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0행—755행.

아키스는 파우누스(가축떼와 들판의 신으로
나중에는 그리스신화의 판 신과 동일시 된다)와,
시마이토스(시칠리아 섬의 강 및 강의 신.
아키스의 외할아버지)의
딸(시마이티스)인 요정의 아들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큰 낙이었지만,
나(갈라테이아)에게는 더 큰 낙이었어요.
그는 나를, 나만을 사랑했으니까요.
그는 미남이었고, 이팔 십육, 열여섯 살이 되자
부드러운 턱에 보일 듯 말 듯 솜털이
나기 시작했지요. 나는 그를 사랑했지만
키클롭스(키클롭스들 중 하나인
폴리페모스)가 끊임없이 나에게 구혼했어요.
756행—769행.

내 마음속에서 키클롭스에 대한 미움과
아키스에 대한 사랑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강했는지
그대가 묻는다면, 나는 말할 수 없어요.
둘 다 어슷비슷했으니까요. 아아, 자애로우신
베누스(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여,
그대의 권세는 얼마나 강한 것입니까?
그(폴리페모스) 앞에서는 숲도 무서워 떨고,
나그네가 벌받지 않고는 쳐다보지 못했으며,
위대한 올림푸스와 그 신들조차 경멸하던
그 야만적인 자(폴리페모스)도 사랑이 무엇인지
느끼기 시작하자 강렬한 정념(불꽃 같은 정)에
사로잡혀 활활 달아오르며 제 양떼와
동굴들을 잊어버렸으니까요.
폴리페모스여, 이제 그대는 외모와 남의
호감을 사는 일에 관심을 가졌고, 이제 그대는
갈퀴로 센머리털을 빗었으며, 낫으로 뻣뻣한
수염을 베고, 물에 비친 사나운 제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며 얼굴 표정을 지어보이는
일이 즐거웠어요. 살육을 원하는 욕구와
야만성과 피를 구하는 한없는 갈증이 사라지고,
함선들은 무사히 왔다가 무사히 갔어요.
770행—783행.

그사이 텔레모스(예언자)가, 어떤 새(전조)도
속이지 못한, 에우리모스의 아들 텔레모스가
시킬리아의 아이트나 산에 왔다가 무시무시한
폴리페모스에게 말했어요. 그대가 이마 한복판에
달고 다니는 하나뿐인 눈은
오디세우스가 빼앗아갈 것이오! 하지만
그자는 웃으며 말했어요. 오오! 가장 멍청한
예언자여, 그대가 틀렸소. 다른 여자가
이미 그것을 빼앗아갔으니 말이오.'
헛되이 진실을 알려주려고 하는 사람을 이렇게
조롱하더니 그자는 거대한 발걸음으로 해안을
무겁게 내리누르거나 지쳐서 그늘진 동굴로
돌아오곤 했어요. 긴 등성이가 쐐기 모양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온 언덕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의 양옆구리는 바닷물에 씻기고 있었지요.
사나운 키클롭스는 이곳에 올라
그 한복판에 앉았고, 그자의 털북숭이 양떼는
돌보는 이도 없는데 그자의 뒤를 따랐지요.
키클롭스는 배의 돛대로 쓸 만했지만 지팡이로
쓰이던 소나무를 발 앞에 내려놓더니
784행—804행.

일백 개의 갈대로 엮은 갈대 피리를 손에
들었어요. 모든 산이 그자의 목가적인 피리 소리를
들었고, 파도도 들었어요. 나는 바위 뒤에 숨어
나의 아키스의 품에 안겨 쉬며 멀리서
다음과 같은 그자의 노랫소리를 귀로 듣고는
그것을 마음속에 새겨놓았지요.
'백설 같은 쥐똥나무의 잎보다 더 희고,
풀밭보다 더 꽃이 만발하고,
오리나무보다 더 훤칠하고, 수정보다 더 찬란하고,
부드러운 새끼 염소보다 더 제멋대로이고,
바닷물에 끊임없이 닦인 조가비보다 더 부드럽고,
겨울철의 햇빛이나 여름철의 그늘보다 더 반갑고,
사과보다 더 고귀하고, 키큰 플라타너스보다
더 훤하고, 얼음보다 더 투명하고, 잘 익은
포도송이보다 더 달콤하고, 백조의 깃털과
치즈보다 더 부드러운 갈라테아여,
내게서 도망치지 않는다면 그대는 물 댄 정원보다
더 아름다우련만! 갈라테이아여, 또한 그대는
길들이지 않은 송아지보다 더 팔딱거리고,
오래된 참나무보다 더 단단하고,
파도보다 더 잘 속이고, 버들가지나 희끄무레한
열매가 열리는 포도 덩굴보다 더 질기고,
여기 이 바위보다도 더 요지부동이고,
급류보다더 사납고, 칭찬받는 공작보다 더
거만하고, 불보다 더 잔인하고, 가시보다
더 날카롭고, 새끼 낳은 암곰보다 더 거칠고,
바닷물보다 더 귀가 멀고, 발에 밟힌 뱀보다 더
무자비하오.
805행—837행.

무엇보다도 내가 그대에게서 가장
빼앗고 싶은 것은, 그대는 도망칠 때 시끄럽게
짖어대는 개떼에게 쫓기는 사슴뿐 아니라,
바람이나 날개 달린 미풍보다 더 날래다는 점이오.
(하지만 나를 알게 되면 도망친 것을 후회할 것이고,
꾸물댄 것을 자책할 것이고, 나를 붙잡으려고
애쓸것이오.) 내게는 산기슭이 있고 자연
그대로의 바위 안에 깊은 동굴이 있어,
그 안에서는 한여름에도 태양을 느낄 수 없고,
겨울도 느낄 수 없소.
내게는 가지를 내리누르는 사과가 있고,
기다란 덩굴에 황금과도 같은 포도송이가 있고,
자줏빛 포도송이도 있소. 나는 이것들과 저것들을
그대를 위해 간직하고 있소. 그대는 그대의 손으로
손수 숲 그늘에서 자라는 감미로운 딸기와,
가을철의 버찌와, 즙이 많이 나는 검푸른 종류뿐
아니라 새 밀랍같이 노르스름한 정선된 종류의
자두를 따 모을 것이오. 그대는 밤도 많이
가질 것이고, 산딸기나무의 열매도 많이 가질
것이오. 내가 그대의 남편이 된다면 말이오.
모든 나무가 그대를 섬길 것이오.
이 양떼도 모두 내 것이오.이 밖에도 많은 양떼가
골짜기를 돌아다니고 있고, 많은 양떼가 숲으로
가려져 있으며, 많은 양떼가 동굴의 우리 안에 있소.
그대가 혹시 그것들이 얼마나 많으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수가 없소.
양떼를 세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오.
그대는 그것들에 대한 내 칭찬의 말을 믿으려 할
필요가 없소. 그대는 그것들이 젖이 불어 간신히
걸어 지나가는 것을 육안으로 직접 볼 수 있으니까요.
그보다 더 어린 가축도 있어, 따뜻한 우리 안에는
새끼 양들이 들어 있고, 또 다른 우리에는
같은 또래의 새끼 염소들이 들어 있소.
내게는 눈처럼 흰 젖이 늘 풍족하오. 그중 일부는
마실 용도로 보관되고, 일부는 응유효소가
치즈로 굳혀주지요. 그대는 구하기 쉽지 않은
애완동물과 널리 보급된 선물도 가질 것이오.
사슴과 산토끼와 숫양이나, 한 쌍의 비둘기나,
나무 우듬지에서 내린 새의 둥지 말이오.
산꼭대기에서 나는 그대와 놀아줄 수 있는,
털북숭이 어미 곰의 새끼 두 마리를 발견했는데,
녀석들은 너무 닮아 그대는 구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오. 나는 녀석들을 발견하고는
<녀석들을 내 안주인을 위해 간수해야지!>
라고 말했지요.
838행—867행.

갈라테아여! 자, 이제는 검푸른 바다에서 그대의
빛나는 머리를 드시오! 자, 이제는 내 선물을
무시하지 말고 이리로 오시오!
나는 나 자신을 확실히 알고 있소. 얼마 전에
맑은 물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으니까요.
내 모습을 보고 있었을 때 나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소. 그대는 내가 얼마나 큰지 보시구려!
하늘에 있는 유피테르(제우스)도 이보다
몸이 크지는 않소. 그대들은 유피테르인가 뭔가
하는 자가 그곳(올림푸스)에서 다스리고 있다고
늘 말하곤 하기에 하는 말이오. 숱이 많은
머리털이 내 준엄한 얼굴 위로 돌출하여
숲처럼 내 양어깨에 그늘을 지워주고 있소.
그대는 내 몸에 뻣뻣한 센털이 빽빽이 나 있는 것을
추하다고 여기지 마시오. 나무는 잎이 없으면
추하며, 말도 황갈색 목을 덮어줄 갈기가 없으면
추한 법이오. 깃털이 새를 덮고 있고,
양에게는 자신의 털이 치장이 되고 있소.
그래서 수염과 몸에 난 수룩한 털은 남자에게
잘 어울리는 법이라오. 나는 이마 한복판에 눈이
하나밖에 없으나, 그것은 거대한 방패만큼이나
크오. 그게 어쨌다는거요? 위대한 태양신은
하늘에서 여기 이 지상의 만물을 보지 않소?
하지만 태양신의 눈은 하나뿐이오.
게다가 내 아버지(포세이돈)는 그대들의 바다를
지배하시오. 그분을 나는 그대의 시아버지로
만들어주려는 것이오.
그대는 부디 나를 불쌍히 여기고 이 탄원자의
기도를 들어주시오! 나는 오직 그대에게만
굴복하는 것이오. 나는 유피테르와, 하늘과,
모든 것을 꿰뚫는 벼락도 경멸하지만 그대는 두렵소,
네레우스(바다의 신)의 따님이여!
그대의 노여움은 벼락보다 더 잔혹하니까요.
그대가 모두에게 퇴짜를 놓는다면 나는 그대의
이러한 멸시를 더 잘 견딜 수 있겠지요.
한데 그대는 왜 키클롭스는 거절하면서
아키스는 사랑하며, 내 포옹보다도 아키스를
더 선호하시오? 그자는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나로서는 원치 않는 일이지만, 갈라테아여,
그대에게도 마음에 들 테면 들라지. 내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자는 내가 덩치가 큰 만큼
힘도 세다는 것을 느낄 것이오. 나는 산 채로
그자의 내장을 꺼내고, 그자의 사지를
찢어 들판과 그대의 파도 위에 흩어버릴 것이오.
그렇게 그자는 그대와 살을 섞기를!
나는 불타고 있고, 그대의 거절로 내 정염은
더 맹렬히 타오르고 있소.
867행—877행.

나는 마치 아이트나 산(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
있는 활화산)과 그것의 모든 힘(화산의 화염과
용암)을 내 가슴속에 지니고 다니는 느낌이오.
한데도 갈라테아여, 그대는
거들떠보지도 않는구려!' 이런 불평을 보람 없이
늘어놓더니 (나는 그 모든 것을 보고 있었으니까요.)
그자는 일어섰는데, 그 모습이 마치 암소를
빼앗기자 발광하여 가만히 서 있지 못하고
숲과 낯익은 골짜기를 헤매는 황소와도 같았어요.
그 사나운 자는 아무 영문도 모르고 그런 운명을
당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던 나와 아키스를
발견하고는 '내 너희를 찾아냈구나!
너희의 사랑의 결합도 이번이 마지막이 되게
해주겠다.'라고 소리쳤어요.
그자의 목소리는 성난 키클롭스의 목소리답게
우렁우렁했어요. 아이트나 산도 그 요란한 소리에
두려워 떨었으니까요.
878행—897행.

나는 혼비백산하여 가까이 있는 바닷물 속에
뛰어들었어요.나의 시마이토스의 영웅(아키스)은
등을 돌려 도망치며 소리쳤어요.
'날 좀 도와줘요, 갈라테이아, 부탁이에요.
부모님, 도와주세요.
죽게 되어 있는 나를 당신들의 왕국(강)으로
데려다주세요!' 키클롭스는 뒤쫓아가며 산의
일부를 뜯어내어 던졌어요. 바위의 한쪽 모서리가
아키스에게 닿았을 뿐인데도
그를 완전히 깔아뭉개버렸어요. 그러자 나는
- 그것만은 할 수 있도록 운명이 허락하여
아키스가 조상의 힘을 가지게 해주었지요.
바윗덩이 밑에서 진홍색 피가 듣더니 잠깐 사이에
붉은색이 사라지기 시작하며 처음에는 비에
불어난 강물의 색깔로 변하다가 잠깐 사이에
맑아졌어요. 이어서 던져진 바윗덩이가 갈라지며
그 갈라진 틈 사이로 싱싱하고 키 큰 갈대가
한 포기 돋아나더니 바위의 속 빈 입에서
물이 솟아오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어요.
그러더니 기적이 일어났어요. 갑자기 한 젊은이가
새로 돋아난 뿔들에 갈대 관을 쓰고는 허리까지
물에서 떠오르는 것이었어요.
그는 더 크고 얼굴 전체가 검푸르다는 것 말고는
아키스였어요.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하신으로 변한 아키스였어요. 그리고 그의
강물은 옛 이름(아키스. 아이트나 산 기슭에서
발원하여 시칠리아의 동해안으로 흘러드는 강으로
그 물이 차기로 유명하다고 한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요."
'미술 작품과 함께 읽는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14권. 키르케(Circe)와 스킬라(Scylla). (1) | 2025.04.21 |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13권. 스킬라(Scylla)와 글라우코스(Glaucus). (1) | 2025.04.20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13권. 아이네이아스(Aeneas)의 탈출. (2) | 2025.04.19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13권. 에오스(Eos)와 멤논(Memnon). (1) | 2025.04.17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13권. 헤카베(Hekabe), 폴릭세네(Polyxene), 폴리도로스(Polydoros). (2) | 2025.0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