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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품과 함께 읽는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1권. 대홍수 때 유일한 생존자 데우칼리온(Deucalion)과 피르라(Pyrr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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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홍수 때 유일한 생존자 데우칼리온과 피르라. 폴 머워트(1855–1902).

 



313행—329행.

조각배에 의지한 데우칼리온과 피르라. 1385.


포키스(파르나소스 산이 있는 지역)는
아오니아(보이오티아 지방의 일부로 그곳에 헬리콘
산이 있다)인들을 오이테(그리스 테살리아 지방과
아이톨리아 지방 사이에 있는 산맥)의 들판에서
갈라놓는데, 육지였을 적에는 비옥한 땅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곳(포키스 지방)은 바다의 일부로서
갑작스레 불어난 물의 한복판이 되었다. 그곳에는
어떤 산(파르나소스 산)의 가파른 두 봉우리가
하늘을 향해 뻗어  있고 그 꼭대기는
구름을 찌르고 있는데, 그 이름은
파르나소스(그리스 포키스 지방에 있는, 아폴로와
무사 여신들의 성지로 높이 2,457미터의 산)이다.
데우칼리온(프로메테우스의 아들)이 아내(퓌르라,
프로메테우스의 동생인 에피메테우스의 딸로
데우칼리온과 퓌르라는 사촌간이다)와 함께
조각배에 의지한 채 이곳에 닿자마자 (다른 곳은
모두 바닷물에 덮였기 때문이다.) 한 일은
우선 코리키움(파르나소스 산에 있는 동굴) 동굴의
요정(妖精 아리땁고 맑은 초자연적인 존재)들과
산신들, 당시 신탁소(파르나소스 산 남쪽 비탈에
자리 잡은 델피에 있는 신탁소)를 차지하고 있던,
운명을 예언하는 테미스(제우스의 고모이자
두 번째 아내) 여신에게 경배한 것이다. 당시에는
그(데우칼리온)보다 선하고, 그보다 더 정의를 사랑하는 남자는 아무도 없었고,

그녀(피르라 또는 피라)보다
더 신을 경외하는 여인은 아무도 없었다.
유피테르(제우스)가 보니, 세상은 물이 흐르지
않은 채 고여 있는 늪이었다. 그토록 많던 남자
가운데 단 한 명(데우칼리온)만 살아남고, 그토록
많은 여자 가운데 단 한 명(피라)만 설아남았는데
둘 다 죄가 없고 둘 다 신을 공경하는지라
유피테르는 구름을 갈라놓고, 북풍(북풍의 신
보레아스)이 비구름을 몰아내게 하여 하늘에서는
대지를, 대지에서는 하늘을 볼 수 있게 했다.



[참고]

고대 중앙그리스 지역.


보이오티아(BOEOTIA) 지방과
오이테 산(Mt. Oeta)의 들판을 갈라놓는
포키스(PHOCIC) 지방. 포키스 지방의
파르나소스 산(Mt. Pamassos).



[참고. 파르나소스 산]

북쪽에서 본 포키스(PHOCIS) 지방의 파르나소스 산(Mt. Parnassos)의 두 봉우리.




330행—353행.

포세이돈과 물의 요정 암피트리테의 아들 트리톤(Triton). 야코프 데 헤인(1596–1641).


바다의 노여움은 더는 지속되지 않았으니, 바다의
지배자(포세이돈, 넵투누스)가 삼지창을 내려놓고
파도를 달랬던 것이다. 바다의 지배자는 검푸른
트리톤(포세이돈과 암피트리테의 아들)을 불렀고,
어깨에 조개가 붙어 있는 트리톤이
깊은 바다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잘 울리는 고동을
불어 그 신호로 파도들과 강물들을 불러들이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트리톤이 속이 빈 고동을 집어
들었다. 바닥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넓은 나선형으로
벌어진 그 고동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입김을
빨아들이면 해 뜨는 쪽과 해 지는 쪽의 해안에
그 소리가 가득찬다. 그때도 고동은 젖은 수염에서
물이 뚝뚝 듣는 신(트리톤)의 입술에 닿아,
명령받은 대로 물러나라고 크게 울어댔다.
육지와 바다의 모든 물이 소리를 들었고,
그것을 들은 물은 모두 되돌아갔다.
어느새 바다에는 해안이 드러나고 강은
본래의 강바닥을 따라 강둑 가득 흘러갔다. 홍수가
잡히면서 언덕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땅바닥이
일어섰고 물이 줄어드는 만큼 땅은 늘어났다.
그러고 나서 오랫동안 묻혀 있던 숲이 우듬지를
드러냈는데 그 잎에는 아직도 진흙이 남아 있었다.
세상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데우칼리온은
세상이 비어 있고 황량한 대지가 깊은 적막에 싸여
있는 것을 보자 눈물을 흘리며 아내(퓌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누이(사촌 누이이자 아내인 퓌라)여,
아내여, 지상에 남은 유일한 여인이여, 처음에는
가족의 인연과 혈연이 그대를 내게 묶더니 다음에는  
혼인이 묶었고, 이제 위험이 우리를 묶는구려.


354행—379행.

테미스 여신에게 온 데우칼리온과 퓌르라. 1636.


지는 해와 뜨는 해가 비치는 모든 나라의 주민이라곤
우리 두 사람뿐이오. 나머지는 바다가 차지했소.
아직도 나는 우리가 살아남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으며, 구름만 보아도 겁이 난다오. 가련한
여인이여, 나 없이 그대 홀로 살아남는 것이 운명의
뜻이었더라면, 지금 그대의 심정이 어떠했겠소?
그대 혼자서 어떻게 두려움을 견딜 수 있을 것이며,
누가 그대의 괴로움을 위로해주겠소? (내 말
믿으시오.) 만약 바다가 그대마저 앗아갔더라면,
아내여, 나는 그대를 따라갔을 것이며, 그러면
바다는 나마저 삼켰을 것이오.
아아, 내가 나의 아버지(프로메테우스)의 재주로
인간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고, 흙을 이겨 거기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프로메테우스는
이런 방법으로 인간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좋으련만! 이제 인류의 운명은 우리 두 사람에게
달려 있소. (이것이 하늘에 계신 신들의 뜻이오.)
우리는 인간의 본으로 남을 것이오.“ 두 사람은
한동안 눈물을 흘린 뒤 하늘의 신에게 기도하고
신성한 신탁(神託 신의 말씀)을 통해 신의 도움을
구하기로 했다. 지체하지 않고 그들은 케피소스(
포키스 지방의 강)의 물결을 향하여 나란히
걸어갔는데, 아직 강물은 맑지 않았으나 어느새
낯익은 강바닥을 흘러가고 있었다. 그들은 강에서
물을 조금 길어 옷과 머리에 뿌렸다. 그러고 나서
신성한 여신(테미스)의 신전(델피에 있는 신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신전의 박공지붕은 더러운 이끼로
변색되어 있었고 제단에는 불도 없었다. 두 사람은
신전의 계단에 이르자 땅에 엎드려 떨면서 차가운
돌에 입맞추고는 이렇게 기도했다.
“만약 정당한 기도로 신들의 마음을 달래고
누그러뜨릴 수 있다면, 테미스 여신이시여, 어떤
방법으로 절멸(다 멸망함)한
우리 종족을 되살릴 수 있는지 말씀해주소서.“


380행—404행.

데우칼리온과 피르라. 1562.


가장 자비로운 여신(테미스)이시여, 물에 잠겼던
이 세상을 도와주소서. 여신은 마음이 움직여
이런 신탁(신의 말씀)을 주었다.

”너희는 신전에서 나가 머리를 가리고 옷의 띠를 푼 다음 너희의 위대한
어머니의 뼈를 등뒤로 던지도록 하라!“ 그들은
한동안 갈피를 잡지 못했다. 먼저 퓌르라가 침묵을
깨며 여신의  명령을 따를 수 없다고 했다. 그녀는
떨리는 입으로 여신에게 용서를 빌었으니, 그녀는
뼈를 내던짐으로써 어머니의 혼백을 모독하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그사이 그들은 애매모호하고
수수께끼 같은 신탁의 말을 거듭해서 되새기고,
그것을 마음속으로 심사숙고해보았다.
마침내 프로메테우스의 아들(데우칼리온)이
에피메테우스의 딸(퓌라)을 부드러운 말로 안심시켰다.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신탁은 경건하고
어떤 불의도 권하는 법이 없는 만큼) 위대한 어머니란
대지요. 그리고 생각건대, 여신께서 말씀하시는 뼈란
대지의 몸속에 들어 있는 돌일 것이오. 우리는
등뒤로 돌을 던지도록 명령받은 것이오.“
티탄(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의 아버지인
이아페투스)의 손녀(피르라)는 남편(이아페투스의
손자인 데우칼리온)의 해석에 마음이 움직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녀의 희망은 흔들렸다. 그만큼
두 사람은 하늘의 뜻이 미덥지 않았다. 하지만 한번
시험해본다고 무슨 해가 있겠는가. 그들은 산을
내려가서 머리를 가리고 옷의 띠를 풀고는 명령받은 대로

자신들의 발자국 뒤로 돌을 던졌다. 그러자
돌이 (만약 오랜 세월이 증인 노릇을 해주지 않는다면
누가 이를 믿겠는가?) 단단함과 딱딱함을 잃고
서서히 부드러워지기 시작했고, 일단 부드러워지자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돌이 커지고
더 부드러운 성질을 갖게 되자 그 형태가 사람의
모습처럼 보였다.


405행—415행.

데우칼리온과 퓌르라. 1601.


아직 그리 또렷하지 않고, 갓 시작한 작업인
탓에 충분히 마무리되지 않은 미완성의 대리석상
같았다. 하지만 돌 중에서 눅눅한 습기와 흙이
묻은 부분은 살로 변해 몸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고, 딱딱하여 휠 수 없는 부분은 뼈로 변했다.
돌의 핏줄은 같은 이름을 그대로 유지했다.
잠깐 사이에 하늘에 계신 신들의 뜻에 따라
사내(데우칼리온)의 손이 던진 돌은 남자의 모습을
취했고, 여인(피르라)이 던진 돌에서는 여자가 다시
태어났다. 이리하여 우리는 노고에 능한 강인한
종족이 되어, 우리의 기원이 어떤 것인지를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여러 형태의 다른 동물들은 대지가 저절로 낳았다.
그것은 오랫동안 남아 있던 습기가 태양의 열기에
데워지고, 진흙과 습기 찬 늪지가 열기에
부풀어오르고, 마치 어머니의 자궁 속처럼 사물의
비옥한 씨앗이 생명을 주는 흙 속에서 부양되고
성장하여 차츰 어떤 형태를 취하고 난 뒤의
일이었다. 그처럼, 일곱 하구의 닐루스 강(닐루스는
나일강의 의인화된 신이자 나일 강의 옛 이름)이
범람했던 들판을 떠나 자신의 물줄기를 옛
강바닥으로 되돌려주고 새로 쌓인 진흙이 햇볕에
데워지고 나면, 농부들은 흙덩이를 뒤엎다가 많은
동물을 발견하는데, 그중에는 갓 생성되기 시작하여
아직 탄생의 단계에 있는 것들도 있고, 아직
완성되지 않아 지체가 모자란 것들이 있는가 하면,
같은 몸인데 일부는 살아 있고 일부는 훍 그대로인
경우도 가끔 있다. 이는 습기와 온기가 적당히
결합하면 생명이 잉태되고, 이 두 가지에서 만물이
비롯되기 때문이다. 불과 물은 상극이지만, 눅눅한
온기는 만물을 낳고, 이 부조화의 조화는 생명의
탄생에 적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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