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5행—770행.

렐렉스는 이야기(필레몬과 바우키스 부부 이야기)를
끝냈다. 이야기도 이야기를 한 사람도 모든 사람을
감동시켰다. 특히 테세우스를 감동시켰다. 그가
신들의 놀라운 행적을 더 듣고 싶어하자 칼리돈의
하신(아켈로오스)이 팔꿈치로 턱을 괴고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장 용감한 영웅이여, 세상에는
한번 모습이 바뀌면 그 새로운 모습으로 남아 있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여러 모습으로 바뀔 수 있는
권능을 가진 자들도 있소. 대지를 에워싸고 있는
바다에서 사는 그대 프로테우스(여러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 바다의 신)처럼.
사람들은 그대(프로테우스)를 때론 젊은이로
보는가 하면, 때론 사자로 보기 때문이오. 그대는
때론 사나운 멧돼지였고, 때론 만지기 두려운
뱀이었는가 하면, 때론 뿔이 그대를 황소로 만들기도
했소. 그대는 가끔은 돌로, 또 가끔은 나무로 나타날 수
있었는가 하면, 간혹은 흐르는 물의 모습을 흉내내어
강물이 되기도 하고, 간혹은 물과 상극인 불이 되기도
했소. 아우톨리코스(헤르메스의 아들로 오디세우스의
외할아버지)의 아내가 된 에리식톤(테살리아의 왕)의
딸(메스트라)도 그에 못지않은 권능을 갖고 있었소.
그녀의 아버지(에리식톤)는 신들의 신성을 경멸하여
그들의 제단에 분향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소.
사람들이 말하기를, 게다가 그자는 케레스
(곡식과 풍요의 여신 데메테르)의 숲을 도끼로 침범하여
여신에게 봉헌된 오래된 나무들을 무쇠로 모독했다고
하오. 그곳에는 이 나무들 한가운데에 오랜 세월
튼튼하게 자란 거대한 참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는데, 그 자체가 하나의 숲이었소. 그 주위로
양털실과 화환과 감사패가 걸려 있었는데, 소원이
성취되었다는 증거였지요. 가끔은 이 나무 밑에서
나무의 요정들이 축제를 열어 춤추는가 하면,
가끔은 손에 손잡고 함께 그 밑동을 둘러쌌는데,
그 둘레가 자그마치 삼오 십오, 열다섯 규빗Cubit
(1 규빗은 필꿈치에서 가운뎃손가락 끝까지의
길이인 45 센티미터 정도)이나 되었소.
다른 나무들이 그 아래 있는 풀보다 더 높은 만큼
이 나무는 다른 나무들보다 더 높았소.
한데도 트리오파스의 아들(에리식톤)은 도끼를
휘두르기를 삼가기는커녕 하인들에게 신성한
참나무를 베어 넘기라고 명령했소. 명령받은 자들이
꾸물대는 것을 보자 이 무도한 자는 그중 한 명에게서
도끼를 낚아채더니 이렇게 말했소.
'이것이 여신(곡식과 풍요의 여신 케레스)이 좋아하는
나무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여신이라 하더라도
이제 곧 잎이 무성한 그 우듬지는 대지에 닿으리라.'
이렇게 말하고 그자가 도끼로 비스듬하게
내리칠 자세를 취하자, 데오(케레스 여신의 뱔칭)의
참나무는 두려워 떨면서 신음 소리를 냈소. 그러자
잎도 동시에 창백해지기 시작했고, 도토리도 동시에
창백해지기 시작했으며, 긴 가지들도 창백한 빛을
띠었소. 한데도 그자의 불경한 손이 밑동을 쳐서
상처를 내자, 갈라진 나무껍질에서 피가 흘러나왔는데,
그 모습은 제물로 바친 거대한 황소가 제단 앞에서
쓰러지고 그 갈라진 목에서 피가 쏟아져 나올 때와
다르지 않았소. 모두 아연실색했소.
그리고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감히 무도한 짓을
막고 잔혹한 양날 도끼를 제지하려고 했소.
텟살리아인(에리식톤)은 그를 쳐다보며
'네 경건한마음에 대한 상으로 이것이나 받아라!'라고
말하고는 도끼를 나무 밑동으로부터 그 사람에게로
돌려 그의 머리를 자르더니 다시 참나무를 찍어댔소.
770행—789행.

그러자 나무 안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소.
이 나무 안에 살고 있는 나는 케레스 여신이 가장
사랑하시는 요정이다. 내(요정) 너(에리식톤)에게
죽어가며 예언하노니, 네가 한 짓에 대한 벌이
임박해 있다. 내 죽긴 죽되 그것으로 위안을 삼으리라!'
하지만 그자는 자신의 범행을 멈추지 않았소.
그 나무는 마침내 수많은 가격에 허약해진 데다
밧줄에 아래로 끌어당겨져 넘어지며 그 무게로 주위의
나무를 수없이 땅에 뉘었소. 나무의 요정 자매들은
자신들이 입은 피해와 숲이 입은 피해에 상심하여
모두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애도하며 케레스를 찾아가
에리식톤을 벌주라고 간청했소. 더없이 아름다운
여신은 이를 승낙했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익어가는 곡식으로 묵직해진 들판이 떨었소.
여신은 그자가 자신의 소행으로 어느 누구의
동정도 살 수 없게 되지 않았더라면
남의 동정을 살 만도 한 그런 벌을 궁리했으니,
여신은 그자가 허기에 시달리다 죽게 할 참이었소.
하지만 여신은 허기를 몸소 찾아갈 수는 없었기에
(케레스와 허기가 만나는 것을 운명이 금했기 때문이오.)
산의 여신 가운데 한 명을, 시골에 사는 산의
요정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소. '얼음처럼 차가운
스키티아(흑해 북쪽에 살던 기마 민족인 스키타이족의
나라)의 가장 먼 변경에는 대지에 곡식도 나지 않고
나무도 나지 않는 황량한 불모지가 있다.
[참고. 스키티아]

790행—796행.

그곳(스키티아)에는 나태한 한기와 해쓱함과
오한과 수척한 허기(虛飢 배고픔)가 살고 있다.
너는 허기에게 저 신성을 모독하는 자(에리식톤)의
죄 많은 뱃속에 숨으라고 일러라! 그리고 어떤 풍요함도
그녀(허기)를 이기지 못하게 하고, 그녀가 싸움에서
내 힘을 이기게 하라! 길이 멀다고 네가 겁먹지 않도록
너는 내 수레와 용들(용들이 끄는 케레스의 수레)을
받아 그것들을 고삐로 몰며 하늘을 날아가도록 하라!'
여신이 수레를 주자,
796행—822행.

요정이 빌린 수레를 타고 하늘을 지나 스키티아에
도착하여 (그곳 사람들이 코카서스 산맥 또는
캅카스 산맥이라고 부르는) 바위산 꼭대기에서 용들의
멍에를 풀어주었소. 요정은 허기를 찾다가 그녀가
돌투성이의 들판에서 손톱과 이빨로 얼마 안되는
풀을 뜯는 것을 보았소.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두 눈은 움푹 들어가 있고, 얼굴은 창백했고, 입술은
말라 갈라졌고, 입안은 설태로 거칠어졌고, 살갗은
딱딱하게 말라 안에 있는 내장이 들여다보였소.
그녀의 앙상한 궁둥뼈는 움푹 들어간 허리 아래로
튀어나와 있었고, 배는 빈 자리에 불과했소. 그대는
그녀의 가슴이 허공에 매달려 있고, 척추의 뼈대에
간신히 붙들려 있다고 생각할 것이오. 그녀는
수척하여 관절이 굵어 보였고, 무릎은 부어올랐으며,
복사뼈는 지나치게 큰 혹처럼 툭 튀어나와 있었소.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갈 용기가 나지 않은) 요정은
멀리서 그녀를 보자 그녀에게 여신의 명령을 전했소.
요정은 잠시밖에 머물지 않았는데도,
그리고 그녀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고 방금
그곳에 도착했는데도
허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 고삐를 잡고 하늘을 날며
용들을 하이모니아(텟살리아 지방의 옛 이름)로
되몰고 갔소. 케레스(곡식과 풍요의 여신)와
허기(배고픔)가 하는 일은 언제나 상반되었지만,
허기는 이때에는 케레스의 명령에 따라 바람을 타고
대기를 지나 여신이 가리킨 집(텟살리아)으로 가서는
지체 없이 신성을 모독한 자의 방으로 들어가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때는 밤이었으니까요.) 그자를
두 팔로 껴안았소. 그러고는 그자의 목구멍과 가슴과
입에다 숨을 내쉬어 그자를 그녀 자신으로 가득
채우고, 그자의 빈 혈관들에 허기를 뿌려놓았소.
그녀는 임무를 완수하고 나서 풍요로운 세계를 떠나
자신의 결핍의 집으로, 친숙한 동굴로 돌아갔소.
823행—851행.

아직도 부드러운 잠이 평화로운 날갯짓을 하며
에리식톤을 어루만지고 있었소. 하지만 그자는
자면서도 잔치 꿈을 꾸였으니, 빈 입을 움직이며
지치도록 이를 갈았고, 속임을 당한 목구멍을 실체
없는 음식으로 채우며 진수성찬 대신 희박한 공기만을
헛되이 들이켰던 것이오. 그가 잠에서 깨었을 때
불 같은 식욕이 미쳐 날뛰며 그의 탐욕스러운
목구멍과 무한한 내장을 지배하게 되었소.
그는 지체 없이 바다와 대지와 대기가
대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요구했고, 가득 차린
식탁을 마주하고도 배고프다고 불평했으며,
음식을 먹으면서도 음식을 찾았소.
여러 도시에게도, 아니 한 민족에게도 충분할 만한
양이 단 한 사람을 충족시키지 못했소. 그자는
더 많이 뱃속으로 내려보낼수록 더 많이 요구했소.
마치 바다가 온 대지로부터 강물을 받아들여도
그 물로는 성에 차지 않아 멀리서 흘러온 강물까지
들이키듯이, 마치 모든 것을 삼키는 불이 영양분을
거절하는 일 없이 무수한 통나무를 불태우고 더 많이
받을수록 더 많이 요구하고 많을수록 그로 인하여
더욱더 탐욕스러워지듯이, 꼭 그처럼 불경한
에리식톤의 입은 그 모든 음식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더 많은 것을 요구했소. 그에게는 음식이 곧 음식을
먹게 되는 원인이 되었고, 먹을수록 늘 공복감을
느낄 뿐이었소. 어느새 허기와 깊은 심연과도
같은 배로 인해 선조에게 물려받은 재산은 결딴났소.
그런데도 끔찍한 허기는 결딴나지 않은 채 남아 있었고,
식탐의 불길은 진정되지 않고 기승을 부렸소.
전 재산을 먹어치우고 마침내 남은 것은 딸 하나밖에
없었소. 그런 아버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딸이었소.
빈털터리가 된 그는 이 딸을 팔았소, 귀한 집 딸인
그녀는 주인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가까운 바다 위로
두 손을 내밀며 기도했소. '나를 주인에게서
구해주소서! 그 대가로 나는 이미 내 처녀성을
그대(포세이돈)에게 바쳤나이다.'
851행—884행.

그녀(메스트라)의 처녀성은 넵투누스(포세이돈)가
빼앗았던 것이다. 그는 그녀의 기도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뒤따라오던 주인이 잠시 전에 그녀를
보았음에도 그녀를 변신시켜 그녀에게 남자의 모습과
어부에게 맞는 복장을 주었소. 주인이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소. '매달린 청동 낚싯바늘을
작은 미끼에 숨기고 있는 이여,
낚싯대를 들고 있는 이여, 이렇게
바다가 잔잔하고 의심할 줄 모르는 물고기가 물속에서
낚싯바늘을 덥석 물 때까지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기를!
방금 허름한 옷을 입고 머리가 헝클어진 채
이 바닷가에 서 있던 여자가
<그녀(메스트라)가 바닷가에서 있는 것을 내가
보았기 때문이오.> 어디 있는지 말해주시오!
그녀의 발자국이 더 멀리 가지 않았으니 말이오.'
소녀는 그제야 신(포세이돈)의 선물(변신술)이
자기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자기에게 자기에 관해 묻는 것을 재미있어하며
묻는 자(주인)에게 이렇게 대답했소. ‘그대가
뉘시든, 용서하시오. 내가 하고 있는 일(낚시)에
열중하느라 나는 이 심연에서 어느 쪽으로도 눈을
돌린 적이 없소. 그대가 의심하지 않도록 말하거니와,
이 바닷가에는 아까부터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고, 어떤 여자도 서 있지 않았소. 그것이
사실인 그만큼 확실히 바다의 신(포세이돈)이
내 이 기술(변신술)을 도와주셨으면 좋으련만!'
그녀의 주인은 그녀의 말을 믿고는 속아서 발걸음을
돌려 모래 위를 걸어갔소. 그러자 그녀에게 본래의
모습이 다시 주어졌소. 하지만 그녀의 아비는
자기 딸에게 변신의 능력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트리오파스의 손녀인 자기 딸(메스트라)을 자주
여러 주인에게 팔았소. 그녀는 때로는 암말로,
때로는 새로, 때로는 암소로, 또 때로는 사슴으로
도망쳐 탐욕스러운 아버지에게 정직하지 못한 양식을
대주었소. 마침내 재앙의 힘이 모든 재고를
다 먹어치우고 그의 중병(허기)이 더 많은 먹을거리를
요구하자, 그 가련한 자는 제 사지를 찢어 그것을
제 입으로 물어뜯기 시작하더니
제 몸을 먹음으로써 제 몸을 먹였소. 한데 왜 나는
남의 이야기나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죠?
젊은이(테세우스)여, 그 가짓수는 한정되어 있지만
나(하신 아켈로오스)도 내 몸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소. 나는 때로는 지금 이대로 보이는가 하면,
때로는 뱀으로 똬리를 틀고, 때로는 소떼의 우두머리로서
뿔들에다 힘을 모으곤 하니까요. 그래요, 뿔들 말이오.
내가 그럴 수 있었던 동안에는. 지금은 그대도
보시다시피 내 한쪽 이마에 있던 무기가 없어졌소."
그의 말에 한숨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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