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행.

대담한 익시온(라피타이족의 왕으로 그는
제우스의 아내 헤라를 겁탈하려다 그 죗값으로
지옥에서 빙글빙글 도는 불타는 수레바퀴에 묶인다)의
아들(페이리토오스. 그리스 북부 텟살리아 펠리온 산
부근과 피네이오스 강 유역에 살았다고 전해지는
라피타이족의 왕)은 히포다메이아와 결혼하여,
209행—218행.

구름(헤라의 환영을 만든 구름의 님페 네펠레)의
아들들인 야수들(켄타우로스들)을 초대하고
나무로 가려진 동굴 안에 가지런히 차려놓은 식탁들
앞에서 비스듬히 몸을 기대도록 했소.
하이모니아(텟살리아 지방의 얫 이름)의 귀족들도
거기에 참석했는데, 나(필로스의 왕 네스토르)도
마찬가지였소. 축제가 벌어진 왕궁에는 군중이
질러대는 함성이 울려 퍼졌소. 보시오,
사람들은 축혼가를 부르고 불을 피워놓은 홀은
연기로 가득찼는데, 소녀(히포다메이아)가
어머니들과 여인들의 무리에 둘러싸여 들어오니
빼어난 미인이었소. 우리는 저런 아내를 얻어
행복하겠다고 피리토우스를 축하했는데, 그로 인해
우리가 축하한 좋은 전조를 하마터면 그르칠 뻔했소.
218행—227행.

왜냐하면 야만적인 켄타우로스족 중에서도
가장 야만적인 에우리토스여, 그대의 가슴은
술도 술이지만 그녀의 모습에 뜨겁게 달아올라,
욕정으로 배가된 술기운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오.
당장 식탁이 뒤엎어지며 잔치는 난장판이 되고,
갓 결혼한 신부는 머리채를 잡힌 채 질질 끌려갔소.
에우리투스는 히포다메이아를 끌고 가고,
그 밖의 다른 자들은 각자 원하는 대로 또는
할 수 있는 대로 여인을 한 명씩 끌고 가니,
그것은 함락된 도시의 모습이었소. 온 집안에
여인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소. 우리는 지체 없이
일어섰으나,
227행—241행.

맨 먼저 테세우스(아테나이의 왕으로
페이리토오스의 절친)가 말했소. '에우리투스여,
이게 대체 무슨 미친 짓인가? 내가 아직 살아 있는데
페이리토오스에게 도전하여 한 사람을
모욕함으로써 멋모르고 두 사람을 모욕하는 것인가?'
[고매한 영웅은 자신의 위협이 빈말이 되지 않도록,
덤벼드는 켄타우루스족을 옆으로 밀치고 미친
자들에게서 납치된 신부를 구출했소.]
에우리투스는 아무 대꾸도 않고(그는 말로는
자신의 행위를 옹호할 수 없었으니까요.)
파렴치한 두 손으로 그녀의 복수자(테세우스)에게
덤벼들더니 그의 얼굴과 너그러운 가슴을 쳤소.
마침 가까운 곳에 울퉁불퉁하게 돋을새김을 한
오래된 포도주 희석용 동이가 하나 있었소.
그 큰 동이를 그보다 더 큰 아이게우스(아테나이의
왕)의 아들(테세우스)이 번쩍 들어올려 곧장 그자의
얼굴에다 내던졌소. 그자는 상처와 입에서 핏덩이와
골과 술을 동시에 토하며 뒤로 벌렁 나자빠지더니
발뒤꿈치로 피에 젖은 모래를 두들겼소. 그자의
반인반마 형제들(켄타우로스들)은 그자의 죽음에
분기탱천하여 이구동성으로 외쳤소. '무장하라!
무장하라!' 술이 그들의 용기를 북돋워주었소.
242행—262행.

싸움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에는 술잔이 내던져지고
깨지기 쉬운 항아리와 배가 부른 대야가 날아다녔는데, 방금 전 잔치에 쓰였던 것이 이제 전쟁과 살육의
도구가 된 것이오. 맨 먼저 오피온의 아들 아미쿠스가
궁전 안의 성소에서 거기에 바쳐진 선물들을
약탈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소. 그자는 또 맨 처음으로
사당에서 휘황한 초들이 빼곡히 꽂힌 촛대를 낚아챘소. 마치 제물 바칠 때 쓰는 도끼로 황소의 흰 목을
꺾으려는 사제처럼 그자는 그것을 번쩍 쳐들더니,
라피타이족인 켈라돈의 이마를 내리쳐 박살난 뼈를
더이상 알아볼 수 없는 얼굴에다 남겨두었소.
켈라돈의 두눈은 밖으로 튀어나왔고, 광대뼈는
으깨졌으며, 코는 주저앉아 입천장 안에 붙어 있었소.
펠라(마케도니아 지방의 도시) 사람 펠라테스가
단풍나무 식탁에서 다리를 뽑아내어 아미쿠스를
땅바닥에 뉘었소. 그자가 턱이 가슴 쪽으로
밀려 들어간 채 시커먼 피와 범벅이 된 이빨을
뱉어내자, 펠라테스가 두 번째 가격으로 그자를
타르타라(지옥)의 그림자들(망령들)에게로 보냈소.
그러자 그리네우스가 무서운 눈길로 바로 옆에 있던
제단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있다가
왜 우리가 이것을 몰랐지?' 하고는 거대한 제단을
불과 함께 번쩍 들어올리더니 라피타이족
무리 한가운데로 내던져 그들 중 두 명을,
브로테아스와 오리오스를 깔아뭉개버렸소.
263행—270행.

오리오스의 어머니는 미칼레였는데,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녀는 가끔 주문으로
초승달의 뿔들을 싫다는데도 끌어내렸다고 하오.
"그대는 벌받지 않고는 달아나지 못하리라,
내 손에 무기가 잡히기만 하면!'이라고 말하고
엑사디우스는 키큰소나무에 봉헌물로 걸려 있던
사슴뿔을 무기로 썼소. 그리네우스는 사슴뿔
양끝에 눈을 찔려 눈알이 둘다 빠져나왔소.
그중 한쪽 눈알은 뿔에 박혀 있었고,
다른 눈알은 수염 위로 굴러떨어져
피투성이가 된 채 거기 매달려 있었소.
271행—307행.

보시오, 로이토스(켄타우로스족)가 불타고 있던
자두나무 장작을 제단 한가운데에서 낚아채더니
황갈색 머리로 덮인 카락수스의 관자놀이를
오른쪽에서 후려쳤소.
그의 머리털은 게걸스러운 불길에 사로잡히자
마른 곡식 밭처럼 타올랐고, 상처 안에서
그슬린 피는 무시무시하게 지글지글 끓는
소리를 냈소. 그 모습은 마치 발갛게 단 쇠막대를
대장장이가 구부정한 집게로 집어내 물통에
담그면 그것이 물에 잠기며 데워지는
물속에서 부글부글 끓으며 쉭쉭 소리를 낼 때와도
같았소. 부상 당한 자는 수룩한 머리털에서
탐욕스러운 불을 털어내더니 문지방 돌 하나를
땅에서 뽑아내어 어깨에 멨소. 그것은 달구지가
나를 짐이었소.
하지만 바로 그 무게가, 그것을 던져도 적에게
이르지 못하게 했소. 그리하여 커다란 돌덩이는
가까이 서 있던 전우 코메테스를 깔아뭉개버렸소.
로이토스는 기쁨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대 진영의
나머지 무리도 제발 그렇게 용감했으면!'
하고 말했소. 로이토스가 반쯤 타다 남은
장작개비로 또다시 카락수스의 상처에 달려들어
두개골의 이음새를 세 번 네 번 둔중하게 내리치니,
결국 카락수스의 뼈가 물렁해진 골속으로
내려앉고 말았소.
승리자(로이토스)는 에우아그루스와 코리투스와
드리아스에게로 향했소. 그중에서 이제 막
솜털이 볼을 덮기 시작한 코리투스가 앞으로
고꾸라지자 '소년을 죽이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영광인가?'라고 에우아그루스가 말했소. 하지만
로이토스는 더이상 그런 말을 하게 내버려두지
않고, 말하고 있는 그의 입으로 발갛게 단
장작개비를 맹렬한 기세로 쑤셔넣더니
가슴속까지 그것을 밀어넣었소. 그러고는
불을 머리 위로 휘두르며, 사나운 드리아스여,
그대도 추격했소.
그대에 대한 공격은 결과가 같지 않았으니,
잇달아 성공한
살육에 기고만장한 로이토스를 그대는 불에
단단해진 말뚝으로 목덜미와 어깨가 연결되는
부위를 찔렀던 것이오. 로이토스는 신음하며
간신히 단단한 뼈에서 말뚝을 뽑더니 제 피에
흥건히 젖은 채 도망을 쳤소. 오르네우스와
리카바스도 도망쳤고, 오른쪽 견갑골을 다친
메돈과 타우마스와 피세노르도 도망쳤소.
얼마 전 달리기 경주에서 모두를 이겼던
메르메로스는 부상을 당한 탓에 느릿느릿
떠나가고 있었소. 폴로스와 멜라네 우스와
멧돼지 사냥꾼 아바스와, 싸우지 말라고 헛되이
친구들을 말렸던 점쟁이 아스틸로스도 도망쳤소.
307행—340행.

그는 또 부상 당할까 두려워하던 네소스에게
'그대는 도망치지 마시오! 그대는 헤라클레스의
화살을 위해 살아남을 것이오.'
라고 말했소. 하지만 에우리노무스와 리키다스와
아레오스와 임브레우스는 죽음에서 도망치지
못했소. 그들이 맞섰을 때 드리아스의 팔이
그들 모두를 쓰러뜨렸던 것이오. 그리고
크레나이우스여, 그대도 비록 도망치려고 등을
돌렸으나 앞쪽을 다쳤소. 그대는 뒤를 돌아보다가
두 눈사이, 코가 이마의 맨 아랫부분과 만나는
곳에 묵직한 무쇠를 받았기 때문이오.
이토록 소란한 가운데서도 아피다스는
깨어나지 않고 혈관이 모두 늘어진 채 끝없는
잠에 빠져 누워 있었소. 그는 물 탄 포도주가 든
술잔을 여전히 축 늘어진 손에 든 채 옷사 산에
살던 곰의 털북숭이 모피 위에 뻗어 있었던 것이오.
함께 싸우지 않는 것이 아피다스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 포르바스가 멀리서 그자를 보고
투창의 가죽끈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며
'포도주에다 스틱스 강물을 타 마시게!'라고
말한 것이오. 그렇게 말하고 지체 않고 젊은이에게
창을 힘껏 던지자, 등을 대고 누워 있던 그대로
무쇠 날을 단 물푸레나무가 아피다스의 목을
뚫었소. 아피다스는 죽는 줄도 모르고 죽었소.
그자의 목구멍에 가득한 검은 피가 긴 의자와
술잔으로 흘러내렸소. 나는 페트라이우스가
도토리가 열린 참나무를 땅에서 뽑으려 하는
것을 보았소, 페트라이우스가 두 팔로 참나무를
껴안고는 이리저리 흔들어 흔들리는 밑동을
들어올리려 하는 동안, 페이리토오스의 창이
그자의 갈빗대 사이를 꿰뚫어 그자의 버둥대는
가슴을 단단한 참나무에 고정시켰소. 사람들이
말하기를, 리쿠스는 피리토우스의 용기에
쓰러졌다고 하며, 페이리토오스의 용기에
크로미스도 쓰러졌다고 하오.
이들 둘보다는 딕티스와 헬롭스가 승리자에게
더 큰 명성을 주었소. 헬롭스는 투창에 꿰뚫렸는데,
창은 관자놀이들을 관통하며 오른쪽 귀로 들어가
왼쪽 귀로 나왔던 것이오. 딕티스는 뒤쫓아오던
익시온의 아들(페이리토오스)을 피해 도망치다가
가파른 산의 벼랑에서 미끄러져 아래로 곤두박질치며
제 몸무게로 거대한 물푸레나무를 꺾는 바람에
그부러진 가지에 내장을 찔렸소.
341행—362행.

아파레우스가 그 원수를 갚겠다고 나서서
산에서 바위를 뜯어내 던지려 했소. 하지만
그자가 그것을 던지려는 순간 아이게우스의
아들(테세우스)이 참나무 몽둥이로 제압하여 그자의
굵은 팔꿈치 뼈를 박살냈소. 그는 그자의 쓸모없어진
몸뚱이를 죽음에 넘겨줄 시간도 의사도 없었던 터라
평소 자신 외에는 아무도 태우지 않던 키 큰
비에노르의 등에 훌쩍 뛰어 올랐소. 그러고는
무릎으로 그자의 옆구리를 누르고 왼손으로는
머리채를 움켜쥐고는 그자의 얼굴과 위협의 말을
내뱉는 입과 단단한 관자놀이를 옹이투성이의
몽둥이로 박살냈소. 테세우스는 몽둥이로 네누스와
창잘 던지는 리코페스와, 흘러내리는 수염으로
가슴을 가리고 다니던 히파소스와, 숲속의 나무
우지보다 키가 큰 리페우스와,
하이모니아(텟살리아 지방의 옛 이름)의 산에서
곰을 잡아 그 곰이 반항하는데도 산 채로 집으로
둘러메고 가곤 하던 테레우스를 뉘었소.
데몰레온은 테세우스가 싸움에서 잇달아 성공을
거두는 것을 보고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 짙은
덤불에서 오래된 소나무 한 그루를 뽑아내려
안간힘을 썼소. 나무가 끄떡도 하지 않자 그자는
그것을 꺾어 적에게 던졌소. 그것이 날아오자
테세우스는 멀리 떨어져 피했는데,
팔라스(전쟁의 여신 아테나의 별칭)가 그렇게
조언한 것이오. 아무튼 그는 그렇게 믿어주기를
원했소. 하지만 나무가 헛되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으니, 그나무는 키 큰 크란토르의 목을 베어
가슴과 왼쪽 어깨로부터 떼어놓았던 것이오.
363행—392행.

크란토르는 그대(아킬레스) 부친(펠레우스)의
무구를 들고 다니는 시종이었소, 아킬레스여.
돌로페스족(텟살리아 지방에 살던 부족)의 통치자
아민토르(돌로페스족의 왕)가
전쟁에서 지자 그(아민토르)를 아이아코스의
아들(펠레우스)에게 화친을 청하는 믿음직한
볼모로 맡겼던 것이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크란토르가 끔찍한 부상으로
찢기는 것을 본 펠레우스가 '가장 사랑스러운
젊은이 크란토르여, 장례 제물이라도 받아 가게나!'
라고 말하고 억센 팔로 있는 힘을 다하여
데몰레온에게 물푸레나무 창을 던졌소. 창은
흉곽을 뚫고 지나가 갈비뼈에 매달린 채 떨고 있었소.
데몰레온은 나무로 된 창 자루를 창끝은 남겨둔 채
뽑아냈소 (창 자루도 겨우 따라 나왔소). 창끝은
폐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소.
고통 자체가 그자에게 광적인 용기를 주었으니,
부상 당했으면서도 그자는 뒷발로 일어서더니
말발굽으로 적을 짓밟았던 것이오.
하지만 펠레우스는 요란하게 울리는 가격을 투구와
방패로 받아 어깨를 가리며 자신의 무기를 앞으로
내밀어 그자의 견갑골을 뚫고는 한 번의 가격으로
그자의 두 가슴을 찔렀소.
펠레우스는 그전에 플레그라이우스와 힐레스를
멀리서 창을 던져, 그리고 이피노우스와 클라니스를
근접전에서 죽음에 넘겨주었소. 이들에게 도라스가
덧붙여졌는데, 그자는 머리에 늑대 모피 모자를
쓰고는 사나운 무기 대신 수많은 피로 발갛게 물든
멋있게 구부러진 황소 뿔 한 쌍을 들고 다녔소.
그자에게 나는 '보라, 그대의 뿔들이 내 무쇠보다
얼마나 못한지!'라고 말하고 창을 힘껏 던졌소.
(용기가 내게 힘을 주었소.) 그자는 창을 피할 수 없자
부상을 막으려고 오른손을 이마에 갖다댔소. 그리하여
그자는 손이 이마에 고정된 채 크게 비명을 질렀소.
그자가 쓰라린 부상에 제압되어 꼼짝 못 하고
서 있는 동안 펠레우스가(그가 더 가까이
서 있었으니까요.) 칼로 그자의 배 한가운데를 찔렀소.
그자는 사납게 앞으로 뛰며 땅바닥 위로 제 창자를
끌었소. 끌리는 창자를 밟고, 밟히는 창자를 찢다가
그자는 제 창자에 제 다리가 걸려 뱃속이 빈 채 땅에
넘어졌소.
393행—428행.

킬라로스(Kyllaros)여, 그날의 싸움에서는
그대의 아름다움도 그대를 구해주지 못했소.
우리가 그대의 종족에게도 아름다움이 있음을
인정한다면 말이오. 그자의 수염은 이제 갓나기
시작한 황금빛 수염이었고, 양어깨에는 금발이
견갑골 한가운데까지 늘어져 있었소.
그자의 얼굴에는 우아한 활기가 넘쳤소. 그자의
목덜미와 어깨와 손과 가슴과 사람의 모습을 한
부분은 모두 예술가의 칭찬받는 걸작품에 가장
가까웠소. 그자의 말의 모습도 나무랄 데 없었고,
사람의 모습도 그에 못지않았소.
그대는 그자에게 말의 목과 머리를 줘보시오.
그러면 그자는 카스토르(제우스와 레다의 아들)가
타기에도 손색이 없을 것이오.
그자의 등은 그만큼 앉기 좋고, 가슴은 그만큼
근육이 솟아 있었소. 그자는 온몸이
역청보다 더 검었소. 하지만 꼬리는 희었고,
다리도 흰색이었소. 그자의 종족 가운데 많은
암컷이 그자를 갈망했소. 힐로노메(Hylonome)
한 명만이 그자의 마음을 끌었으니,
깊은 숲속에 사는 반인반마 가운데 그녀보다
더 아리따운 암컷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오.
그녀만이 달콤한 말과 사랑과 사랑의 고백으로
킬라로스의 마음을 사로잡았소. 그리고 꽃단장으로도.
그런 사지에도 꽃단장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말이오.
그녀는 윤이 나게 머리를 빗질하는가 하면,
때로는 로즈메리로, 때로는 제비꽃이나 장미꽃으로
화관을 엮어 썼고, 간혹 흰 백합을 꽂고 다녔소.
힐로노메는 하루에도 두 번씩이나
파가사이(텟살리아 지방의 해안 도시)의
숲 언덕에서 흘러내리는 샘에 얼굴을 씻고,
두 번씩이나 시냇물에 멱을 감았으며, 자신에게
잘어울리는, 정선된 짐승의 모피가 아니라면
어깨나 왼쪽 옆구리에 걸치지 않았소.
그들 둘은 똑같이 사랑했소. 그들은 함께 산속을
돌아다니다가 함께 동굴로 돌아오곤 했으니 말이오.
이번에도 그들은 나란히 라피타이족의 궁전에
왔다가 나란히 격전을 치렀소. 누구의 소행인지
확실치 않지만, 왼쪽에서 창 하나가
날아와, 킬라로스여, 그대의 가슴이 위쪽의 목과
이어지는 곳을 맞혔소. 경미한 부상이었으나,
창을 뽑아내자 다친 심정이 온몸과 함께 싸늘하게
식었소. 그러자 당장 힐로노메가 죽어가는 사지를
받아 손으로 상처를 쓰다듬고 입에 입을 갖다 대며
도망가는 목숨을 도망가지 못하게 막으려 했소.
그자가 죽은 것을 보자, 그녀는 주위가 소란하여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몇 마디 말을 하더니 그자를
꿰뚫었던 창 위에 몸을 던져 죽어가면서 제 남편을
끌어안았소.
429행—458행.

눈에 선한 자가 또 한 명 있소.
파이오코메스 말이오. 그자는 여섯 장의 사자
가죽을 노끈으로 한데 꿰매어 사람인 상반신과
말인 하반신을 동시에 가리고 다녔소.
그자는 두 쌍의 소가 간신히 움직일 수 있을 만한
통나무를 내던져 올레누스의 아들 텍타포스의
두개골을 박살냈소.
[텍타포스의 머리의 둥근 뚜껑이 사방으로
박살나며 입과 빈 콧구멍과 눈과 귀로 물렁한
골이 흘러나오니, 그 모습은 마치 응고된 우유가
참나무로 엮어 만든 바구니에서 똑똑 들을 때나,
6 끈적이는 액체가 무거운 것을 올려놓은
성 체에서 흘러내리며 촘촘한 구멍 사이로 진하게
짜질 때와도 같았소.]
하지만 나는 쓰러져 누워 있는 자의 무구를
그자가 벗길 채비를 하는 동안(이것은 그대의
부친이 알고 있소.) 칼을 약탈자의 아랫배로 깊숙이
밀어넣었소. 크토니우스와 텔레보아스도 내 칼에
쓰러졌소. 그중 한 명은 두 갈래로 나뉜 나뭇가지를
들고 다녔고, 다른 한 명은 창을 들고 다니며
그 창으로 내게 부상을 입혔소. 보시구려, 그 흔적을!
오래된 흉터가 아직도 또렷이 보이는구려.
그때 내가 페르가마(트로이아의 성채를
함락하도록 보내졌어야
하는 건데! 그때라면 나는 위대한 헥토르의 무구를
내 무구로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제지할 수는
있었을 것이오. 하지만 그때는 헥토르는 태어나지
않았거나 소년이었을 것이오. 이제 나는 늙어
힘이 달리오. 페리파스가 어떻게 반인반마의
피라이투스를 이겼으며, 암스가 어떻게 날이 빠진
층층나무 창 자루로 네발 달린 에켈루스의 얼굴을
정면에서 쳤는지 그대에게 이야기해서 뭣하겠소?
마카레우스는 펠레트로니온(펠리온 산의 서쪽
비탈에 있는 계곡 또는 동네) 출신
에릭두푸스의 가슴을 지렛대로 쳐서 뉘었소.
넷수스의 손이 던진 사냥용 창이 퀴멜루스의
아랫배에 묻힌 일도 생각나는구려. 그대는
암피쿠스의 아들 몹수스가 미래사를 노래하는
예언자일 뿐이라고 생각지 마시오.
몹수스가 던진 창에 반인반마의 호디테스가
쓰러졌다오. 그자는 말하려 했으나 소용없었으니,
혀는 턱에 고정되고턱은 목구멍에 고정되었기
때문이오.
'미술 작품과 함께 읽는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12권. 네스토르(Nestor)와 헤라클레스의 아들 틀레폴레모스(Tlepolemus). (0) | 2025.04.10 |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12권. 카이네우스(Caeneus)와 켄타우로스(Kentauros)족의 혈투. (2) | 2025.04.09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12권. 카이네우스(Caeneus)와 카이니스(Caenis). (1) | 2025.04.07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12권. 아킬레스(Achilles)와 키크노스(Cycnus)의 혈투. (0) | 2025.04.07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12권. 소문의 여신 파마(Fama)/페메(Fame). (0) | 2025.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