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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품과 함께 읽는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13권. 아킬레스(Achiles)의 무구를 차지하려는 아이아스(Aeas)와 오디세우스(Odysse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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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전쟁에서 중요 인물들. 왼쪽부터.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 아르고스의 왕 디오메데스. 이타카 섬의 군주 오디세우스. 필로스의 왕 네스토르. 그리스 연합군 제일의 맹장 아킬레스. 그리스 연합군의 총지휘관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




1행—21행.

트로이군으로부터 그리스 선박을 방어하는 아이아스. 존 플락스만(1755–1826).


대장들이 자리에 앉고 병사들이 그들 주위에
빙 둘러서자 일곱겹 방패의 임자(그는 청동 위에
소가죽 일곱 개를 덧대어 만든 방패를 들고 싸우는
모습으로 묘사된다)인 아이아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성미가 급한 그는 찌푸린 얼굴로
시게움(소아시아 서북부 트로아스 지방에 있는 곶)
해안과 거기 자리잡은 함대들을 노려보더니
그것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유피테르(제우스)의 이름으로 나는 이들
함선 앞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바요.
내 소송 상대는 오디세우스요!
헥토르(소아시아 트로이의 제일의 맹장)가
우리 함대에 불을 질렀을 때 나는 그 앞에서 버텼고
아니, 함대로부터 그것을 물리쳤지만,
그(오디세우스)는 그 앞에서 주저 없이 물러섰소.
손으로보다는 거짓말로 싸우는 편이 더 안전하다는
것이겠지요. 그가 행동하는 데 민첩하지 못한
그만큼 나는 말하는 데 민첩하지 못하고,
그가 말하는 데 능한 그만큼
나는 격전과 전투 대열에 능하오. 하지만
펠라스기족(고대 그리스의 선주민 부족 가운데
하나로 흔히 ’그리스인들‘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이여, 내 무훈에 관해서는 더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오. 여러분이 다 보았으니까요.
오디세우스에게나 자기 무훈을 말하게 하시오.
그것은 증인도 없고,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은
밤뿐이니까요. 내가 큰 상을 바란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내 경쟁자가 그 명예를
떨어뜨렸소. 오디세우스가 바라는 것이
아무리 큰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얻는 것은 아이아스에게는
자랑거리가 되지 못하니까요. 오디세우스는
이미 이번 경쟁에서 상을 받았소. 그가 지더라도
사람들은 그가 나와 겨뤘다고 말할
테니까요. 설령 내 용기가 의심스럽다 하더라도



21행—32행.

펠레우스 인물관계도. 춯처: 네이버 지식백과.


나는 가문에서 그(오디세우스)보다 더 우위에 있소.
나는 용감한 헤라클레스와 함께 트로이의 성벽을
함락하셨고, 파가사이(그리스 텟살리아 지방의
도시)의 배(아르고호)를 타고
콜키스(흑해 동쮹에 있는 도시)의 해안으로
가셨던 텔라몬(아르고호 원정대의 일원)의 아들이오.
텔라몬의 아버지(아이아코스)는 무거운 바윗돌이
아이올로스의 아들 시시포스를 재촉하는
저 침묵의 나라(저승)에서 판결을 내리시는
아이아코스(그는 후기 신화에 따르면 라다만투스와
더불어 저승에서 죽은 이들의 심판관 노릇을 한다고
한다)올시다. 아이아코스로 말하자면 최고신
유피테르(제우스)께서 당신의 아들로 인정하신
분이시오. 그러니까 아이아스는 유피테르의
증손이오. 아키비족(그리스인들. 특히 트로이아에서
싸운 그리스인들)이여, 나는 이번 사건에서 이런
혈통을 나를 위해 이용하지 않았을 것이오.
만약 내가 그것(죽은 아킬레스의 무구)을
위대한 아킬레스(그리스 연합군 제일의 맹장)와
공유하고 있지 않다면 말이오.
아킬레스(펠레우스의 아들)는 내 사촌이고,
나(텔라몬의 아들 아이아스. 텔라몬은 펠레우스의
형이다)는 사촌의 것을 요구하는 것이오.



32행—45행.

미친 체하며 밭에다 씨앗 대신 소금을 뿌리는 오디세우스는 팔라메데스(Palamedes)에게 발각된다. 17세기초. 작가 미상.


시시포스의 아들(오디새우스)이여,
도둑질과 속임수에서 그자(시시포스)를 쏙 빼닮은
그대가 어째서 아이아코스의 집안일에
다른 가족의 이름을 끼워 넣는 것이오?
나에게 이 무구 주기를 거절하는 것은,
내가 고발자(팔라메데스) 없이 먼저 무기를 들었기
때문인가요? 오디세우스보다
더 영리했으나(팔라메데스는오디세우스보다
더 영리했다고 한다) 그것이 자신에게는 이익이
되지 못한 나우플리우스의 아들 팔라메데스가
비겁한 자(오디세우스)의
속임수(팔라메데스는 전쟁터에 가기 싫은
오디세우스가 말과 소를 함께 묶어 밭을 갈면서
고랑에 씨앗 대신 소금을 뿌리며 미친 체하자
오디세우스의의 갓난 아들 텔레마코스를
그의 아내 페넬로페의 품에서 낚아채어 밭고랑에
내려놓는다. 쟁기질을 멈춘 오디세세스는 발각되고
그는 훗날 이에 앙심을 품고 트로이 앞에서
팔라메데스의 막사 안에다 황금을 숨겨두고 편지를
조작한 다음 그를 적과 내통한다고 무고하여
돌에 맞아 죽게 만든다)를 폭로하여
그(오디세우스)가 피하려 한 무구들이 있는
곳(트로이 전쟁터)으로 끌고 갈 때까지 그는 미친
체하며 전쟁을 회피했거늘, 맨 마지막에 무기를
든 자를 더 용맹한 사람으로 보아야 하나요?
오디세우스는 무기를 들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훌륭한 무구를 가져야 하나요? 그리고 나는
맨 먼저 위험에 맞섰기 때문에 수모를 당하고
내 사촌(아킬레스)의 선물(무구)을 빼앗겨야
하나요? 그 광증이 사실이거나 아니면 사실로
믿어졌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리하여 저 범죄를
사주한 자(오디세우스)가 우리 일행으로서
프리기아(소아시에 있는 지역)의 성채로 오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참고. 시시포스]

지옥에서의 시시포스(Sisyphus). 2016. 시시포스는 아이올로스의 아들로 코린토스 시의 건설자이다. 당시 가장 교활한 악당으로 온갖 기만과 비행을 일삼다가 지옥에 가서 그 죗값으로 돌덩이를 산꼭대기로 굴려 올리는 벌을 받는다. 산꼭대기에 닿으려는 순간 그 돌덩이가 도로 굴러떨어져 이 절망적인 고역을 끊임없이 되풀이 한다.




45행—77행.

렘노스 섬에 고립된 텟살리아의 멜리보이아의 왕 필록테테스(Philoctetes). 225 cm x 176 cm. 장 제르맹 드루에(1763–1788). 트로이로 가던 도중에 렘노스 섬에서 독사에 물려 심한 악취를 풍기며 끔찍한 비명을 지르는 그를 그리스군이 오디세우스의 조언에 따라 그 섬에 버리고 간다. 전쟁이 발발한 지 10년째 되는 해 그가 헤라클레스의 화장용 장작더미에 불을 질러준 대가로 받은 활 없이는 트로이가 함락되지 않을 것이라는 신탁에 따라, 오디세우스가 렘노스로 가서 혼자 비참하게 살아가는 필록테테스를 그리스군에 합류하도록 설득한다.


그랬더라면, 포이아스의 아들(필록테테스)이여,
렘노스(에게 해 북동부에 있는 섬)가 그대를
갖게 되는 죄를 우리는 범하지 않았을 것이오.
듣자 하니, 지금 그대는 숲과 동굴에 숨어 살며
한숨 소리로 바위를 감동시키고, 라에르테스의
아들(오디세우스)에게 당연한 일이지만
저주를 퍼붓는다고 하는데, 신들이 계신다면
그대의 저주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오. 지금 같은
전쟁을 위해 우리와 동맹을 맺은 아아!
우리의 장수 중 한 명인 그가, 헤라클레스에게
화살들을 물려받은 그(필록테테스)가 병과
허기에 시달려 새의 깃털을 입고 새의 고기를 먹으며,
운명이 트로이의 함락을 위해 정해놓은 화살들로
새를 맞히고 있소. 하지만 그는 오디세우스와
동행하지 않았기에 아직 살아 있소. 불운한
팔라메데스도 뒤에 남기를 원했을 것이오.
그랬더라면 그는 살아 있거나 적어도 불명예스럽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오. 저기 저자(오디세우스)가
자신의 광증이 불운하게도 발각된 것에 마음속 깊이
앙심을 품고 있다가 다나이족(그리스인들 특히
트로이야 전쟁에 참전한 그리스인들)의 이익을
배신한다고 그(팔라메데스)를 무고하며 날조된
죄의 증거로, 자신이 미리 묻어둔 황금을
보여주었던 것이오. 그리하여 오디세우스는
추방이나 살인에 의해 아키비족(그리스인들. 특히
트로이아에서 싸운그리스인들)의 힘을 약화시켰소.
그는 그런 식으로 싸우며, 그래서 공포의 대상인
것이오. 그가 설령 웅변에서 성실한 네스토르를
능가한다 해도 네스토르를 버린 것(네스토르가
헥토르의 공격을 피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디오메데스가 도움을 청하지만 오디세우스는
못 들은 척하고 도망친다)이 범죄가 아니라고
나를 설득하지 못할 것이오.
네스토르는 말이 다쳐 지체되고 노령으로 지쳐
오디세우스에게 도움을 호소했으나 전우에게
배신당했소. 이 범행이 내가 날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티데우스의 아들(디오메데스)이 잘 알고 있소.
그는 몇 번씩이나 이름을 부르며 비겁한 친구를
도망친다고 나무랐으니까요. 하지만 하늘의
신들께서는 인간이 하는 일을 정의로운 눈으로
굽어보고 계시오. 보시오, 남에게 도움을 주지 않던
그(오디세우스)가 도움이 필요했소.?
그가 남을 버렸듯이 그도 버림받았어야
했을 것이오. 자신이 남긴 선례대로 말이오.
그러나 그는 전우들을 불렀소. 내가 가서 보니,
그는 파랗게 겁에 질려 있었고 임박한 죽음 앞에
떨고 있었소. 나는 거대한 방패를 앞으로 내밀어
거기 누워 있던 그를 가려주며 그의 비열한 목숨을
구했소만, 그것은 조금도 칭찬받을 만한
일이 못 되오. 그대가 나와 경쟁하기를 고집한다면,



78행—97행.

핵토르와 큰 아이아스의 혈투. 존 플렉스만(1755–1826).


우리 그곳으로 돌아갑시다. 그대는 적과 상처와
습관적인 두려움을 도로 불러낸 뒤 내 방패 뒤에
숨어 그 밑에서 나와 겨루도록 하시오!
내가 그를 구해주자 부상 때문에 서 있을 힘도 없던
그는 부상에도 전혀 방해받지 않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도망쳤소. 그곳에는 헥토르가
있었소. 헥토르는 신들을 싸움터로 끌어들였고,
그자가 내 닫는 곳에서는, 오디세우스여,
그대뿐 아니라 용감한 자들도 겁에 질렸소. 그만큼
그자는 공포를 불러일으켰소. 피비린내 나는 살육에
성공하여 기고만장한 그자를 내가 멀리서 엄청나게
무거운 돌덩이를 던져 벌렁 나자빠지게 했소.
그자가 일대일 결투를 요구했을 때 유일하게
그자에게 대항한 것이 나였소.
아키비족(그리스인들)이여, 여러분은 내가 제비에
뽑히기를 기도했고, 여러분의 기도는 이루어졌소.
여러분이 이 결투의 결과를 묻는다면, 나는
그자에게 지지 않았소. 보시오, 트로이인들은
다나이족(그리스인들)의 함대를 향해 칼과
불과 유피테르(제우스)를 날라 왔소.
그때 말재주 좋은 오디세우스는 어디 있었지요?
하지만 나는 여러분의 귀향의 희망인 일천 척의
함선을 내 가슴으로 지켰소. 여러분, 그토록 많은
함선을 지켜준 대가로 이 무구들(죽은 아킬레스의
무구들)을 내게 주시오! 사실을 말해도 된다면,
더 큰 명예를 요구하는 것은 나보다는
이 무구들이오. 그것들의 명예와 내 명예는
불가분의 관계요.
이 무구들이 아이아스를 요구하는 것이지,
아이아스가 이 무구들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오.
이타카인(이오니아 해에 있는 이타카 섬의
군주 오디세우스)더러 나의 이러한 공적에다



97행—124행.

전투 직전에 디오메데스(Diomedes)에게 조언하는 아테나 여신. 알베르 뵐프(1884–1970).


레소스(트로이를 지원하러 온 트라키아의 왕)와,
싸울 줄도 모르는 돌론(트로이군의 정탐자),
포로로 잡힌 프리아모스의 아들 헬레노스와,
훔친 팔라디움(팔라스 여신 아테나의 신상)을
견주라고 하시오! 하지만 낮에 행해지거나,
디오메데스(티테우스의 아들. 아르고스의 왕)와
떨어져 행해진 것은 하나도 없소.
만약 여러분이 그런 싸구려 공적에 이 무구들을
줄 것이라면, 그것들을 나누어 그중 더 큰 몫은
디오메데스에게 주시오! 하지만 언제나
무장하지 않은 채 몰래 일을 하고 방심한 적을
계략으로 속이는 이타카인(오디세우스)에게
이 무구들이 무슨 소용 있겠소?
번쩍이는 황금 투구의 광채는 그의 매복을
노출시키고 숨어 있는 그를 드러낼 뿐이오.
그리고 둘리키움인(오디세우스. 돌리키움은
이타카 섬 가까이에 있는 작은 섬이다)의 정수리는
아킬레스의 투구를 쓰면 그토록 무거운 것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며, 펠리온 산(그리스 텟살리아
지방에 있는 산)에서 베어 온 창 자루는 전쟁도
할 줄 모르는 그의 팔에는 무거운 짐밖에 더 되겠소!
광대한 우주를 새겨넣은 방패(아킬레스 방패)도
도둑질하도록 만들어진 그의 왼팔에는
맞지 않을 것이오. 이 불량배여, 어쩌자고
그대의 힘에 부치는 선물을 구하는 것이오?
아키비 백성이(그리스인들이) 잘못 판단하여
그것이 그대에게 주어진다면, 적이 그로 인해
그대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를 약탈하는
빌미가 될 것이오.가장 비겁한 자여,
도망치는 데는 그대가 모두를 능가하지만 저토록
무거운 짐을 끌고서는 재빨리 도망치지 못할 것이오.
게다가 전장에서 그다지 자주 사용하지 않아
말짱한 그대의 그 방패와는 달리
내 방패는 뚫고 들어오는 창을 받느라 수천 군데나
구멍이 나 있어 새로운 후계자가 필요한 형편이오.
끝으로 (말할 필요가 어디 있소?) 행동으로 각자를
보여줍시다! 용감한 영웅의 무구들을 적군의
한가운데 갖다 놓고 그것들을 찾게 하되
찾아오는 자를 찾아온 것으로 장식하는 것이오!"
텔라몬의 아들(아이아스)이 말을 마쳤다.
그의 마지막 말에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124행—151행.

안티클레이아의 인물관계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이윽고 라에르테스의 아들(오디세우스)인
영웅이 일어서더니 잠시 땅바닥을 내려다보다가
장수들 쪽으로 눈을 들어 그들의 기다림에
말문을 여니, 그가 하는 말은 유창하면서도
세련되기까지 했다.
"펠라스기족(그리스인들)이여, 내 기도와
여러분의 기도가 이루어졌더라면, 이토록
큰 경쟁에서 후계자로 인한 분쟁은 없었을 것이오.
그대는, 아킬레스여, 그대의 무구를 갖고,
우리는 그대를 갖고 있겠지요. 하지만
공정하지 못한 운명이 나와 여러분에게
그를 거절한 마당에" (그러면서 그는 손으로
눈물을 닦는 시늉을 했다.)
"위대한 아킬레스로 하여금 다나이족(그리스인들)을
따라 나서게 한 자(오디세우스)보다 대체 누가
위대한 아킬레스의 후계자로 더 적합하겠소?
저 사람에게는 실제로 그렇기도 하지만 아둔해
보인다는 것이 이득이 되지 않고, 나에게는,
아키비족(그리스인들. 특히 트로이 전쟁에서 싸운
그리스인들)이여, 내 재능이 여러분에게
늘 이익이 되었다는 것이 손해가 되지 않기를!
내게 말재주가 있다면, 지금은
주인을 위해 말하지만 여러분을 위해서도
자주 말했던 나의 이 말재주가 남의 원한을
사지 않기를!! 그리하여 저마다 자기 장기를
거절하지 않기를! 가문과, 선조와, 우리가 몸소
행하지 않은 공적을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자신의 것이라고 보지 않소.
아이아스가 자신은 유피테르의 증손이라 하니
하는 말이지만 사실은 우리 혈통의 창시자도
유피테르이시고, 나도 그분의 증손자요.
내 아버지는 라에르테스이시고, 그분의 아버지는
아르케시오스이시고, 또 그분의 아버지는
유피테르이시기 때문이오.
그분들 중에 죄를 짓고 추방된 자는 없소.
외가 쪽으로 봐도 나는 킬레네 출신의
신(헤르메스)과 통하는 고귀한 집안의 자손이라고
주장할 수 있소. 나의 부모님은 두 분 다
신의 자손들이시오. 하지만 내가 여기 놓여 있는
무구들을 요구하는 것은, 외가 쪽으로 더 고귀한
가문에서 태어났기 때문도 아니고,
내 아버지께서 형제의 피를 보는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오. 그대들은 공적에 따라
이 사건을 판결하시되,



151행—156행.

아킬헤스의 인물관계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텔라몬(아이아스의 아버지)과
펠레우스(아킬레스의 아버지)가 형제였다는
것이 아이아스의 공적이 되게 하지 마시고,
이토록 큰 상을 놓고서는 촌수가 아니라 무공을
따지도록 하시오! 혹은 그대들이 가장 가까운 친척과
첫 번째 상속자를 찾는다면,
펠레우스가 아킬레스의 아버지이시고,
피르루스(‘빨강머리 남자'라는 뜻. 아킬레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의 별명)가 그의 아들이올시다.
어디 아이아스가 끼어들 자리가 있겠소?
이 무구들을 프티아(텟살리아 지방의 소도시로
아킬레스의 고향)나



157행—172행.

스키로스 섬에서 오디세우스에게 발견되는 아킬레스. 138 cm x 190 cm. 게라르트 데 라이레세(1641–1771).


스키로스(그리스 에게 해 에우보이아 섬의
북동쪽에 있는 섬.
어머니의 뜻에 따라 전쟁에 나가지 않으려고
여장을 하고 그곳에 숨어 지내던 아킬레스를
오디세우스가 찾아낸다. 그곳에 있는 동안
아킬레스는 데이다메이아 공주를 사랑하게 되어
아들 네오프톨레모스를 얻는다)로 보내시오!
테우케르(뛰어난 명궁 테우케르는 텔라몬과
헤시오네의 아들로 아이아스의 이복동생이다)도
그에 못지않게 아킬레스의 사촌이오.
한데 테우케르가 이 무구들을 요구합디까?
그가 요구한다고 얻겠습니까? 그래서 이 경쟁에는
순전히 공적만이 문제가 될 것인즉, 나는 이 자리에서
당장 열거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공적을 올렸소,
나는 그것들을 순서대로 하나씩 말해보겠소.
아킬레스의 어머니인 네레우스(바다의 신)의
딸(테티스)은 아들이 죽을 것임(아킬레스는
헥토르를 죽인 뒤 저도 죽을 운명을 타고났다)을
미리 알고는 그를 여자처럼 차려입혔는데,
이러한 변장술에 아이아스를 비롯하여 모두가
속아 넘어갔소. 한데 나는 여인들이 쓰는 물건들
사이에 남자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무구들을
끼워 넣었소. 영웅이 여자처럼 차려입은 채
손에 방패와 창을 들었을 때 나는 그에게 말했소.
'여신의 아들이여, 페르가마(트로이의 성채)가
함락되기 위해 그대를 기다리고 있소.
(트로이야는 아킬레스가 참전하지 않으면
함락되지 않게 되어 있었다)
어째서 그대는 거대한 트로이를 전복하기를
망설이시오?' 이렇게 나는 손을 써서 용감한
영웅을 용감한 행동으로 내몰았소.
따라서 그의 공적은 나의 공적이오. 싸움을
걸어오던 텔레푸스(소아시아 미시아 지방의
왕)를 창으로 제압하고, 나는 싸움에 져서 애걸하던
그를 치료해주었소. 테베(여기서 테베는
보이오티아 지방의 수도가 아니라, 소아시아
미시아 지방에 있는 도시를 말한다)가 함락된 것도
나의 공적이오.



173행—180행.

호메로스 시대(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의 지도. 소아시아에 있는 테베(Thebe). 레스보스(Lesbos) 섬. 테네도스(Tenedos) 섬. 미시아(Mysia) 지방. 리르네수스(Lyrnessus). 에게 해의 에우보이아(Euboea) 섬과 그 맞은편의 아울리스(Aulis) 항.


여러분은
레스보스(소아시아 아이올리스 지방 앞바다에
있는 섬)와, 테네도스(소아시아 트로아스
지방의 앞바다에 있는 섬)와, 아폴로의 도시인
크리세(소아시아 미시아 지방의 도시)와
킬라(소아시아 트로아스 지방의 도시)와
스키루스(여기서 스키루스는 소아시아 프리기아
지방의 도시이다)를 함락한 것은 나였다고
믿어주시오! 여러분은
리르네수스(트로아스 지방의 소도시)의 성벽이
오직 내 손에 흔들려 땅에 넘어졌다고 여기시오!
다른 사람들에 관해서는 말할 것도 없이,
사나운 헥토르를 죽일 수 있었던 전사(아킬래스)를
여러분에게 준 것은 바로 나였소.
저 유명한 헥토르가 누워 있는 것은 내 덕분이오.
아킬레스를 찾을 수 있게 해준 그 무구들 대신
나는 여기 이 무구들을 요구하는 것이며,
산 사람에게 준 것을 사후에 돌려달라는 것이오.



181–192행.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스파르타에서 트로이로 납치해 가는 파리스. 이 사건이 10여 년간의 트로이 전쟁의 발단이 되었다. 150 cm x 222 cm. 후안 데 라 코르테(1585–1662).


한 사람(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슬픔(아내 헬레네를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빼앗긴 슬픔)이
온 다나이족(그리스인들)에게 미쳐 일천 척의
함선이 에우보이아 섬(에게 해에 있는
그리스에서 크레테 섬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섬)
맞은편의 아울리스 항(그리스 보이오티아 지방의
항구로 트로이야 전쟁 때 그리스 연합 함대는
트로이로 출항 하기 전에 이곳에 집결했다)을
가득 메웠을 때, 함대를 위해 학수고대하던
바람은 전혀 불지 않거나 불어도 역풍만 불어왔소.
그때 가혹한 신탁이
아가멤논(미케네의 왕으로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에게 명령하기를, 죄 없는
딸(이피게네이아)을 무자비한 디아나(아르테미스)
여신에게 제물로 바치라고 했소.
아버지(아가멤논)는 이를 거절하며 신들을 향해
화를 냈고, 왕인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로서의
정을 품고 있었소. 이때 아버지의 상냥한 마음을
설득하여 모두에게 이로운 길로 돌아서게 한 것도
바로 나였소.
<이렇게 고백하는 나를 아트레우스의
아들(아가멤논)은 용서하시오. 고백컨대>
재판관인 아가멤논이 내게 편견을 갖고 있었던 만큼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사건이었소. 하지만 백성의
이익과, 아우(아가멤논의 아우 메넬라오스)의 명예와,
아가멤논에게 부여된 최고사령관 직책이 명예와
피를 저울질해보도록 그를 움직였소.



192행—215행.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인물관계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그래서 내가 어머니(이피게네이아의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보내졌는데,
그녀는 권유해서 될 여자가 아닌지라 꾀로
속이지 않으면 안 되었소.
(그녀는 이피게니아가 아킬레스와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말에 속아 넘어갔던 것이다.)
텔라몬의 아들(아이아스)이 그녀에게 갔더라면
우리의 돛은 지금까지도 바람을 안지 못했을 것이오.
나는 또 대담한 사절로서 일리온(트로이)의
성채에 파견되어 높다란 트로이의 원로원을
방문하여 그 안으로 들어간 적이 있소.
그곳은 전사들로 가득차 있었소. 나는 겁내지 않고
그라이키아(그리스)가 공동으로 내게 맡긴 일을
대변했고, 파리스를 고발하며 헬레네와 그녀가
가져간 것을 되돌려달라고 요구하여
프리아모스(파리스의 아버지)와 그의 곁에 있던
안테노르의 마음을 움직였소.
하지만 파리스와 그의 형제들과 그와 함께
도둑질한 자들은 내게서 마지못해 불의의 손을 뗐소.
(메넬라오스여, 그대도 알고 있소.)
그것이 내가 그대(메넬라오스)와 함께한 수많은
위험 중 첫 번째 위험이었소. 여러분의 이익을 위해
기나긴 전쟁 기간 동안 내가 지략과 손으로 행한
일들을 일일이 다 이야기하자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오. 처음에 몇 차례 교전이 있은 다음,
적군은 오랫동안 도시의 성벽 안에 틀어박혀 있었고
우리는 공개적으로 싸울 기회조차 없었소.
그러다가 마침내 십 년째 되는 해에 우리는 싸웠소.
그사이 할 줄아는 것이라고는 싸움밖에 없는
그대(아이아스)는 무엇을 하고 있었소?
그대는 무슨 쓸모가 있었소?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그대가 묻는다면, 나는 적군을 잡으려고
매복하고, 방벽에 해자(성벽 주위에 둘러 판 못)를
두르고, 지루하고 긴 전쟁을 편안한 마음으로
참고 견디도록 전우들을 격려하고, 우리가 군량과
무구를 공급받을 방법을 가르쳐주었으며, 필요한
곳에 사절로 가곤 했소.



216행—242행.

아가멤논은 제우스가 거짓 꿈을 보내 트로이를 함락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자 그 말을 믿고 트로이를 공격하기로 작정하고는 군사들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일부러 철군하자고 제안한다. 배경에는 그리스 군과 함께 오디세우스가 있다. 크리스핀 반 데 파스(1564–1637).


보시오, 유피테르(제우스)의 명령으로
꿈의 환영에 속아 왕(아가멤논)은 우리더러
이미 시작한 전쟁의 근심을 털어버리라고 명령했소.
왕은 그 출처를 밝힘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옹호할 수 있었소. 그때 아이아스는 그것을
제지했어야 했을 것이며, 페르가마(트로이의
성채)를 파괴하자고 요구하며 싸웠어야 했소.
그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왜 그는 귀향하려는 자들을 붙잡지 않았지요?
왜 무기를 들고는, 우왕좌왕하는 무리에게
자기를 따르라고 하지 않았지요?
그것은 입만 벙긋해도 큰소리치는 그에게는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니었소. 한데 그 자신도
도망을 쳤소. 아이아스 그대가 등을 돌리고
창피하게도 돛을 펼칠 채비를 했을 때,
나는 그것을 보았고, 심히 보기가 민망했소.
나는 지체없이 말했소.
'여러분, 이게 무슨 짓이오? 전우들이여, 그대들은
무슨 광기의 사주를 받아 다 함락된 트로이를
버리려 하시오? 그대들은 십 년 만에 치욕 말고
무엇을 집으로 가져가고 있지요?' 이런 말과
그 밖에 괴로움이 불어넣어주는 다른 말로 나는
그들을 돌려세워, 도망칠 채비를 하고 있던
함대에서 도로 데리고 갔소.
그때 아트레우스의 아들(그리스 동맹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아직도 겁에 질려 있던 전우들을
소집했소.
(회의를 소집한 것은 아가멤논이 아니라 그의
권위를 빌린 오디세우스였다) 그때도 텔라몬의
아들(아이아스)은 감히 단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했소.
테르시테스(테르시테스는 그리스군에서 가장
못생긴 험담가로 회의장에서 아가멤논을
비난하다가 오디세우스에게 매를 맞는다) 조차도
감히 파렴치한 말로 왕들에게 대들었는데 말이오.
물론 그러다가 나에게 벌받기는 했지만 말이오.
나는 일어서서, 적군을 공격하도록 겁에 질린
전우들을 격려했고, 그들의 잃어버린 용기를
내 말로 되찾아주었소. 그때 이후로,
저기 저 나의 경쟁자(아이아스)가 어떤 용감한
행동을 행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은 내 것이오.
등을 보인 그를 도로 끌고 온 사람이 나였으니까요.
끝으로 다나이족(그리스인들) 가운데 그대를
칭찬하거나 함께하기를 원하는 이가 있나요?
티데우스의 아들(디오메데스)은
자신이 행하는 모든 행동을 나와 함께 행하고,
나를 인정하고, 전우로서의 오디세우스를 언제나
믿음직하게 여기고 있소. 그토록 많은
그라이키아(그리스) 군사 중에서 유일하게
디오메데스에 의해 선택된다는 것은 상당한 것이오.



242행—249행.

트로이의 정탐꾼 돌론(Dolon). 기원전 460년경. 도자기 그림.


그리고 나더러 가라고 명령한 것은 제비뽑기가
아니었소, 나는 밤과 적군의 위험을 무시하고 가서
우리와 똑같은 일을 감행하러 오던 프리기아인
돌론(트로이군의 정탐꾼. 정탐이 성공할 경우
아킬레스의 말들을 받기로 하고 밤에 그리스군
진영을 정탐하러 가다가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에게 붙잡혀 기밀만 누설하고 살해된다)을
죽였소만, 그자가 알고 있던 것을 다 털어놓도록
강요하여, 믿지 못할 트로이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알아내기 전에는 죽이지 않았소. 나는 모든 것을
알아냈고, 더이상은 정탐할 것이 없었소.
그래서 나는 이제 약속된 명성을 얻고 돌아올 수
있었소. 나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249행—254행.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는 레소스가 지원군을 이끌고 트로이에 도착하던 날에 야습울 감행하여 그를 죽이고 그의 말들을 그리스군 진영으로 끌고 간다. 알프레드 존 처치(1829–1912).


레소스(트라키아 왕으로 그의 말들이 크산투스
강물을 마시면 트로이아는 함락되지 않는다는
신탁을 받는다)의 막사를 찾아가 바로
그의 진영 안에서 그와 그의 시종들을 죽였소.
그리하여 나는 소원을 다 이루고 승리자로서
빼앗은 전차를 타고는 신나는 개선 행렬을 흉내내며
돌아왔소. 돌론은 자신의 밤일에 대한 대가로
아킬레스의 말들을 요구했거늘 여러분이
내게 아킬레스의 무구를 거절한다면,
아이아스가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될 것이오.



255행—272행.

제우스의 아들 사르페돈의 시신을 리키아로 옮기는 죽음의 신 타나토스와 그의 아우인 잠의 신 솜누스/힙노스. “죽음의 아우인 잠(일리아스 제14권)“


내가 리키아인 사르페돈(리키아인들의 장수로
제우스와 에우로파의 아들이다.
그는 트로이 전쟁 때 파트로클로스의 손에 죽는다)
대열을 내 칼로 도륙한 일을 굳이 이야기해야 하겠소?
피비린내 나는 전투 중에 나는 이피투스의 아들
코이라노스와, 알라스토르와, 크로미우스와,
알칸데르와, 할리우스와, 노에몬과, 프뤼타니스를
땅에 뉘었고, 케르시다마스와, 토온과, 카롭스와,
무자비한 운명이 몰고 온 엔노무스를 죽음에
넘겨주었소. 덜 유명한 그 밖의 다른 자도 도시의
성벽 밑에서 내 손에 쓰러졌소. 전우들이여,
나도 몇 군데 부상을 당했소만, 자랑스러운 곳에
부상 당했소. 여러분은 공허한 말만 믿지 말고 자,
보시오!"라고 하더니 오디세우스는 손으로
옷을 열어젖히며 말했다.
"여기 이 가슴은 언제나 여러분을 위해 고통
받았소이다! 하지만 텔라몬의 아들(아이아스)은
그 긴긴 세월 동안 전우들을 위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고, 그의 몸에는 상처라고는 없소이다.
(아이아스는 『일리아스」에서는 실제로
부상 당한 적이 없다.)
그리고 그가 자신은 펠라스기족(그리스인들)의
함대를 위해 트로인들과 유피테르에 대항해
무기를 들었다고 말한다면,
그게 무에 그리 대단한 일이지요?
나도 그가 그랬다고 인정하오. 나는 선행을
악의적으로 폄하하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는 여러 사람의 것을 혼자 차지하지 말고
여러분에게도 약간의 명예를 나눠줘야 할 것이오.



273행—278행.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킬레스의 여인 브리세이스(왼쩍 여자)와 아킬레스. 아킬레스의 분노는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그를 죽인 트로이의 제일의 맹장 헥토르를 죽인다. 227 cm x 391 cm. 개빈 해밀턴(1723–1798).


내버려두었더라면 그 방어자들과 함께 불타버렸을
함선들로부터 트로이인들을 몰아낸 것은
안전하게 아킬레스로 변장한, 악토르의
아들(파트로클로스)이었소. 그(아이아스)는
자기 혼자만 감히 헥토르의 창에 맞섰다고 믿고
있으며, 왕도 다른 장수들도 그리고 나도 잊고 있소.
하지만 그는 아홉 번째(아이아스는 헥토르의
결투 신청에 응하겠다고 자원한 그리스의
아홉 장수 중 한 명이지 '아홉 번째'는 아니었다)
지원자였고, 제비뽑기에 의해 선호되었던 것뿐이오.


[참고.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파트로클로스의 시신 위에 엎드려 우는 아킬레스의 여인 브리세이스. 1805. 프란시스 잉글허트(1741-1825)


호메로스 <일리아스> 19권. 280행—302행.

한편 황금의 아프로디테와도 같은
브리세이스는 <브리세이스는 원래 미네스 왕의
아내였는데, 아킬레우스가 트로이로 가던 중
미네스 왕의 도시 리르네소스를 약탈했을 때
전리품으로 데려와 자기 첩으로 삼았다. 이때
아킬레우스는 그녀의 가족과 남편을 모두 죽였다.>
파트로클로스(아킬레우스와는 친척 지간이자
절친한 친구)가 날카로운 청동에 찢긴 것을 보자
그 옆에 쓰러져 목놓아 울며 두 손으로 가슴이며
부드러운 목이며 고운 얼굴을 쥐어뜯었다.
여신과도 같은 그 여인은 울면서 말했다.
"파트로클로스 님, 가련한 내 마음에 누구보다도
소중하던 분이여! 내가 이 막사를 떠날 때
그대 살아 있었건만 이제 다시 돌아와 보니,
백성들의 지배자여! 그대는 벌써 죽어 있네요.
이렇듯 내게는 불행에 불행이 겹치는군요.
나는 아버지와 존경스러운 어머니께서 내게
주신 남편이 우리 도시 앞에서 날카로운 청동에
찢기는 것을 보았고, 같은 어머니께서 낳아주신
사랑하는 세 오라비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들도 모두 파멸의 날을 맞았지요.
하지만 그대는 날랜 아킬레우스가 내 남편을
죽이고 신과 같은 미네스의 도시를 함락했을 때
나를 울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나를 신과 같은
아킬레우스의 결혼한 아내로 만들고 또 나를
그대들의 함선들에 태워 프티아로 데려가
미르미도네스족(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우스가
이끄는 부대의 이름) 사이에서 결혼식을
올려주겠노라 약속했지요. 늘 친절한 그대였기에,
나는 그대의 죽음이 한없이 슬퍼요."
이렇게 그녀가 울면서 말하자 다른 여인들도
따라서 비탄했으니 그들은 파트로클로스를
앞세워 저마다 신세 타령을 한 것이다.



278행—287행.

헥토르(Hektor)와 아이아스는 결투를 그만두고 서로 선물을 교환한다. 안드레아 알치아티(1492–1550).


한데, 가장 용감한 자여, 그대들의 결투의 결과는
어떠했지요? 헥토르는 상처 하나 없이(헥토르는
아이아스의 창에 목을 다쳤고, 아이아스가 던진
돌덩이에 맞아 뒤로 넘어지기도 했다. 그들은
전령들의 제지로 결투를 그만두고 서로 선물을
교환한 다음 헤어졌다) 떠나가버렸소.
아아, 슬프도다! 그라이키아인들(그리스인들)의
보루였던 아킬레스가 쓰러지던 때를 회고하자니
얼마나 괴로운지 모르겠소!
눈물과 슬픔과 두려움에도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의 시신을 땅에서 들어올렸소. 이 어깨 위에,
그렇소, 이 어깨 위에 나는 아킬레스의 시신을
그의 무구들과 함께 둘러메고 왔소.
(서사시권 서사시 『아이티오피스」 에 따르면
아이아스가 아킬레스의 시신을 어깨에 메고 운반하고
오디세우스는는 뒤에서 엄호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 무구들을 입으려고
애쓰는 것이오. 내게는 그 무구들의 무게를 능히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있고, 여러분이 내게
주실 명예를 평가할 수 있는 마음이 있소이다.



288행—312행.

아킬레스의 어머니 테티스의 부탁을 받고서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어준 아킬레스의 방패. 니콜라 브뢰겔(1668–1737).


검푸른 바다의 여신인 그(아킬레스)의
어머니(테티스)가 자기 아들을 위해 그토록
공명심을 품었던 것은, 그러한 하늘의 선물을,
그토록 위대한 예술품을 저 무식하고 멍청한
병사가 입게 하려는 것이었을까요?
그는 방패(헤파이스토스가 새겨놓은 아킬레스의
방패)에 새겨놓은 돋을새김을 알지 못하오.
오케아노스(대양)와, 여러 나라와, 별이 총총한
높은 하늘과, 플레이아데스 성단과, 히아데스
성단과, 바닷물에 감지 않는 큰곰자리와,
여러 도시와, 오리온의 번쩍이는 칼을
알지 못한단 말이오.그는 알지도 못하는
무구들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소.
어째서 그는 내가 가혹한 전쟁의 의무를
기피하려다가 전쟁이 시작된 뒤에야 왔다고
나를 나무라는 것이오? 그는 자신이
고매한 아킬레스를 비방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가? 그대가 위장한 것을
죄라고 한다면 우리는 둘다 위장했소이다.
지체한 것이 죄라면 그보다는 내가 좀 빨리 왔소.
나는 사랑하는 아내가, 아킬레스는 사랑하는
어머니(바다의 여신 테티스)가 만류했소이다.
전쟁의 첫 시간을 우리는 그들에게 바쳤으나
나머지 시간은 여러분에게 바쳤소이다.
설령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더라도 그토록 위대한
영웅(아킬래스)과 함께한 죄라면 회피하지 않겠소.
하지만 아킬레스는 오디세우스의 기지에 의해
발각되었어도, 오디세우스는 아이아스의
기지에 의해 발각되지는 않았소. 우리는
아이아스가 어리석은 혀로 나에게 욕설을
퍼붓는다고 해서 놀랄 필요는 없을 것이오.
아이아스는 여러분도 부끄러운 짓을 했다고
비난하고 있으니까요.
(오디세우스는 아이아스를 자꾸 고립시키려
하고 있다.)
내가 팔라메데스를 날조된 죄로 고소한 것이
비열한 짓이었다면, 여러분이 그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것은 자랑거리이겠소?
나우플리우스의 아들(팔라메데스)은 그토록
크고 그토록 명백한 범죄를 정당화할 수 없었고,
여러분은 그에 대한 고소를 듣기만 한 것이 아니라
보았소이다. 그가 뇌물을 받은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으니까요.


[참고. 플레이아데스 성단. 히아데스 성단]

황소자리(♉ Taurus 타우루스). ‘우라니아(천문의 여신)의 거울‘ 17번 별자리 카드. 황도 12궁에서 두 번째 점성술의 별자리이다.


황소자리 어깨 부분의 플레이아데스(Pleiades)
성단은 아틀라스와 플레이오네의 일곱 딸들로
사냥꾼 오리온에게 쫓기다가 제우스에 의해 하늘로
옮겨져 성단(별들의 집단)이 되었다고 한다.
황소자리 머리 부분의 히아데스(Hyades) 성단은
아틀라스의 또 다른 다섯 딸들로 그녀들의 남자 형제
히아스가 사냥 중 죽었고 이에 슬프게 흐느끼던
히아데스는 하늘로 올라가 별들로 바뀌었다. 이후
이들은 비와 연결되었다. 히아데스는
플레이아데스의 이복자매들이었다.


[참고. 큰곰자리]

암곰으로 변한 칼리스토와 그녀의 아들 아르카스. 헨드리크 골치우스(1558–1617).


그리스 아르카디아 지방의 요정 또는
공주였던 칼리스토는 어느 날 제우스에게
겁탈당하여 아르카스(그리스 아르카디아 지방은
아르카스에서 따왔다)라는 아들을 낳은 뒤 질투심
많은  헤라(제우스의 정실 부인)에의해  암곰으로
변한다. 아르카스가 어느 날 전에 칼리스토였던
암곰을 만나 그것이 어머니인 줄 모르고 죽이려
하자, 제우스가 이들 모자를 불쌍히 여겨
하늘로 불러올린 뒤 아들은
아르크토필락스(‘곰의 감시자’)라고도 불리는
작은곰자리(Ursa Minor)가 되게 하고,
어머니는 큰곰자리가(Ursa Major)가
되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헤라는
오케아노스(대양의 신이자 대양)에게
부탁하여 이들 모자만은 바닷물에서 목욕하지
못하게 한 까닭에 이 별들은 바닷물에 지는 일이
없다.



[참고. 오리온자리]

칼을 차고 있는 오리온자리. ‘우라니아(천문의 여신)의 거울’ 29번 별자리 카드.




313행—335행.

10년의 세월을 홀로 렘노스 섬에서 지내는 필록테테스(Philoctetes). 기욤 기용 레띠에르(1760–1832).


포이아스의 아들(필록테테스)을
헤파이스토스의 섬인 렘노스(헤파이스토스가
자주 찾던 섬)가 붙들고 있는 것을 내 죄라고
해서는 안될 것이오.
(여러분의 행위는 여러분이 변호하시오!
여러분이 동의했으니까요.) 나는 그에게 전쟁과
여행의 노고에서 물러나 심한 고통을 휴식으로
진정시켜보라고 설득했음을 부인하지 않겠소.
(악취와 끔찍한 비명소리 때문에 그리스군은
필록테테스를 강제로 렘노스 섬에 하선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복종했고 그래서 살아 있소. 나의 이 조언은
진솔했을 뿐 아니라 성공적이었소.
진솔한 것만으로도 충분했겠지만 말이오.
한데 우리의 예언자(헬레네스)는
페르가마(트로이의 성채)를 함락하자면
그(필록테테스)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소.
그 일은 내게 맡기지 마시오.
텔라몬의 아들(아이아스)이 가는 게 낫겠소.
그는 병과 원한으로 미쳐 날뛰는 영웅을 웅변으로
달래거나, 노련하게도 그 밖의 다른 재주로
도로 데리고 올 테니 말이오. 하지만 나의
이 가슴이 여러분을 위해 일하기를 멈추는데,
멍청한 아이아스의 재주가
다나이족(그리스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오. 그러기 전에
시모이스(트로이 근처의 강) 강이 역류하고,
이다 산(트로이 근처의 산)이 나뭇잎을 벗고
서 있고, 아카이아(펠로폰네소스 반도 북부 해안
지방으로, 흔히 여기서처럼 그리스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가 트로이에 원군을 약속할
것이오. 완고한 필록테테스여, 그대가 전우들과
왕과 나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 하더라도, 그대가
내 머리 위에 끝없이 저주를 퍼붓고,
고통 받고 있는 그대의 손아귀에 우연히
내가 들어 그대가 내 피를 마시기를
바란다 하더라도, 그리고 내가 그대에게 했듯이
그대가 나에게 할 수 있는 수단을 갖기를 바란다
하더라도, 나는 그대에게 다가가 그대를 데려오려고
노력할 것이며, 그대의 화살들(헤라클레스에게
받은 화살들)을 - 포르투나(행운의 여신)께서
호의를 베풀어주시기를!- 손에 넣을 것이오.



335행—350행.

헬레노스의 인물관계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내가 다르다누스(트로이 왕가의 시조로,
여기서 '다르다누스'는 '트로이' 라는 뜻이다)의
예언자(헬레노스)를 사로잡아 손에 넣었듯이,
내가 신들의 신탁과 트로이의 운명을 알아냈듯이,
(필록테테스가 갖고 있는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들 없이는 트로이야가 함락되지 않을 것
이라는 신탁을 말한다.) 내가 적의 한복판에서
성소에 모셔놓은 프리기아(소아시아에 있는
지방)의 미네르바(아테나 여신)의 신상을
빼돌렸듯이 말이오. 아이아스가 나와
겨루겠다는거요? 운명은 그 신상 없이는
트로이가 함락될 수 없다고 했소.
그때 용감한 아이아스는 어디 있었소?
위대한 영웅의 호언장담은 어디 있었소?
왜 그때 그대는 두려워했지요?
왜 오디세우스는 감히 파수병들 사이를 통과하여
밤에다 자신을 맡기고는 무자비한 칼들 사이를
지나 트로이인들의 성벽뿐 아니라 성채
꼭대기까지 들어가서는 여신을 신전에서
빼돌린 다음 빼돌린 신상을 적군 사이로 해서
가져왔지요? 내가 그러지 않았다면
텔라몬의 아들(아이아스)은 일곱 겹의 쇠가죽
방패를 왼손에 헛되이 들고 다녔을 것이오.
그날 밤 나는 트로이에게서 승리를 쟁취했소.
페르가마(트로이의 성채)가 지도록 만든 그때
나는 트로이를 이겼던 것이오.
그대는 얼굴을 찌푸리고 중얼거리며 우리에게



350행—358행.

작읔 아이아스의 인물관계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티데우스의 아들(디오메데스)을 상기시키기를
그만두시오! 그도 그 공적에 나름대로 한몫했지요.
그대도 전우들의 함대를 위해 방패를 들고
있었을 때 혼자가 아니었소. 그대 주위에는
전우들 무리가 있었으나,
나에게는 한 사람밖에 없었소. 싸우는 자가
지혜로운 자만 못하고, 제압할 수 없는 오른손에게만
상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디오메데스도 이 무구들을 요구했을 것이오.
더 겸손한 다른 아이아스(오일레우스의 아들
작은 아이아스)와, 용맹스러운 에우리필루스와,
유명한 안드라이몬의 아들(토아스, 그와 여기서
언급되는 다른 사람들은 헥토르의 결투 도전에
자원한 장수들이다)도 요구했을 것이며,
그에 못지않게 이도메네우스와, 그와 동향인인
메리오네스와,



359행—369행.

메넬라오스의 인물관계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아트레우스의
맏아들(아가멤논)의 아우(메넬라오스)도
요구했을 것이오.
하지만 그들은 손이 강하고 전투에서 나만 못하지
않지만 내 지혜에 양보했소이다. 그대(아이아스)의
오른손은 전쟁에서 그대에게 유용하지만
지혜에 관한 한 그대에게는 내 지도가 필요하오.
그대는 힘은 있으되 지혜가 없고, 나는 미래사에
관심이 있소. 그대는 싸울 수 있으나,
아트레우스의 아들은 나와 더불어 싸울 때를
선택하오. 그대는 몸으로 도움을 주지만
나는 정신으로 도움을 주오.
키잡이가 노젓는 자보다 더 위대하고,
장수가 졸병보다 더 위대한 만큼 나는 그대보다
더 우월하오. 우리 몸에서는 가슴(지성)이 손보다
더 유능하고, 우리의 모든 힘은 거기 있기 때문이오.


370행—386행.

아킬레스의 무구를 두고 다투는 큰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 아고스티노 마수치(1691–1758).


장수들이여, 여러분은 여러분의 파수꾼에게
상을 주십시오! 그토록 여러 해 동안 여러분을 위해
노심초사한 보답으로, 나의 모든 봉사를 보상한다는
뜻에서 이 명예를 내게 주십시오! 이제 내 임무는
끝났소이다. 나는 운명의 장애물들을 제거했고,
높다란 페르가마(트로이의 성채)를 함락될 수 있게
함으로써 그것을 함락했소이다.
이제 우리 모두의 희망에 걸고, 곧 함락될
트로이인들의 성벽에 걸고, 얼마 전에 우리가
적군에게서 빼앗아온 신들에 걸고, 그리고
아직도 지혜롭게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면
그것에 걸고 부탁하노니, 만약 아직도 위험천만한
곳에서 대담하게 무엇을 구해 와야 한다면,
만약 아직도 트로이의 파멸에 무엇이 부족하다고
여기신다면, 여러분은 나를 기억하시오!
여러분이 이 무구들을 내게 주시지 않는다면
여기에다 바치십시오!" 그러면서 그는 숙명적인
여신상을 가리켰다.
장수들의 집단은 감동했다. 결과는 달변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명백히 보여주었다.
용감한 영웅(아킬레스)의 무구들은 말 잘하는 자가
가져갔던 것이다. 그토록 자주 혼자서 헥토르에게
대항하고, 칼과 불과 유피테르에 대항하던 자도
분노라는 단 한 가지에게만은 대항하지 못했으니,
아무도 이기지 못하던 영웅을 괴로움이 이겼던
것이다.



386행—394행.

큰 아이아스의 자살. 왼쪽부터 디오메데스, 큰 아이아스, 오디세우스(그의 짧은 키는 잘 알려진 특징이다). 기원전 800년—기원전 480년경. 도자기 그림.


아이아스는 칼을 빼들고는 말했다.
"여기 이것은 확실히 내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이것도 내놓으라고 요구할까? 이것은
내가 나를 위해 써야겠다. 프리기아인들의 피에
자주 젖곤 하던 이 칼은 이제 제 임자의 피에
젖으리라. 아이아스 외에는 아무도 아이아스를
이길 수 없도록 말이다." 그러더니 그는 그때까지
부상 당한 적이 없는 가슴에, 칼이 들어갈 수 있는
곳에다 죽음의 칼을 찔러 넣었다.
어떤 손도 깊이 박힌 무기를 뽑아낼 수 있을 만큼
강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피가 그것을 밀어냈다.



394행—398행.

태양의 신 아폴론과 히아킨토스(Hyakintos). 오귀스탱 드 생 오뱅(1736–1807).


피로 빨갛게 물든
대지가 초록빛 잔디밭에서, 전에 오이발루스의
자손(히아킨토스)의 상처에서 태어났던 자줏빛
꽃 한 송이를 피어나게 했다. 그 꽃잎 한가운데에는
영웅(태양의 신 아폴론)과
소년(히아킨토스)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글자(아이 아이 AI AI. 이것은 아이아스의
이름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곡할 때 내는
그리스어에 해당한다)가 새겨져 있었는데,
여기서는 이름을 나타내고,
거기서는 곡하는 소리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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