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행—27행.

바다도 대지도 만물을 덮는 하늘도 생겨나기 전
자연은 세상 어디서나 똑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카오스(Chaos)라고 하는데,
그것은 원래 그대로의 정돈되지 않은 무더기로,
생명 없는 무게이자 서로
어울리지 않는 사물의 수많은 씨앗이 서로 다투며
한곳에 쌓여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는 어떤 티탄(태양신)도 아직 세상에 빛을
주지 않았고, 어떤 포이베(사냥과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별칭으로 여기서는 ’달’을 뜻한다)도
자라면서 그 뿔(초승달)을 다시 채우지 않았다.
어떤 대지도 제 무게로 균형을 잡으며 주위를 둘러싼
대기에 떠 있지 않았으며, 어떤
암피트리테(포세이돈의 아내로
여기서는 ‘바다‘를 뜻한다)도 육지의
긴 가장자리(해안, 바닷가)를 따라 팔을 뻗지 않았다.
대지와 바다와 대기가 있었으나 대지 위에 서 있을
수 없었고, 바닷물애서 헤엄칠 수 없었으며,
대기에는 빛이 없었다. 그 어떤 것도 제 모양을
갖추지 못했다. 모든 것이 서로에게 방해만
되었으니, 하나의 무더기 안에서 찬 것은 더운 것과,
습한 것은 메마른 것과, 부드러운 것은 딱딱한 것과,
가벼운 것은 무거운 것과 싸웠던 것이다. 이러한
분쟁을 어떤 신 또는 더 나은 자연이 조정했다.
자연은 하늘에서 대지를, 대지에서 바닷물을
때어놓고, 짙은 대기에서 맑은 하늘을 떼어놓았다.
또 이것들을 가려내고 눈먼 무더기에서 풀어준 다음
각기 다른 공간을 주며 서로 화목하게 지내게 했다.
하늘의 둥근 지붕의 무게 없는 불 같은 힘은 위로
떠올라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았다.
27행—60행.

위치와 가볍기에서 대기가 바로 그다음이었다.
이들보다 더 무거운 대지는 묵직한 요소를 잡아당겨
붙이면서 자체의 무게로 인하여 밑으로 내려왔다.
감돌아 흐르는 물은 맨 마지막 자리를 차지하고는
단단한 대지를 에워쌓다. 신들 중에 누군가가
뒤죽박죽이던 무더기를 그렇게 정돈하고 분해하고
성분별로 나누었다. 그런 다음 그는 우선 대지를
큰 공 모양으로 뭉쳐 어느 쪽에서 보더라도 그 모양이
같게 만들었다. 그러고는 바다에게 사방으로
펼쳐지되 돌진하는 바람에 부풀어올라 대지의
해안을 빙 둘러싸라고 명령했다. 거기에 덧붙여
샘과 거대한 못과 호수를 만들었다.
또한 그(신)는 흘러가는 강 양쪽으로 비탈진 강둑을
둘렀는데 강은 서로 멀리 떨어져 흐르며 더러는 대지
속으로 삼켜지기도 하고, 더러는 바다에 도달하여
더 넓은 바닷물의 평원으로 받아들여져 강둑 대신
해안을 들이받고 있다. 또한 그는 명령했다.
들판에게는 펼쳐지라고, 골짜기에는 가라앉으라고,
숲에게는 나뭇잎을 입으라고, 바위투성이 산에게는
일어서라고, 마치 하늘이 오른쪽 두 구역과 같은 수의
왼쪽 구역으로 나뉘고 다섯 번째 구역은 이들보다
더 덥듯이, 신의 섭리가 하늘에 둘러싸인 땅덩이
역시 이와 같은 수로 나누니 무거운 대지도 같은
수의 지역을 갖게 되었다. 그중 가운데 지역은 더워서
거주할 수 없고, 두 지역애는 눈이 수북이 쌓여있다.
신은 그 사이에 같은 수의 지역을 놓고 열기와 냉기를
섞어 그 지역들에 온화한 기후를 주었다. 이들 모두
위에 대기가 걸려 있는데, 물이 대지보다 가벼운
그만큼 대기는 불보다 무겁다. 그는 안개와 구름,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천둥, 번개와 바람을
만들어내는 바람이 그곳에 자리잡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우주의 창조자는 바람이 대기 속을 마음대로
떠돌아다니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바람들이 저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돌풍을 지배하는 지금도 세계를
찢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60행—88행.

이들(바람들, 아스트라이오스와 에오스의 자식들)
형제는 그만큼 사이가 좋지 않다. 동풍(에우로스 신)은
아우로라(새벽의 여신 에오스)의 나라와
나바타이아(아라비아 반도에 있던 나라로 여기서는
‘아라비아’라는 뜻이다)의 나라와 페르시아와,
아침 햇살을 맨 먼저 받는 산등성이로 물러갔다.
서풍(제피로스 신)은 저녁과, 지는 해가 따뜻하게
데워주는 해안과 가장 가깝다. 추워서 벌벌 떨게 만드는
북풍(보레아스 신)은 스키티아(흑해 북쪽에 살던
기마 유목민족인 스키티아족의 나라)와
셉템트리오네스(북극 부분의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로 여기서는 ‘맨 북쪽’이라는 뜻이다)로
쳐들어갔다. 그 맞은편
대지는 남풍(비와 남풍의 신인 노토스 신)이
가져다주는 끊임없는 안개와 비로 젖어있다. 그는
이 모든 것 위에 투명하고 무게가 없으며 지상의
찌꺼기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아이테르(대기와
대기의 남신)를 올려놓았다.
이렇듯 신이 만물을 서로 떼어놓고 제각기 경계를
정해주자 오랫동안 눈먼 어둠 속에 묻혀 있던 별들이
온 하늘에서 빛나기 시작했다. 이 모든 영역 안에
각각의 생물이 살도록 별들과 신들의 형상은 하늘나라를
차지했으며, 바닷물은 반짝이는 물고기들에게
거처를 만들어주었다. 대지는 짐승들을, 움직이는
대기는 새들을 맞아들였다. 이들보다 더 신성하고,
더 높은 생각을 할 수 있으며, 다른 것을
지배할 수 있는 존재는
아직 없었다. 그래서 인간이 태어났다.
만물의 창조자이자 세계의 더 나은 근원인 신이
자신의 신적인 씨앗으로 인간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갓 생긴 대지가 높은 곳에 있는
아이테르(대기)에서 최근에 떨어져 나와 아직은
친족인 하늘의 씨앗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 대지를
이아페투스의 아들(프로메테우스)이 빗물로 개어서는
만물을 다스리는 신들의 모습으로 인간을 빚었을 수도
있다. 다른 동물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대지를
내려다보는데 신은 인간에게만은 위로 들린 얼굴을
주며 별들을 향하여 얼굴을 똑바로 들고 하늘을
보라고 명령했다. 방금 전만 해도 조야하고(거칠고)
형체가 없던 대지는 이제 인간의 모습이라는,
여태까지 알려져 있지 않던 옷을 입었다.
[참고]

<신들의 계보> 115행—158행.
무사 여신들이여, 그들 중 어떤 것이 처음 생겼는지
말씀해주소서. 맨 처음 생긴 것은 카오스(여기서
카오스는 뒤에 생겨날 우주가 들어갈 공간을 말한다.
카오스가 혼돈의 의미로 쓰인 것은 나중 일로
로마 작가 오비디우스 이후부터로 보인다)고,
그다음이 눈 덮인 올림포스의 봉우리들에 사시는
모든 불사신들의 영원토록 안전한 거처인 넓은 가슴의
가이아(태초의 대지 및 대지의 여신)
<길이 넓은 가이아의 멀고 깊은 곳에 있는
타르타리(타르타로스. 지옥 및 지옥의 남신)>와
불사신들 가운데 가장 잘생긴
에로스(사랑과 남신)였으니, 사지를 나른하게 하는
에로스는 모든 신들과 인간들의 가슴속에서
이성과 의도를 제압한다.
카오스에게서 에레보스(암흑과 남신)와
어두운 밤(에레보스와 남매인 밤과 여신 닉스)이
생겨나고 밤(밤의 여신 닉스)에게서 다시
아이테르(대기와 대기의 남신)와
낮(아이테르와 남매인 낮과 여신 헤메라)이
생겨났으니, 밤(밤의 여신 닉스)이 에레보스와
사랑으로 결합하여
이들(아이테르와 헤메라 남매)을 낳았던 것이다.
가이아(태초의 대지와 대지의 여신)는
맨 먼저 자신과 대등한 별 많은
우라노스(태초의 하늘과 하늘의 남신)를 낳아
자신(가이아)의 주위(대지)를 완전히 감싸도록
함으로써 우라노스(하늘)가 영원토록 축복받은
신들에게 안전한 거처가 되게 했다.
가이아는 또 여신들의, 산골짜기에 사는
요정(님프, 님페)들의 즐거운 처소인
긴 산들을 낳았다.
가이아는 또 거칠게 파도치는 추수할 수
없는(또는 마르지 않는) 폰토스(태초의 바다와
바다의 남신)를 낳았다, 사랑으로 교합하지도 않고.
그러나 그 뒤 가이아는 우라노스와 누워 깊숙이
소용돌이치는 오케아노스(모든 강과 강의 남신),
코이오스, 크레이오스,
휘페리온, 테이아, 이아페토스, 레아, 테미스,
므네모시네, 황금 머리띠의 포이베,
사랑스런 테튀스를 낳았다.
그들 다음 음모를 꾸미는 크로노스
(제우스의 아버지)가
막내로 태어났으니, 가장 무서운 이 아이는
건장한 아버지(우라노스)를 싫어했다.
가이아는 또 마음이 거만한
키클롭스(‘눈이 둥근자‘라는 뜻)들을,
브론테스(천둥장이)와 스테로페스(번개장이)와
마음이 드센 아르게스(번쩍이 는 자)를 낳으니,
그들이 제우스에게 천둥을 주고 번개를 만들어주었다.
키클롭스들은 다른 점에서는 신들과 같았으나
이마 한복판에 눈이 하나밖에 없어,
이마에 있는 하나뿐인 둥근 눈 때문에
키클롭스(눈이 둥근 자)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작업에는 힘과 기운과 기술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또 가이아와 우라노스에게서 태어난
강력하고 드세고 사람들이 그 이름을 말하기를 꺼리는
세 아들이 더 있었으니, 코토스, 브리아레오스,
기게스가 그들이다. 그들은 실로 대단한 아이들이었으니,
그들의 어깨에는 백 개의 팔이 보기 흉하게 앞으로
뻗어 있었고, 각자의 어깨로부터는 쉰 개의 머리가
튼튼한 사지 위로 자라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거대한 형체에는 무한하고 강력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이아와 우라노스에게서 태어난
자들은 모두 가장 무서운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아버지는 처음부터 그들을 싫어했다.
그들이 태어나는 족족 우라노스는 모조리
가이아(대지)의 깊숙한 곳(지하세계)에다 감추고는
그들이 햇빛 속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다,
자신(우라노스)의 악행을 즐기면서.
[참고. 스키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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