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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품과 함께 읽는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9권. 이피스(Iphis)와 이안테(Ian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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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을 부여안고 있는 이피스와 그녀의 어머니 텔래투사(Telethusa). 니콜라 드 로네(1739–1792).



666행—684행.

이피스의 부모 텔레투사(Telethusa)와 릭두스(Ligdus). 1325년경.


이 놀라운 기적에 관한 소문은 아마도
크레테(그리스에서 제일 큰 섬)의
일백 도시에서도 온통 화제가 되었을 것이다.
만약 크레테에서 이피스의 변신이라는, 자신들과
더 가까운 기적이 최근에 일어나지 않았다면 말이다.
크노소스(Knosos. 크레테의 도시로 미노스의 궁전이
있던 곳, 여기서 '크노소스'는 '크레테'라는 뜻이다) 왕국에서 가까운 파이스토스(Phaistos. 크레테 섬의 도시) 땅에 전에 별로 알려진 것이 없는 릭두스라는 사람이
태어났다. 그는 평민 가정에서 태어난 자유민으로,
재산도 그의 신분보다 별로 나을 게 없었다. 하지만
생활방식과 신용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임신 중인
그의 아내가 해산할 날이 다가오자 그는 이런 말로
아내에게 경고했다. "내게 두 가지 소원이 있는데,
하나는 되도록 진통을 덜 겪고 당신이 해산하는 것이고, 하나는 아들을 낳는 것이오. 딸은 내게 더 부담스럽고,
행운은 내게 재력을 거절했소. 따라서 제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혹시 당신이 딸을 낳는다면
(나는 본의 아니게 명령하오. 자식 사랑이여,
나를 용서해 다오!) 그 애는 죽어야 하오."
그렇게 그는 말했다. 명령을 하는 그나,
명령을 받은 그녀나, 둘 다 쏟아지는 눈물에 두 볼이
흠뻑 젖었다. 텔레투사는 자신의 기대를 반감하지
말아달라고 남편에게 거듭해서 간청하고 애원했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릭두스의 결심은 확고했다.



[참고. 크레테 섬]

크레테 섬. 미노스 문명. 기원전 3100년—기원전 1100년.

크노소스(Knossos).  파이스토스(Phaistos).
딕테산(Mount Dikte).



684행—701행.

여신 이시스(Isis)와 텔레투사. 1732.


어느새 때가 되어 그녀가 뱃속의 짐을 더이상
가지고 다니기가 어렵게 되자 한밤중에
이나쿠스(아르고스의 강의 신이자 강)의
딸(이오. 그녀는 훗날 이집트에서 이시스 여신으로
숭배받았다)이 신성한 무리를 거느리고 자신의
침대 앞에 서 있는 꿈을 꾸었다. 또는 그런 꿈을
꾼 것 같았다. 여신은 이마에 초승달의 뿔들을 달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번쩍이는 황금으로 만든 누런
곡식 이삭 화관이 달려 있었다.
여신은 여왕답게 차려입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개의 머리를 한 아누비스(사람의 몸에 개의
머리를 한 이집트의 신),
신성한 부바스티스(이시스와 오시리스의 딸로 고양이
또는 고양이 머리를 한 여자로 그려지던 이집트의
여신)와 얼룩무늬의 아피스(이집트인들이 신으로
숭배하던 황소)와 입술에다 손가락을 갖다 대고
침묵을 명하는 이(이집트의 침묵의 신
하르포크라테스)가 있었다. 거기에는 또 딸랑이와,
아무리 찾아도 성에 차지 않는
오시리스(이집트의 풍요의 여신인 이시스의 남편)와
잠들게 하는 독이 가득 들어 있는 이국의 뱀들도
있었다. 텔레투사는 자신이 잠에서 깨어난 것 같았고,
주위의 모든 것이 뚜렷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때 여신(이시스)이 그녀에게 말했다.
"내 숭배자중 한명인 텔레투사여, 네 무거운
근심일랑 벗어버리고, 네 남편의 명령을 속이도록 하라.루키나(‘빛Lux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여자'라는
뜻으로 출산의 여신으로서의 헤라 또는 아르테미스의
별칭)가 네 짐을 덜어주거든,
그것이 무엇이 됐든 너는 주저하지 말고 네 아이를
기르도록 하라. 나는 도움을 청하는 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여신이다. 너는 배은망덕한 신을
숭배했다고 불평하지는 않으리라." 이렇게 충고하고
여신은 방에서 나갔다.



702행—713행.

딸을 낳은 텔레투사. 14세기 중반.


크레테의 여인(텔레투사)은 침대에서 기쁜 마음으로
일어나 정결한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들고는 꿈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간칭하고 기도했다.
그녀의 진통이 심해지며
뱃속의 집이 저절로 대기 속으로 밀고 나왔다.
딸이 태어났다. 하지만 아버지는 모르고 있었고,
어머니는 아들이라고 속이고는 기르라고 명령했다.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믿었고, 그것이 속임수임을
아는 사람은 유모뿐이었다. 아버지는 서약을 이행하고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이의 이름을지었는데,
할아버지는 이름이 이피스였다. 어머니도 이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이 이름은 남녀에 두루 쓸 수 있어
그녀는 어느 누구도 속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경건한 기만으로 시작된 속임수는 그 뒤로
들키지 않았다. 아이는 소년처럼 차려입었고,
아이의 얼굴은 그대에게 소녀의 것으로 보이든
아니면 소년의 것으로 보이든 간에 예쁘장했다.



714행—744행.

이피스와 그녀의 아버지 닉두스와 이안테. 14세기 중반.


그사이 십삼 년이란 세월이 지나갔다. 그러자, 이피스여, 그대의 아버지가 금발의 이안테를 그대의 배필로
정했으니, 딕테(크레테 섬에 있는 산. 여기서
‘딕테’는 ‘크레테’라는 뜻이다)의 텔레스테스의 딸인
그녀는 파이스투스의 여인들 사이에서 미모라는
지참금 때문에 가장 칭찬받던 소녀였다.
두 사람은 나이도 같고 똑같이 예뻤으며, 같은 선생들
밑에서 자신들의 나이에 맞는 초보 교육을 받았다.
사랑이 두 사람의 아직도 순진한 마음을 건드려
두 사람에게 똑같은 상처를 주었다. 하지만 그들의
희망은 같지 않았다. 이안테는 결혼을 바라보고
결혼식이 올려질 날을 고대하며 자신이 남자로 여기고
있는 이피스가 곧 자기 남편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한편 이피스는 성취될 희망도 없이 사랑했고,
그래서 더 열렬히 사랑했다. 그녀는 소녀의 몸으로
소녀에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눈물을 간신히 억제하며 말했다.
"어느 누구도 들은 적이 없는 놀랍고도 불가사의한
사랑에 사로잡힌 나를 대체 어떤 종말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신들이 나를 살릴 작정이라면,
나를 완전하게 살려주었어야지. 그게 아니고
신들이 나를 죽일 작정이라면, 내게 적어도
자연스럽고 통상적인 재앙을 보내주었어야지.
암소는 암소에게, 암말은 암말에게 달아오르지
않는 법이야. 암양은 숫양에게 달아오르고,
암사슴은 수사슴을 따라다니지.
새들도 그렇게 짝을 짓지. 그리고 모든 동물 중에
암컷이 암컷에 대한 사랑에 사로잡히는 경우는 없어.
내가 태어나지 말았더라면!
하긴 크레테(그리스에서 제일 큰섬)에는
온갖 괴물이 태어나고, 태양신의 딸(태양신
헬리오스의 딸 파시파에)은 황소를 사랑했지.
하지만 틀림없이 암컷으로서 수컷을 사랑하지 않았던가! 사실을 말하자면, 내 사랑은 그보다 더 광적이야.
그래도 그녀(파시파에)에게는 사랑이 이루어질
희망이 있었고, 그래도 그녀는 계략과 가짜 암소에
힘입어 황소와 교합했고,
간통한 황소는 거기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던가!
설령 온 세상의 재주꾼이 이곳에
다 몰려온다 해도, 다이달로스
자신이 밀랍 날개를 타고 도로 날아온다 해도,
그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가 배운 온갖
재주로 나를 소녀에서 소년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이안테여, 너를 바꿀 수 있을까?



[참고. 파시파에]

다이달로스(크레테 섬의 장인)가 파시파에(크레테 섬의 왕 미노스의 아내)에게 나무로 만든 황소를 주는 장면. 폼페이의 프레스코화. 기원후 1세기경.


미노스는 왕위 계승을 두고 형제들과 싸우던 중
포세이돈의 도움으로 왕이 되었다. 그는 백성들에게
자신이 왕권을 부여받았다고 주장하면서 그 증거로
자신이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미노스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포세이돈에게 황소를
한 마리 보내달라고 간청했다. 미노스가 간청한 대로
포세이돈은 황소를 보내주었고, 이에 미노스는
왕이 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미노스는 왕이 된 후에
황소를 다시 포세이돈에게 제물로 바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포세이돈은 그에 대한 벌로 파시파에로 하여금 그 황소에게 감당할 수 없는 욕정을 느끼게
했다고 한다. 파시파에의 기이한 욕정 또한 신의
저주에 의함이었던 것이다. 파시파에는 마침 크레테
섬에 머물던 전설적인 장인 다이달로스(이카루스의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에 다이달로스는
왕비에게 속이 비어있는 실물과 똑같은 황소를
만들어주었다. 파시파에는 이 황소 안으로 들어가
황소와 관계를 맺을 수 있었고, 이 이상한 관계에서
반은 인간이고 반은 소인 미노타우로스가 태어났다.
미노타우로스는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궁에 갇힌 채
아테네에서 7년마다 공물로 보내는 소년소녀들을
먹고 살다가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 손에 죽었다.



745행—770행.

이피스와 이안테. 14세기 중반.


이피스야,
왜 너는 마음을 굳게 먹고 정신을 가다듬어
이 부질없고 어리석은 정염을 털어버리지 못하는가?
너 자신마저 속이지 않으려면 네가 무엇으로
태어났는지 보고 나서 도리에 맞는 것을 추구하고
여자로서 사랑해야 하는 것을 사랑해야지. 사랑을
낳는 것도 희망이고 사랑을 키우는 것도 희망이야.
하지만 현실은 너에게서 희망을 빼앗고 있어. 네가
그녀와 포옹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파수꾼도 아니고,
남편의 세심한 주의도 아니고, 엄격한 아버지도
아니야. 그녀도 네 구애를 거절하지 않고 있어.
그래도 너는 그녀를 가질 수 없어. 설령 모든 일이
네 뜻대로 되고, 설령 신들과 인간들이 너를 위해
일한다 해도 너는 행복할 수 없어. 지금도 내 소원
가운데 헛된 것은 하나도 없어. 신들은 주실 수 있는
것은 기꺼이 다 내게 주셨고, 내가 원하는 것은
아버지도, 그녀도, 내 장인이 되실 분도 원하시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들 모두보다 더 강력한 자연은
그러기를 원치 않아. 자연만이 내게 적대적이야.
보라, 고대하던 때가 다가왔고, 혼례일이 임박했어.
이안테는 곧 내 사람이 될 거야.
아니, 내 사람이 될 수 없어, 물속에 있으면서도
나는 갈증을 느끼겠지. 신부의 여신 유노(헤라)여,
결혼의 신 히메나이우스여,
신랑은 없고 우리 둘 다 신부인 이 결혼식에 그대들이
왜 오시겠어요?" 여기서 이피스는 하던 말을 중단했다. 다른 소녀도 그에 못지않게 뜨겁게 달아올라,
히메나이우스여, 그대더러 어서 오라고 기도했소.
텔레투사는 이안테가 그토록 바라는 것이 두렵기만
하여 자꾸 혼인 날짜를 연기했는데, 때로는
병이 들었다는 핑계를 댔고, 때로는 전조와 꿈자리가
좋지 않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하지만 이제는
핑곗거리도 다 써먹은 데다 연기했던 혼례일이
바싹 다가와 단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771행—797행.

제단을 부여안고 있는 이피스와 그의 어머니 텔레투사. 니콜라 드 로네(1739–1792).


텔레투사는
자신과 딸의 머리에서 머리띠를 벗겨 머리를 푼 채
제단을 부여안고 말했다. "이시스여,
파라이토니움(북아프리카의 작은 항구 도시로
알렉산드리아에서 멀지 않 은 곳이다)과
마레오티스(알렉산드리아에서 멀지 않은
도시 및 호수)의 들판과 파로스(알렉산드리아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와 일곱 하구로 갈라진
닐루스 강에 사시는 분이시여, 바라옵건대,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의 두려움을 치료해주소서!
여신이시여,, 나는 전에 그대와 여기 있는 그대의
상징들을 보고는 모두 알아보았나이다, 그대의
수행원들도, 딸랑이 소리도, 횃불도.
나는 그대의 명령을 마음속에 명심했나이다.
이애가 햇빛을 보는 것도, 내가 벌받지 않은 것도,
보십시오, 다 그대 조언이자 선물이옵니다.
우리 두 모녀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대의 도움으로
구해주소서!" 이렇게 말하고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여신은 자신의 제단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움직였다. 신전의 문이 흔들렸고, 여신의
달 모양의 뿔들이 번갯불을 번쩍였으며, 딸랑이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아직 안심이 되지는 않아도,
좋은 전조에 마음이 흐뭇해져 어머니는 신전을 나섰다. 그 뒤를 이피스가 여느 때보다 더 큰 보폭으로
수행원인 양 뒤따라갔다. 한데 이피스는 얼굴빛이
더 검어 보였다. 힘은 더 강해졌고, 얼굴 표정은
더 날카로워졌으며, 아무 치장도 하지 않은 머리털은
더 짧아졌다. 이피스의 근력은 여인들이 보통
갖고 있는 것보다 더 강했다. 잠시 전만 해도
소녀였던 그대가 지금은 소년이기 때문이다.
그대들은 신전에 제물을 바치고 안심하고
즐기도록 하라! 그들은 신전에 제물을 바치고
감사패를 덧붙였는데, 감사패에는 이런 짤막한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 제물은 이피스가 소녀로 서약하였으나
소년으로서 바치나이다.

다음날 아침 햇살이 넓은 세상을
드러냈을 때 베누스(아프로디테)와 유노(헤라)와
히메나이우스가 결혼식 횃불이 켜져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고, 소년 이피스는 자신의 이안테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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