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1행—636행.

하신(아켈로오스)은 여기서 입을 다물었다.
이 놀라운 기적(섬으로 변한 요정 페리멜레)은 모두를
감동시켰다. 하지만 익시온의 아들(페이리토스)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 무모한 자인지라 신들을 경멸하며
그들을 귀가 얇다고 비웃었다. "아켈로오스여, 그대는
동화를 이야기하고 있고 신들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시는구려." 그는 말했다. "만약 그들(신들)이 사물의 형태를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한다면 말이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아연실색하며 그런 말에 찬동하지 않았다.
나이도 지긋하고 생각도 원숙한 렐렉스(라코니아의 왕)가 누구보다도 먼저 이렇게 말했다. 하늘의 힘은
측량할 수 없고 무한하여, 신들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지는 법이오. 그대가 의심하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이지만,
프리기아(소아시아의 지역)의 언덕에는 보리수
한 그루와 참나무 한 그루가 야트막한 담장에
둘러싸인 채 나란히 서 있소. 나는 그곳을 직접 본 적이
있소. 피테우스(트로이젠 왕으로 펠롭스의 아들이자
테세우스의 외할아버지)가 전에 자기 아버지(펠롭스)가 통치하던 펠롭스(프리기아의 왕 탄탈로스의 아들)의
들판(프리기아의 들판)으로 나를 심부름 보냈기
때문이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못이 하나 있는데,
전에는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었으나, 지금은 잠수하는 물새와 늪지대의 물닭이 서식하는 물이오. 한번은
유피테르께서 그곳에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셨는데, 전령장을 들고 다니는, 아틀라스의 외손자(신들의 전령 메르쿠리우스, 헤르메스)도 날개를 벗어놓고 동행했소. 일천 채의 집을 찾아가 그분들은 쉬어가게 해달라고
청했으나, 일천 채의 집에 빗장이 질리며 문이 닫혔소.
딱 한 집이 그분들을 맞았는데, 그것은 짚과 늪지의
갈대로 지붕을 인 조그마한 집이었소. 한데 경건한
노파 바우키스와 그녀와 같은 나이의
필레몬(바우키스의 남편)은 젊은 나이에 그 오두막에서 결혼하여 그 오두막에서 함께 늙어가고 있었소. 그들은 가난을 숨기지 않았고 평온한 마음으로 참고 견딤으로써 그것을 가볍게 만들었소. 그 집에서 주인을 찾거나
하인을 찾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었소. 모두 두
식구뿐이어서, 그들은 동시에 복종하고 명령했던 것이오.
637행—667행

그래서 하늘에 사시는 분들께서 이 조그마한 집에
이르시어 고개를 숙이시고 야트막한 문설주 사이로
들어가셨을 때, 노인은 긴 의자 하나를 내놓으며
그분들더러 사지를 쉬시라 했소. 한편 부지런한
바우키스는 그 긴 의자에 거친 깔개를 깔고 나서,
화덕에서 따뜻한 재를 한쪽으로 옮겨놓고 어제의
불기에다 부채질하며 거기에다 나뭇잎과 마른
나무껍질을 얹더니 노파의 입김으로 불어대어 불길을
살려냈소. 그러고 나서 바우키스는 지붕에서 잘게
쪼갠 장작개비와 마른 가지를 내려 잘게 부러뜨리더니
작은 청동 냄비 밑에 갖다 놓았소. 그러고는 물을 댄
정원에서 남편이 가지고 들어온 양배추의 겉잎을 따냈소. 필레몬은 두 갈래진 막대기로, 시커멓게 된 대들보에
걸려 있던 훈제 돼지 등심을 내리더니
오랫동안 간직해오던 등심을 조그맣게 한 조각
베어내어 끓는 물에 넣고 끓였소. 그사이 노부부는
틈틈이 이야기를 꺼내어 지루한 줄을 모르게 했소.
그곳에는 너도밤나무로 만든 물통이 하나 있었는데,
그 구부러진 손잡이는 나무못에 걸려 있었소.
그 물통이 더운물로 채워지더니 손님들(제우스와
헤르메스)의 사지를 받아들여 원기를 회복하게 해주었소. 한가운데에는 뼈대도 다리도 고리버들로 만든 긴 의자
위에 부드러운 왕골 방석이 놓여 있었소. 그들은
그 긴 의자 위에다 축제 때에만 깔곤 하던 천을 덮었소.
하지만 그 천 역시 싸구려에다 낡아빠진 것이어서
고리버들로 만든 긴 의자에는 안성맞춤이었소.
신들께서 기대앉으셨소. 노파가 옷자락을 걷어붙이고
떨리는 손으로 식탁을 내놓았소. 하지만 식탁은
세 다리 가운데 한 다리가 너무 짧았소. 노파는 질그릇
파편으로 평평하게 괴었소. 그것이 식탁을 평평하게 하자 노파는 초록빛 박하로 평평해진 식탁을 닦았소.
이어서 노파는 순결한 미네르바(처녀신 아테나)의
과일(올리브)인 초록빛 올리브와 검은 올리브,
포도주 찌꺼기에 절인 가을철 산딸기, 꽃상추,무,
치즈, 식어가는 재에 조심스럽게 돌려가며 익힌
달걀을 질그릇에 담아 식탁 위에 내놓았소.
668행—676행.

이들 먹을거리에 이어 다른 식기와 마찬가지로
은이라고는 전혀 쓰지 않은, 돋을무늬가 새겨진 포도주 희석용 동이와 함께 안쪽에 노란 밀랍을 바른 너도밤나무 술잔이 나왔소. 잠시 뒤에 화덕은 더운 음식을 대주었고, 그리 오래되지 않은 포도주가 다시 들어왔다가
후식을 위한 작은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하여
한쪽으로 치워졌소. 거기에는 호두, 무화과,
쭈글쭈글한 대추야자, 자두 바구니에 담긴 향긋한 사과,
자줏빛 포도 덩굴에서 갓 딴 포도송이가 있었고,
676행—686행.

식탁 한가운데에는 반짝이는 꿀이 든 벌집이 있었소.
무엇보다도 거기에는 상냥한 얼굴과 활기차고 넘치는
선의가 있었소. 그사이 노부부는 포도주 희석용 동이가 빌 때마다 저절로 가득차고, 포도주가 저절로
솟아오른 것을 보았소. 이 이상한 광경을 보고 놀랍고
두려워 바우키스와 겁에 질린 필레몬은 두 손을 들고
함께 기도하며 자신들이 진수성찬을 마련하지 못한 데
대하여 용서를 빌었소. 그들에게는 조그마한 집을
지켜주는 거위가 한 마리 있었는데, 주인 내외는
손님으로 오신 신들을 위하여 그 거위를 잡을
채비를 했소.
686행—694행.

하지만 날개가 빠른 거위는 나이 많아
느린 그들을 지치게 하며 한동안 도망 다니다가 마침내
신들에게 도망칠 것처럼 보였소. 그러자 하늘의 신들께서 거위를 죽이지 말라며 말씀하셨소. 우리는 신이다.
너희 불경한 이웃은 응분의 벌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너희는 이 재앙을 면할 것이다. 지금 당장 너희는 집을 떠나 우리의 발자국을 따라 저기 저 높은 산 위로
함께 오르도록 하라!' 두 사람은 신들께서 시키시는 대로 지팡이를 짚고 긴 산비탈을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오르기 시작했소.
695행—702행.

산꼭대기에서 화살 한 바탕 거리만큼 떨어졌을 때
그들이 뒤돌아보니, 모든 것이 못에 잠겨 있고 그들의
집만 남아 있는 것이 보였소. 노부부가 그것을
보고 감탄하며 이웃사람들의 운명을 눈물로 슬퍼하는
동안 두 사람이 살기에도 비좁던 그들의 오래된
오두막이 신전으로 변했소. 서까래 밑에는 대리석
열주(列柱 줄지어 늘어선 기둥)가 서 있었고, 짚은
누렇게 변해 황금 지붕처럼 보였고, 문짝은 돋을새김으로 장식되고 땅바닥은 대리석 보도로 덮였소.
703행—723행.

그때 사투르누스(크로노스)의 아드님(제우스)께서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소.
'의로운 노인이여, 의로운 남편에 어울리는 아내여,
너희가 원하는 것을 말하라!' 필레몬은 바우키스와
몇마디 나누고 나서 자신들의 공동의 결정을 하늘의
신들에게 알렸소. '청컨대 우리는 그대들의 사제가 되어 그대들의 신전을 지키게 해주소서. 그리고 두 사람이
인생을 화목하게 살아온 만큼 한날한시에 죽어 내가
아내의 무덤을 보지 않게 해주시고, 또 아내의 손에
내가 묻히는 일이 없게 해주소서!' 그들의 소원은
이루어졌소. 그들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신전지기였소.
어느 날 그들은 세월과 고령에 짓눌려 마침 신성한
계단 앞에 서서 거기서 일어났던 지난 일을
이야기하다가 바우키스는 필레몬에게서, 늙은
필레몬은 바우키스에게서 잎이 돋아나는 것을 보았소.
어느새 두 사람의 얼굴 위에 우듬지가 생겨나는 동안,
그들은 아직도 말할 수 있을 때 동시에 서로 잘가요,
여보!'라고 말했소. 그리고 동시에 나무껍질이
그들의 입을 가리며 덮어버렸소. 오늘날에도 그곳에서는 티니아(흑해 남서쪽 기슭에 있는 소아시아 내
비티니아Bithynia 지역, 여기서는 '비티니아‘라는
뜻이다)의 농부가 하나의 쌍둥이 밑동에서 자라나
나란히 서 있는 두 그루의 나무를 가리켜주지요.
이 이야기를 나는 (속일 이유가 전혀 없는)
신뢰할 수 있는 노인들한테서 들었소. 나는
나뭇가지에 화환이 걸려 있는 것을 내 눈으로 보았소.
그리고 나도 신선한 화환을 갖다 놓으며 말했소.
'신들이 돌보는 자들(또는 신들에게 봉사한 자들)은
신들이 되고, 공경한 자들은 공경받을지어다!‘“
[참고. 비티니아]

소아시아(현재의 트뤼키예 아나톨리아 반도) 내
비티니아(BITHYNIA)와 프리기아(Phryg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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