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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품과 함께 읽는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9권. 비블리스(Byblis)와 카우노스(Caun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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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스(Byblis)와 카우노스(Caunus. 로랑 델보스(1696–1778).



450행—515행.

비블리스(Byblis)와 카우노스. 1325년경.


그곳에서 가끔 이전 수로를 따라 거꾸로 흐르기도 하는
마이안드로스 강의 딸 키아니에가 아버지의
꾸불꾸불한 강둑을 거닐다가 밀레토스(아폴로와
데이오네의 아들)에게 알려져, 빼어나게 잘생긴
비블리스와 카우누스라는 쌍둥이 남매를 낳아주었다.
비블리스(아폴로의 손녀)는 아폴로의 손자인
자기 오라비(카우노스)에게 걷잡을 수 없는 연정을
품었으니, 비블리스야말로 소녀들은 허용된 것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오라비를 향한
그녀의 사랑은 오누이간의 사랑이 아니라,
해서는 안 될 사랑이었다. 처음에는 비블리스도
사랑의 불길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가끔 입맞추고
제 팔로 그의 목을 껴안는 것을 죄짓는 짓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이 남매간의 우애와
비슷하여 오랫동안 속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랑은 차츰 빗나가 그녀는 치장을
해야만 오라비를 만나러 갔고, 지나칠 정도로
오라비에게 예쁘게 보이기를 원했으며, 그곳에
자기보다 더 예쁜 여자가 있으면 질투를 했다.
아직까지는 그녀는 자신을 잘 들여다보지 못했고,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했다.
하지만 안으로는 사랑이 불타고 있었다.
그녀는 혈족이란 말을 싫어했으며, 어느새 그를
여보라고 부르며 그가 누이라고 부르기보다는
비블리스라고 불러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녀는 깨어 있는 동안에는 마음속에 감히
불순한 욕망을 품지는 않았다. 그러나 부드러운 잠에
사지가 풀리면 그녀는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가끔
보았다. 오라비의 품에 안겨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잠들어 누워 있는데도 얼굴을 붉혔던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비블리스는 한동안 말없이 누워
꿈에서 본 것을 되새기며 갈팡질팡했다. "아아, 나처럼 불쌍한 애가 있을까! 이 고요한 밤의 환영이 원하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 그런 일은 일어나지 말았으면!
왜 나는 이런 꿈을 꾸는 것일까? 그를 곱지 않게 보는
눈에도 그가 미남인 것은 사실이야. 나도 그가 마음에
들어. 오라비만 아니라면 그를 사랑할 수 있을 테지.
그는 나에게 딱 어울리는 상대였겠지.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그의 누이야. 내가 깨어 있을 때 그런 짓을 하려고
시도하지만 않는다면야, 가끔 잠이 그와 비슷한 꿈과
함께 돌아왔으면 좋겠어. 꿈에는 증인도 없고,
그렇다고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니니까.
오오, 베누스(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여, 그리고
부드러운 어머니와 함께하는 쿠피도(베누스의 아들
사랑의 신 에로스)여,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얼마나 실감나는 쾌감에 나는 사로잡혔던가!
누워 있었을 때 나는 골수가 모두 녹아내리는 것 같았어. 생각만 해도 즐거워. 비록 그것이 짧은 쾌감에 지나지
않고, 밤은 우리가 시작한 일을 시기하여 허둥지둥
달려갔지만 말이야.
오오, 내가 이름을 바꾸어 그대와 결합할 수 있다면,
카우노스여, 나는 그대의 아버지(아폴로)에게 정말
좋은 며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카우노스여,
그대는 나의 아버지에게 정말 좋은 사위가 될 수
있을 텐데. 신들께서는 우리가 모든 것을 공유하게
하시되 조상만은 예외로 해주셨더라면! 원컨대
나보다 더 고귀한 가문에서 그대가 태어났더라면!
그러지 못하니, 더없는 미남이여, 그대는 누군가
다른 여인을 맞아 어머니로 만들겠죠. 불행히도
그대와 같은 부모를 제비로 뽑은 나에게는 오라비로만
남겠죠. 우리를 가로막는 것만을 우리는 공유하겠죠.
그렇다면 내 꿈은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한데 꿈이 뭐 그리 중요해? 아니, 꿈도 중요한 게 아닐까? 설마 그럴 리가! 확실히 신들도 누이를 사랑하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사투르누스(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혈족인 옵스(크로노스의 누이이자 아내인 레아)와, 오케아노스는 테티스(오케아노스의 동생이자 아내)와, 올림푸스의 통치자(제우스)는
유노(제우스의 누이이자 아내인 헤라)와 결혼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하늘의 신들에게는 자신들의 법도가
있어. 어째서 나는 전혀 다른, 하늘의 법도로 인간의
처신을 재려고 하지? 나는 이 금지된 정염(불꽃
같은 정)을 내 가슴에서 몰아낼 거야. 그럴 수 없다면,
원컨대 그전에 내가 죽어 침상에 주검으로 눕게 되기를!
거기 누워 있는 나에게 오라비가 입맞춰주기를!
일이 그렇게 되자면 두 사람의 마음이 맞아야 해.
나에게는 그것이 마음에 들어도 그에게는 범죄로
여겨질 테니까.
하지만 아이올로스(바람을 다스리는 아이올로스는
여섯 아들을 여섯 딸과 결혼시켰는데 이들은 모두
아버지의 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의
아들들은 누이들의 침상을 꺼리지 않았어. 내가 어떻게 이들을 알게 됐지? 왜 내가 이런 예를 드는 거지?
내가 어디로 가고 있지? 어그러진 사랑이여, 여기서
멀리 꺼져라! 오라비를 사랑하되 누이에게 허용된
범위 내에서만 사랑해야 해. 하지만 그가 먼저 나를
향한 사랑의 포로가 되었다면 나는 아마도 그의 광기에
기꺼이 응했을 거야. 내가 그의 구애를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라면, 왜 내가 먼저 구애하면 안 되지?
네가 그걸 말할 수 있겠니?
네가 그걸 고백할 수 있겠니?
사랑이 강요할 테니 나는 할 수 있을 거야.


515행—568행.

비밀 편지를 쓰는 비블리스(Byblis). 1636–1670. 크리스피안 반 데 파세(1594–1670).


혹시 부끄러워 말 못 한다면, 그때는 비밀 편지로
내 숨은 정염을 고백할래." 이것이 그녀의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결정하자 흔들리던 마음도 진정되었다.
그녀는 비스듬히 몸을 일으키고는 왼손으로 턱을
괴고 말했다. "판단은 그에게 맡기자. 나는 이 미친
정염을 고백할래. 아아, 나는 어디로 미끄러지는 것인가?
내 마음은 어떤 정염을 품고 있는가?" 그녀는
마음속으로 곰곰이 생각한 말들을 떨리는 손으로
적기 시작했다. 그녀는 오른손에는 철필을 쥐고
왼손에는 빈 밀랍 서판을 들고 있었다. 비블리스는
시작하다가는 망설였고, 쓰다가는 쓴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적다가는 지우기도 하고 고치기도 하고
나무라기도 하고 칭찬하기도 했다. 그녀는 손에
쥐었던 서판을 놓는가 하면 놓아둔 서판을 다시
쥐곤 했다. 그녀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알지 못했으니,
무엇이든 일단 시작하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의 얼굴에는 대담성과 부끄럼이 드러나 있었다.
그녀는 "그대의 누이가"라고 적었다가 누이란 말을
지우는 것이 좋겠다고 여기고 밀랍 표면을 문지른 다음
이런 말들을 적었다. "여기 그대를 사랑하는 사람이
그대가 안녕하기를 빌고 있어요. 하지만 그녀는
그대가 허락하지 않으면 안녕하지 못할 거예요.
아아, 그녀는 이름을 밝히기를 부끄러워해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대가 물으신다면,
내가 원하는 것은 이름을 밝히지 않고 내 용건을 말하고, 내 희망이 확실히 이루어지기 전에는 내가
비블리스라는 것이 알려지지 않는 거예요.
그대는 내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알수 있었을
거예요. 창백하고 마른 내 얼굴, 가끔 눈물이 글썽이는
내 두 눈, 뚜렷한 이유도 없는 내 한숨, 잦은 포옹,
그리고 그대가 알아챘는지 몰라도 도무지 누이가
하는 것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내 입맞춤이 그 증거예요.
내가 비록 마음에 큰 상처를 받기는 했지만, 내 내면에
불 같은 광기가 활활 타오르고 있기는 하지만 건강을
회복하려고(신들께서 내 증인이세요.) 안 해본 짓이
없어요.가련한 나는 쿠피도(에로스)의 맹렬한 공격에서
벗어나려고 오랫동안 싸웠으며, 한소녀가 참고
견딜 수 있으리라고 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참고 견뎠어요. 하지만 나는 졌다고 시인하지 않을 수
없고, 소심하게 기도하며 그대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을 수 없게 됐어요.그대를 사랑하는 이를 그대만이
살릴 수 있고, 그대만이 죽일 수 있어요.
어떻게 할 것인지 선택하세요! 그대에게 이렇게
간청하는 것은 그대의 적이 아니라, 그대와 더없이
가깝지만 더 가까워지고, 더 견고한 인연으로
그대와 맺어지기를 바라는 여인이에요.
노인이나 법도를 알고,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그르고, 무엇이 옳은지 묻고, 법규를 따지며 지키라
하세요! 경솔한 사랑이 우리 또래에게는 어울려요.
우리는 무엇이 허용되는지 아직 알지 못하며,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믿어요.
그 점에서 우리는 위대한 신들의 본보기를 따르고
있지요. 엄하신 아버지(밀레토스)도, 소문에 대한
거리낌도, 두려움도 우리를 가로막지 못할 거예요.
두려워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 은밀한 사랑의
즐거움을 남매라는 이름으로 가릴 거예요. 그러면
나에게는 그대와 은밀히 이야기를 나눌 자유가
주어질 것이며, 우리는 남들이 보는 앞에서 포옹하고
입맞추어도 좋을 거예요. 그만하면 부족한 게 뭐죠?
그대는 그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극단적인 정염이
강요하지 않았더라면 고백하지 않았을 여인을 불쌍히
여기세요. 그대는 내 무덤에 내 죽음의 원인으로
그대의 이름이 새겨지지 않게 하세요!" 그녀가 아무
소용없을 이런 말을 적어넣었을 때 서판이 가득차
맨 마지막 줄은 가장자리에 매달렸다.
비블리스는 지체 없이 사실상 자신의 범죄를 고발하는
이 편지에다 이름을 새긴 보석 반지로 도장을
찍었는데, (입에 침이 말라) 눈물로 그것을 적셨다.



568행—626행.

자신의 하녀에게 비밀 편지를 건네주는 비블리스. 14세기 중반.


그녀는 부끄러워하며 하인 한 명을 부르더니
소심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가장 충실한 하인이여,
이것을 전하게, 내•••."라고 말하고 한참 뒤에야
“오라버니께!"라고 덧붙였다.
건네주는데 서판이 그녀의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그 전조에 불안해하면서도 그녀는 서판을
보냈다. 하인은 적당한 때를 보아 그녀의 오라비에게
다가가 감추어진 말을 전했다.
마이안드로스의 외손자(카우노스)는 서판을 받아
대충 읽어보고 깜짝 놀라 화를 벌컥 내며
내동댕이치더니 벌벌 떠는 하인의 멱살을 잡은 손을
가까스로 놓으며 말했다.
"도망칠 수 있을 때 도망쳐, 금지된 쾌락의 못된
뚜쟁이야!
네 죽음으로 내가 창피당하지 않을 것이라면,
너는 이런 짓을 한 죗값으로 죽음을 면치 못했으리라."
하인은 놀라 도망쳐 안주인에게 카우노스의 거친
대답을 전했다. 비블리스여, 그대는 퇴짜 맞았다는
말을 듣자 얼굴이 창백해지며 얼음 같은 한기에 온몸을
떨었소. 하지만 다시 정신이 돌아오자 그녀의 광기도
돌아와, 그녀의 혀는 대기 속으로 간신히 이런 말을
내뱉었다.
"내가 당해도 싸지! 어쩌자고 그렇게 경솔하게
내 이 상처를 드러냈던가? 어쩌자고 내가 감춰야
할 말들을 그렇게 서둘러 서판에 넘겨주었던가?
먼저 애매모호한 말로 의중을 떠보았어야 했어.
순풍이 부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놏을 조금만 올리고
어떤 바람인지 시험한 뒤 안전한 바다 위로 항해했어야
했어. 지금 나는 돛을 활짝 폈다가 뜻밖의 바람을 만난
꼴이 되고 말았구나. 그리하여 암초에 부딪혀 좌초하며 끝없는 바다 밑에 가라앉았으니, 내 돛도 나를 도로
집으로 데려다주지 못하겠지.
아니, 더없이 분명한 전조가 나더러 내 사랑에
탐닉하지 말라고 경고하지 않았던가! 서판을 전하라고
명령한 손에서 서판이 떨어지며 내 희망도 사라질 것을
알려주었을 때 말이야. 날짜를 바꾸든지 계획을
모두 바꿨어야 했던 게 아닐까?
그래, 계획보다는 역시 날짜를 바꿨어야해.
신께서 친히 경고하시며 확실한 전조를 주셨어.
내가 정신을 잃지 않았더라면 말이야. 역시 직접
말했어야 했어. 내 의중을 밀랍에 맡길 것이 아니라
직접 만나 면전에서 내 광적인 정염을 털어놓았어야
했어. 그러면 그는 사랑하는 여인의 눈물과 얼굴을
보았겠지. 나는 서판이 담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었겠고. 또 그가 싫다 해도 두 팔로
그의 목을 끌어안을 수 있었을 것이고, 퇴짜 맞으면
죽는 시늉을 하며 그의 두 발을 껴안으며 거기 무릎을
꿇고 엎드려 살려달라고 간청할 수 있었겠지.
나는 가능한 모든 짓을 다 했어야 했어. 개별적으로
그럴 수는 없겠지만 한꺼번에 그것들을 다 썼다면
그의 완고한 마음을 돌릴 수 있었을 거야.
어쩌면 내가 보낸 하인이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도
모르지. 그에게 서투르게 다가갔거나, 생각건대,
적합하지 않은 시기를 골랐거나, 그의 마음이 한가롭지 않은 시간에 그를 찾았는지도 모르지.
이런 것들로 인해 내가 실패했던 거야. 그는 암호랑이의 자식도 아니고, 가슴속에 단단한 바윗덩이나 견고한
무쇠나 아다마스(강철)의 심장을 달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암사자의 젖을 빨아 마신 것도 아니니까.
그는 정복될 거야! 다시 해보아야 해. 일단 시작한 일에 나는 결코 싫증 내지 않을 거야. 내 몸에 숨결이 남아
있는 한. 내가 시작한 일이 취소할 수 있는 것이라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최선책이겠지.
일단 시작한 이상 차선책은 그것을 끝까지 쟁취하는
거야. 내가 여기서 구애를 그만둔다 해도 그는 내 대담한 행동을 두고두고 기억할 거야. 내가 여기서 그만둔다면 그 때문에 오히려 나는 경솔하게 변덕을 부렸거나
그를 시험해보았거나 그에게 덫을 놓은 것처럼 보이겠지. 내 마음을 부추기고 불태우는 것은 사실 사랑의 신인데도 그는 틀림없이 내가 애욕에 제압되어 그러는 줄 알겠지.
간단히 말해, 죄를 짓고도 짓지 않은 것으로 할 수는 없어.



627행—634행.

카우노스(Caunus)를 뒤쫓는 비블리스(Byblis). 프랑슈아 쇼보(1613–1676).


편지도 썼고 구애도 했어. 나는 내 욕망을 드러냈어.
더이상 아무 짓 않는다 해도 죄 없다 할 수는 없어.
앞으로 남은 일은 희망은 키울지언정 죄는 키우지
않는 것이겠지."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그만큼 그녀는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시도한 것을 후회하면서도 다시 시도하고 싶어했다.
그녀는 절도를 잃었고, 불행히도 거듭해서 퇴짜를
맞았다. 그뒤 곧 그녀의 구애에 끝이 보이지 않자,
카우노스는 고향과 죄악에서 도망쳐 이국땅에다
새 도시(소아시아 카리아 지방의 남서부에 있는
카우노스 도시)를 건설했다.


635행—648행.

비블리스(Byblis). 1651.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밀레토스의
딸(비블리스)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때 가슴에서 옷을 찢고는
미쳐 날뛰며 자신의 두 팔을 쳤다.
비블리스는 이제 모두가 보는 앞에서 미쳐 날뛰며
금지된 사랑의 희망을 고백하다가 고향과 싫어진 집을
떠나, 도망친 오라비의 발자국을 뒤쫓았다. 그리고,
세멜레의 아들(바쿠스, 디오니소스)이여, 그대의
튀르수스(머리 부분에 솔방울을 달고 포도 덩굴
또는 담쟁이 덩굴을 감은 지팡이로, 바쿠스 축제 때
바쿠스와 그의 여신도들이 들고 다녔다) 지팡이에 미쳐
이스마루스(트라키아)의 바쿠스 여신도들이
삼 년마다 돌아오는 축제를 개최하듯, 그와 다르지
않게 비블리스가 소리를 지르며 넓은 들판을 헤매는
것을 부바수스(소아시아 내 카리아 지방의 소도시)
여인들은 보았다. 이 들판을 뒤로하고 그녀는
카리아(소아시아 내 지방)인들과 무장한
렐레게스족(소아시아에 흩어져 살던 선주민 부족)의
나라와 리키아(소아시아 내 지방)를 돌아다녔다.
그녀는 어느새 크라구스(소아시아 내
리키아 지방의 산)와 리뮈레(리키아 지방의 강)와
크산투스(소아시아 내 트로아스 지방 평야를
흐르는 강) 강물과, 사자의 가슴과 얼굴에, 뱀의
꼬리를 가진 채 몸통에서 불을 내뿜는
괴물 키마이라(소아시아 내 리키아 지방의 괴물)가
살던 산등성이를 뒤로했다.



649행—665행.

비블리스(Byblis). 48 cm x 79 cm.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1825–1905).


숲이 끝났을 때, 비블리스여, 그대는 뒤쫓느라
지쳐 쓰러졌고, 딱딱한 땅바닥에 머리가 흘러내리는
가운데 낙엽 속에 얼굴을 묻고 거기 누워 있었소.
렐레게스족의 나라에 사는 요정들은 때로는 부드러운
팔로 그녀를 들어올려보려고도 했고, 때로는 상사병을
고치라고 충고하며 위로해주었으나 그들의 말이 그녀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비블리스는 말없이 누운 채
손톱으로 초록빛 풀을 움켜쥐고는 냇물처럼
흘러내리는 눈물로 풀밭을 적시고 있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물의 요정들이 그녀의
눈물을 위해 결코 마르지 않는 실개천을 내주었다고
한다. 그들로서는 이것이 가장 큰 선물이었다.
그러자 마치 소나무 껍질을 베면 송진이 흘러나오듯이, 묵직한 대지에서 끈적거리는 역청이 배어나듯이,
또는 부드럽게 불어대는 서풍이 불어오면 추위에
얼어붙은 물이 햇빛에 녹듯이,
그렇게 포이부스(아폴로의 별칭)의 손녀 비블리스도
즉시 제 눈물에 녹아내려 샘으로 변했는데,
그 샘은 지금도 그 골짜기에서 여주인의 이름을
지닌 채 시커먼 떡갈나무 밑에서 솟아나고 있다.


[참고. 소아시아]

고대 소아시아(현재 튀르키예 아나톨리아 반도)의 지역들.

소아시아 내
트로아스(Troas) 또는 트로아드(Troad) 지방.
카리아(Caria) 지방. 리키아(Lycia) 지방.
흑해(BLACK SEA) 서남부의
트라키아(Thrace) 지역.

[참고. 키마이라]

키마이라(기원전 400년경). 높이(78.5 cm), 길이(129 cm). 재질(청동).


<신들의 계보> 318행—325행.

에키드나는 또 제압할 수 없는 불을 내뿜고
무섭고 크고 발 빠르고 강력한
키마이라(티폰과 에키드나의 괴물)를 낳으니,
키마이라는 머리가 셋으로, 하나는 눈을 부라리는
사자의 머리고, 하나는 암염소의 머리고, 하나는
강력한 용의 머리였다. [그것은 앞은 사자고 뒤는
용이고 가운데는 암염소였으며 타오르는 불의
강력한 힘을 내뿜었다.] 그러나 키마이라를
페가수스(포세이돈과 메두사의 천마)와
고귀한 벨레네폰테스(포세이돈의 아들)가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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