적이니까요. 아아, 슬프도다!
그는 서두르라고 명령하는구나! 바닷물은 노에 찢겨
찰싹거리고, 나도 내 나라도 그의 시야에서
뒤로 물러나는구나! 그대가 그래 봐도 소용없어요.
그대가 내 공을 잊었어도 소용없어요.



[참고]

다이달로스가 파시파에에게 나무로 만든 황소를 주는 장면. 폼페이의 프레스코화. 1세기경.


미노스는 왕위 계승을 두고 형제들과 싸우던 중
포세이돈의 도움으로 왕이 되었다. 그는 백성들에게
자신이 왕권을 부여받았다고 주장하면서
그 증거로 자신이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미노스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포세이돈에게 황소를 한 마리
보내달라고 간청했다. 미노스가 간청한 대로
포세이돈은 황소를 보내주었고, 이에 미노스는
왕이 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미노스는 왕이 된 후에
황소를 다시 포세이돈에게 제물로 바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포세이돈은
그에 대한 벌로 파시파에로 하여금 그 황소에게
감당할 수 없는 욕정을 느끼게 했다고 한다.
파시파에의 기이한 욕정 또한 신의 저주에
의함이었던 것이다. 파시파에는 마침 크레타 섬에
머물던 전설적인 장인 다이달로스(이카루스의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에 다이달로스는
왕비에게 속이 비어있는 실물과 똑같은 암소를
만들어주었다. 파시파에는 이 암소 안으로 들어가
황소와 관계를 맺을 수 있었고,
이 이상한 관계에서 반은 인간이고
반은 소인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태어났다.
미노타우로스는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궁에 갇힌 채
아테네에서 7년마다 공물로 보내는 소년소녀들을
먹고 살다가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 손에 죽었다.



141행—151행.

나는 그대(미노스)의 뜻에 반해 그대를 따라가
구부정한 뱃고물에 매달린 채 바다 위로 저 멀리
끌려갈 테니까요." 이렇게 말하자마자 그녀는 바다로
뛰어들더니 애욕에서 힘이 솟아 그의 배로 헤엄쳐
가서는 가증스러운 일행으로서
그노소스의(크레테의) 배에 매달렸다.
그때 그녀의 아버지 (니소스)가 그녀를
보고는(그는 이제 황갈색 날개를 가진 물수리로
변하여 공중을 빙빙 맴돌고 있었다.)
매달려 있던 그녀를 구부정한 부리로 쪼려고
내리덮쳤다. 그녀는 겁이 나서 뱃머리를 놓아버렸다.
그러자 가벼운 대기가 떨어지는 그녀를 떠받쳐주며
바닷물에 닿지 않게 해주는 것 같았다. 떠받쳐준
것은 깃털이었다. 깃털에 의해 그녀는 새로 변해
키리스(‘키리스’란 이름은 ’자르다’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라 불리는데,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잘랐기에 이런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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